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에는 가을에 눈이 내린다.
해마다 9월이면 희디흰 메밀꽃이 가득 피어 ‘눈꽃 세상’이 아닌 ‘꽃눈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메밀밭에 서면 메밀꽃 바람이 불고, 저도 몰래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달빛 어리는 밤이면 황홀경이 끝이 없다.

 

 
“…아이들과 가볼 만한 축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는 9월 1일부터 광주아트페어, 9월 3일부터 서울드럼페스티벌, 9월 9일부터 제13회 효석문화제가 열립니다. 이번 효석문화제의 부제는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밭’입니다.”

“엄마, 엄마~ 메밀꽃이 뭐예요?” 뉴스를 보던 아이들이 묻는다.

“메밀꽃, 메밀꽃은… 참 예쁜 꽃이야.” “그렇게 예뻐요? 장미보다? 프리지어보다? 백합보다?”

 

이효석 문학관에서 만나는 소설속 장면
메밀꽃과 이효석의 소설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밭이 펼쳐지는 곳은 강원도 평창. 어떤 이들은 스키장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이들은 예쁜 펜션을 떠올릴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2018 동계올림픽과 김연아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메밀꽃이 평창 사람들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붉고 가는 줄기 끝에 달린 흰 꽃송이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고,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지거나 꺾일 듯 여린 모습이다. 하지만 메밀꽃이 가득한 밭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황홀하다. 약하지만 여럿이 모여 무언가 이뤄내는 평창 군민들과 무척 닮았다.

“엄마, 정말 예뻐요……. 저 꽃 위에 누우면 푹신할 것 같아요. 마치 구름 위에 눕는 것처럼.”

“우와~ 눈송이가 한 송이 한 송이 내려와 살포시 앉은 것 같아요. ‘눈꽃 세상’이 아니라 ‘꽃눈 세상’이에요!” 끝 간 데 없이 넓은 메밀밭을 보니 새하얀 구름 침대가 펼쳐진 듯, 밤새 꽃눈이 내린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곳 평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이효석 선생(李孝石, 1907~1942)의 눈에도 그리 멋지게 보였나 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밭이다.”

멀리서부터 덩그렁덩그렁 방울 소리를 울리며 등짐을 잔뜩 진 당나귀가 걸어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내 셋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메밀밭 밤 풍경이 절로 그려지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다. 1936년<조광(朝光)>에 발표한 이효석 선생의 소설은 시적이면서도 아릿한 장돌뱅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메밀밭 사이를 거닐던 허생원과 동이 그리고 조선달과 당나귀의 모습, 생애 단 한 번의 사랑으로 평생 장돌뱅이의 길을 걸은 허생원의 애틋한 사랑은 가슴을 짠하게 하고, 또 오랫동안 생각나게 한다. 


 

이효석 선생의 생가
소설보다 시에 가까운 후기 작품들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동리(金東里, 1913~1995) 선생은 이효석을 두고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 평했다. 이효석의 초기 작품들은 동반작가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로 식민지 민중의 삶을 다뤘다. 하지만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면서 이상, 박태원, 유치환,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교류하며 자연과 향토성에 대한 탐구에 몰입하는데, <메밀꽃 필 무렵>은 그 절정기에 나온 작품이다.

다시 김동리 선생의 말을 새겨보면 이효석의 후기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시에 가까울 정도다. 소설의 특징인 구성이나 서사보다 가슴에 착착 감기는 우리말 어휘와 암시, 상징, 복선으로 신비스럽고 향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에서 대화까지 70리 길에 대한 묘사는 매년 가을 문학 축제를 열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떨림을 준다.

드넓고 황홀한 메밀밭과 더불어 이효석 생가와 문학관 방문을 빼놓을 수 없다. 이효석문학관(www.hyoseok.org)은 가산 이효석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남안교를 건너 물레방앗간 뒷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가터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옛 봉평장터 모형, 어린이용 영상물 등을 설치하여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선생의 작품이 발표된 잡지, 신문, 초간본 책자, 선생의 작품 일대기와 육필 원고 유품 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된다. 아름다운 외관뿐만 아니라 문학 정원, 메밀 꽃길, 오솔길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이효석 선생의 모습
머슴형 이효석? 신사형 이효석?
이효석문학관을 돌아보다 딸아이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빠, 저는 이효석 선생님이 옛날 사람이라 한복 입고 통통하게 생긴 아저씨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영국 사람들 쓰는 것 같은 모자를 쓰고 커피도 아주 좋아했대요.”

이효석은 키가 크지 않고 체격이 호리호리한 편으로 얼굴은 길고 귀는 조금 큰 대신 눈은 그리 크지 않았으며, 서구적인 깔끔한 옷차림으로 생활했다. ‘커피에 인이 박인 듯하다’고 할 정도로 커피를 즐겼는데, 특히 ‘진한 다갈색의 향기 높은 모카’를 좋아했으며 ‘제대로 된 버터’를 얻어 지하실에 저장하기도 하고, 우유를 배달시켜 먹기도 했단다.

이효석이 살던 평양의 ‘푸른 집’은 넓은 정원 속에 숨어 있는 붉은 벽돌집으로 목욕탕과 지하실, 거실, 침대 방이 있었다. 그는 피아노를 거실에 두고 쇼팽과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독일어로 유창하게 부르기도 했다 한다.

프랑스 영화 감상을 즐기는 등 그의 서구적 취향은 신학문을 배우고 서양 문화에 일찍 눈 뜬 아버지와 학창 시절 읽은 서양 소설들, 대학에서 전공한 영어영문학, 외국인 교수와 만남, 주을온천 일대에서 체험한 러시아 문화 등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입에 ‘착착’ 붙고 건강에도 좋은 메밀 요리
배꼽시계가 요란히 울어대기에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낭창낭창 가녀린 메밀로 만들어진 음식이 역시 평창 여행의 별미, 먼저 메밀막국수를 맛보았다. 메밀로 뽑은 두툼하고 쫄깃한 면발에 매콤·달콤·새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막국수 한 그릇에 배가 불룩해진다. 피를 맑게 해주고 소화가 잘되며, 피부 미용에다음에는 메밀전병. 메밀 반죽을 얇게 부친 뒤 김치소를 넣고 돌돌 말았다가 주문하면 싹둑 반을 잘라 내어준다.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에 부드러운 메밀 피의 궁합이 환상적이다.

마지막으로 메밀 싹을 곁들인 메밀싹 비빔밥, 한 그릇 먹으면 평창의 자연이 일순간 몸으로 들어온다. 기성세대에게는 고픈 배를 달래주던 생존 음식이지만 이제는 추억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고,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게는 별미가 되었다.

메밀 음식을 먹으며 이효석 선생의 삶을 자연스레 화두로 삼는다. 선생이 아내가 함께 한 시간은 10년 남짓, 그중 4년이 클라이맥스였다. 아내를 잃은 뒤 삶의 의욕을 잃고 2년 만에 삶을 마감했으니 그에게 아내의 존재는 무척 큰 것이었으리라.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아내의 존재는 참으로 중요하다. 또 그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평창으로 문학 여행이 시작이었지만 메밀 음식을 먹으며 가장에게 아내의 소중함을 각성(?)시키는 것으로 여행 일정을 마무리해본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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