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대학 친구를 만난 것은 수년 만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친구는 사회에서 몇 번 좌절을 경험하다 낙향, 바닷가에 작은 미술 학원을 차렸다. 문득 휴가를 겸해 속초로 향한 데는 푸른 바다에 심장을 빠뜨리고 싶은 충동과 간만의 재회에 대한 기대가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약속 장소는 모래가 유난히 고운 등대해수욕장이다.

 

 

한적한 등대해수욕장, 고소한 대포항
8월 말의 수영장은 파티가 끝난 모습마냥 한적하면서도 쓸쓸했다. 한때 관광객에게 비싸게 대여됐을 빨간색 파라솔은 고이 접혀 폐장 분위기를 암시했고, 어린아이 몇 명이 그 사이를 뛰놀며 마지막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쪽빛이나 푸른, 그런 수식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졌다. 이런 바다 내음이 섞인 공기를 24시간 호흡하니 자동차 배기가스에 익숙해져야 할 서울 바닥이 못마땅한 것도 당연하다.

고운 모래로 덮인 바닷가를 걸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쌓인 생활사를 쏟아냈다. 남자들이 군대얘기를 하듯 나는 뒤늦게 뛰어든 16개월간의 육아 전쟁을 생중계했고, 아직 미혼인 친구는 학원 운영에 대한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대낮의 천일야화처럼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남들은 바닷가에서 얘들 가르치며 쉬엄쉬엄 사니 얼마나 좋겠냐고 하는데, 그거 정말 모르는 소리야. 요즘 애들이 얼마나 자기주장이 강한 줄 아니? 엄마들 비위 맞추기는 또 얼마나 힘들고! 참, 너도 이제 깐깐한 아줌마가 됐구나!”

허기진 배는 등대해수욕장에서 자동차로 5분 남짓 걸리는 대포항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대포항은 시끌벅적했다.  손님을 불러대는 상인과 눈치전을 벌이는 외지인이 어우러져 관광지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사실 속초 사람들은 대포항보다 동명항을 자주 찾는다고. 대포항에 외지인의 발길이 부쩍 늘면서 자연스레 생긴 변화다(서울 사람들이 인사동에 가지 않는 이유와 똑같다).

 
“이곳은 4~5시에 오는 게 좋아. 그때쯤이면 떨이를 치우고 들어가려는 아줌마들이 활어를 싸게 내놓거든. 활어 가게가 밀집한 거리를 지나면서 (활어가 담긴) 바구니가 마음에 들면 흥정에 들어가지.” 활어 거리를 지나자 아줌마들이 바구니에 생선 몇 마리를 올리고 우리에게 저마다 손짓했다. “이거 세 마리에 5만 원 줄게, 여기서 먹고 가!” 

바구니에는 먹음직스러운 광어, 도미, 우럭이 담겨 있었다. 활어 시장과 건어물 가게를 지나자 10여 개의 새우튀김 가게들이 등장했다. 속초에 오면 한번씩 맛본다는 ‘그’ 새우튀김이다. 노점상은 여럿이지만 선택 기준은 단순했다. 무조건 가장 줄이 긴 가게에 설 것! 수입산 냉동 새우를 튀겨 맛은 비슷한데, 장사가 잘되는 집은 새우를 금방 튀겨서 더 바삭거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갓 튀긴 새우를 입 안에 가득 넣으면서 다시 7번 국도에 올라탔다.

 

낙산사에서 속마음을 보이다
남쪽으로 15분간 달리자 2005년 화마에 휩쓸렸던 낙산사에 닿았다. 그동안 내심 궁금했다. 화재에 소실된 낙산사가 어떻게 복구되었는지, 그곳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어떤 모습인지 온통 물음표 투성이였다. 기대와 걱정으로 찾은 낙산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소실된 전각은 대부분 복구되었고, 화마에 까맣게 탄 언덕에는 새 묘목이 심겼다. 무엇보다 끝없는 바다가 변함없이 사찰을 에워싸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곳의 주인은 사람이 만들어낸 전각이 아니라 해안 절벽과 동해다. 낙산사의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장 감동스러웠던 길은 찻집 다래헌에서 의상대, 홍련암으로 이어지는 해안 절벽길이다. 가슴속에 담은 사연 하나쯤 술술 풀어내고 싶을 만큼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그래서일까. 친구는 묻지도 않았는데 그간의 로맨스를 툭툭 털어놓았다. 내가 뒤늦게 아이를 낳을 동안, 친구는 한 번의 연애를 거쳐 지금은 솔로인 상태였다.

“속초엔 남자가 없어. 다들 외지로 나갔거든. 이젠 솔 메이트를 만나고 싶은데 말이야.”

