콜롬비아의 숨은 보물 ‘엘 페뇰&이피알레스’
아름다운 풍경에 가려진 삶의 애환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들과 그 위에 자리 잡은 고급스러운 저택들. 개발과 보존의 그림자가 이곳에도 있었다.
Hola! (스페인어로 안녕!)
남미 여행기를 쓰고 있는 위풍당당 그녀 ‘써니’입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와 가장 대표적 관광지 마니샬레스에 이어 이번에는 혼자 즐기고 스쳐지나기에는 아까운, 더구나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엘 페뇰(El Penol)과 이피알레스(Ipiales)입니다.

 

 돌덩이로 이뤄진 엘 페뇰. 그러나 계단 649개를 올라가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 ‘메데진’ 
콜롬비아인들은 휴일을 어떻게 즐길까? 남미의 국경일은 해마다 날짜가 조금씩 바뀌는데, 주로 월요일이나 금요일로 맞춰진다. 월요일인 콜롬비아의 국경일 ‘San Pedro y San Pablo(성베드로와 바울의 날)’을 맞아 꽃과 미녀와 패션의 도시 메데진(Medellin)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연휴 탓에 평소보다 4시간이나 더 걸린, 11시간 동안 차 속에 구겨져 메데진에 도착했다. 쌓인 피로에 오후 시간은 모든 걸 내려놓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메데진 외곽 엘 페뇰로 가기 위한 충전의 시간인 셈이다.

콜롬비아의 수도는 보고타지만, 콜롬비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는 도시는 메데진일 것이다. 메데진은 한때 마약 카르텔의 본 거지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의 도시요, 교육과 산업의 중심지인 남미의 세련된 주거 도시 중의 하나다. 메데진이 배출한 주요 인물로는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 이 꼽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페르난도 보테르가 으뜸일 것 같다(2009년 덕수궁미술관 전시회에서

지상철로 시내 이동이 가능한 메데진. 지상철 일부 구간은 케이블카가 담당한다.
화려한 색채감과 풍만한 형태감으로 한국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남미의 대표 미술가다). 이 매력적인 도시를 제치고 전날 밤 같은 도미토리를 쓰면서 친해진 일행과 함께 발길을 옮긴 곳은 엘 페뇰이다. 사실 엘 페뇰로 향하게 한 건 인터넷에서 본 호수 사진 한 장이다. 가끔 사진 한 장, 글 한 줄에 마음을 빼앗겨 발길을 옮기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고 해야 할까? 엘 페뇰로 가는 버스는 현지인들로 만원이었다.

넓은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당나귀에 우유를 싣고 가는 목동들, 산속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예쁜 집들… 엘 페뇰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들이 평화롭고 예뻐서 불편한 버스 의자도, 비포장도로에서 덜컹거리는 버스도, 꽉 막힌 도로 사정도 모두 용서됐다. 아름다운 집과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 엘 페뇰이 여유로운 사람들의 휴양지임을 것을 한눈에 짐작하게 했다.

엘 페뇰은 385m 높이의 바위산 전망대다. 계단 649개를 붙여 따라 올라가게 해놨다. 말이 좋아 바위산이고 전망대지, 멀리서 보이는 모습은 그냥 돌덩이다. 그런데 허접한(?) 계단을 따라 돌덩이 위를 오르고 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계단을 올라서인지, 눈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인지 숨이 차오른다. 사진 속의 바로 그 풍경이 내 눈앞에서 ‘라이브’로 펼쳐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들과 그 위에 자리 잡은 고급스러운 주택들…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이고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이 아름다운 풍경 뒤편에는 물속에 잠긴 스토리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는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 저수지다. 전력 공급을 위해 대형 댐을 건설하면서 엘 페뇰 주변 마을이던 구아타페(Guatape)가 물에 잠기고 지금의 기막힌 풍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970년 수장된 마을의 사람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콜롬비아 전력의 65%를 생산하고 댐과 맞바꾼 그들의 터전에서 사람들은 연휴를 즐기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만나는 개발과 보존의 빛과 그림자가 이곳에도 있었다.

 

 계곡사이에 성당을 세운 신앙의 힘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이피알레스’
스페인어 실력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게속 보고타에 머무르기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져 조바심이 났다. 이제 콜롬비아를 떠나 에콰도르로 갈 시간이라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다. 서울과 보고타에서 습득한 스페인어 실력을 믿고 본격적인 남미여행길에 나서기로 했다. 비 많기로 유명한 보고타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3주를 보냈는데, 떠나는 날 장대비가 쏟아진다. 있을 만큼 있었으니 빨리 떠나라고 재촉하는 비 같아서 섭섭하다. 그래! 나는 간다!

육로를 이용해서 에콰도르에 가기 위해서는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이피알레스를 거쳐야 한다. 이피알레스는 아주 작은 도시지만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를 오가는 사람들의 필수 경유지다. 보고타에서 이피알레스까지는 버스로 24시간 거리다. 비행기도 24시간은 타본적이 없는데 버스 24시간이라니, 도전의 희열을 느끼기도 전에 점심 사 먹을 돈이 없다는 절박함에 마음이 약간 굳어졌다. 여행은 왜 이렇게 매 순간 에피소드를 던져주는 걸까? 불필요한 페소(콜롬비아 화폐)를 모두 써버리면서 계산 착오로 점심 값을 남겨두지 못한 거다. 간식용 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안데스를 넘기로 한다. 올라오는 멀미를 억지 잠으로 가라앉히며 달리고 또 달려서 이피알레스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몸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지만, 이 도시에 놓칠 수 없는 라스 라하스(Las Lajas) 성당이 있다는 <론리플래닛>의 추천을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남들 보는 건 다 봐야 한다며 욕심을 부리는걸 보면 아직 여행 초반임이 분명하다. 밥도 굶으며 아껴놓은 돈으로 택시를 타고 도시의 외곽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우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계곡 사이에 중세의 라스 라하스 성당이 동화 속에서 나올 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성당을 세운 신앙의 힘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수녀님이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려주는 모습이 보였다. 신자는 아니지만 수녀님 가까이 다가가 무사한 여행이 되길, 태평양 건너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의 건강을 빌었다.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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