바다를 향한 친구의 눈빛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사고방식이 개방적인(?) 친구는 결혼 대신 연애가 하고 싶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자 연애도 쉽지 않다면서.

우리는 해안 길을 걷다가 사천왕문과 원통보전으로 향했다. 원통보전의 담장은 기와와 흙을 번갈아 쌓아서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럽기로 유명하다(과거 낙산사에 대한 유일한 기억도 원통보전의 어여쁜 담장이었다). 

“이쪽은 불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네, 저쪽은 새로 쌓은 듯하고.”

담장은 종전의 거뭇거뭇한 부분을 보존하면서 새 담장을 이어 쌓은 모양이었다. 새삼 당시의 화마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원통보전의 매력은 담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원통보전의 오른쪽에는 절벽을 타고 해수관음상까지 향하는 샛길 입구가 있었다. 일명 ‘꿈이 이뤄지는 길’. 언덕배기에 있는 해수관음상을 보고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내려가는 역방향 코스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기와 담장 너머로 감상하는 해수관음상의 모습이 비경이다.

 

 
양양 오일장, 추억은 여전히 따뜻하더라
낙산사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양양 오일장. 사실 운이 좋았다. 친구는 7번 국도를 달리다 갑자기 손을 꼽더니 ‘오늘이 양양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면서 기뻐했다(장은 4일, 9일마다 선다). 우리는 얘기할 것도 없이 양양시장으로 향했다.

오후 늦게 도착한 오일장에는 온갖 세상 물건이 가득했다. 골동품, 건어물, 과일, 음악 테이프, 뻥튀기, 농기구, 여기에 새끼 강아지까지 총출동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호들갑 떨면서 싸네, 비싸네, 토론(?)을 벌이거나 덤 몇 개에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가장 행복했던 것은 양양 오일장이 복숭아 천국이라는 사실. 인근에 과수원이 많아서 시장 곳곳에는 복숭아를 가득 쌓아놓은 아줌마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는 먹음직한 복숭아 한 개에 1천 원은 하는데 이곳에서는 15개 정도에 1만 원이었다. 나는 떨이 판매에 나선 아줌마에게 복숭아 25개를 단돈 1만 원에 구입했다. 조금씩 상처가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득템’이었으니까.

오일장을 구경하면서 우리는 다시 여대생이라도 된 듯 팔짱을 끼고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에도 우리는 서울역에서 남대문을 거쳐 종로까지 엄청 걸어 다녔다. 그때 우리의 주식은 종로의 떡볶이였다. 오일장에서 호떡과 어묵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식성이 그대로라며 깔깔거렸다. 시장을 누비며 나눴던 수다의 7할은 교양 수업 시간에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과거 얘기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10여 년이 훨씬 지난 빛 바랜 추억들이 하나도 눅눅하지 않았다. 마치 금세 구운 새우튀김이나 호떡처럼 바삭거리고 따뜻했다.


미즈내일 박지현 리포터 true100@empal.com

 

7번 국도에서 맛보는 분식 3종 세트
▶대포항의 ‘새우튀김’ 새우튀김 가게 10여 곳이 영업을 하는데 ‘소라엄마튀김’이 가장 유명하다. 다만 오후 늦게 도착하면 장사를 끝내고 폐점했을 수도 있다. 이때는 그냥 줄이 긴 집을 이용한다. 대부분 수입 냉동 새우에 튀김옷을 입혀 맛은 비슷하다. 어디가 더 바삭거리냐의 차이일 뿐! 작은 새우 10마리에 5천 원, 왕새우는 4마리에 5천 원.

▶중앙시장의 ‘만석닭강정’ ‘1박 2일’의 이승기가 다녀간 뒤 대박이 터진 ‘만석닭강정’(033-632-4084)도 빼놓을 수 없다. 4인 가족이 먹기에 충분할 정도로 양이 푸짐한데다, 식어도 그 맛이 유지되는 게 특징(심지어 서울까지 택배도 해준다). 단 한 시간 줄 서기는 기본, 여행 일정이 촉박하다면 패스하거나 옆집 ‘중앙닭강정’을 이용한다. 1마리에 1만5천 원.

▶양양오일장의 ‘옛날호떡’ 갈색 설탕을 넣어서 맛깔 나게 굽는 옛날식 호떡. 살집(?)이 통통하고 쫄깃해서 인기다. 시장에서 “호떡집 어디예요?” 물어보면  다 알려준다. 1개에 500원. 빈대떡집도 유명하다. 즉석에서 직접 갈아 부치는데, 테이블까지 놓여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적당하다.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