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빠듯한 휴가, 빠듯한 경비. 그런데도 마음만은 창공을 날아 이국땅을 밟고 싶다면? 인터넷을 속속들이 살피며 선택한 거의 유일한 방법, 중국 패키지 상품뿐이었다. 쇼핑센터 순례로 여행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많지만 어쩌랴? 월등히 저렴한 가격 앞에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기로 했다. 그래, 눈 질끈 감고 한번 가보는 거야.

 

 

알짜배기 여행 상품? 인터넷을 뒤져라!
솔직히 패키지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쇼핑센터만 진탕 끌고 다닌다는데? 패키지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에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젓던 우리 가족이건만. 이런 거 저런 거 따져가면서 월급쟁이 살림에 애들 둘 키우며 여행하고 다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라도 한번 가보는 거지 뭐! 인터넷에서 제일 저렴한 베이징 여행 상품을 찾았다. 원칙은 저렴하되 ‘노팁 노옵션’ 상품으로 고를 것.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꼼꼼히 체크해가며 가격을 비교할 것. 또 하나. 여행 일정의 시간대를 살피는 거다.

3박 4일이라고 똑같은 3박 4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시에 출발해 몇 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냐에 따라, 3박 3일이 될 수도 있고, 3박 5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른 일정은 베이징 도착 시간이 오전 9시대, 베이징 출발이 밤 9시대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여행 후기를 꼼꼼히 살펴 읽었다. 인터넷 시대에 가장 무서운 건 누리꾼의 꼼꼼 분석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분석 끝에 찾아낸 여행 상품의 가격은 텍스와 유류할증료, 중국 비자 금액까지 포함 54만2천 원. 손품 파느라 몇 날 며칠 고생했지만, 어쨌거나 여행은 즐거운 것. 주기적으로 여행 병이 찾아오는 우리 가족으로선, 그저 공항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춤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자금성+라텍스’
배려, 협동… 단체 여행의 즐거움
단체 여행에선 무조건 일행을 잘 만나야 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라도 대열을 이탈해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천운이 따랐을까? 우리 일행은 모두 16명. 유일한 노부부인 어르신들도 인자하셨고, 다른 일행도 모두 서로 호의적이었다. 지나고 나니 단체 여행의 좋은 점도 발견이 된다. 가족끼리 다닐 때는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일정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었지만, 단체 여행에서 개인 행동이란 있을 수 없는 법. 아이들에게 ‘배려’와 ‘협동’의 중요성을 가르쳐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한 가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은 좀 들었지만, 그래도 압축적으로 요모조모 구경을 잘 다녔다는 것. 온 가족 수학여행 다니듯 베이징 일대를 여행했다.

첫 일정은 자금성. 베이징의 상징 천안문 광장을 지나 자금성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아이쿠. 두 번 가라면 고개를 저을 만큼 더운 날씨. 애나 어른이나 등줄기에선 땀으로 샤워할 지경이고, 양 볼은 빨갛게 익어 복숭앗빛이 됐다. 명대 이후 청조 말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중국 근대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자금성이 어찌나 크고 넓은지, 자금성에 대한 기억은 하염없이 걸었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딸아이는 미리 공부한 풍월이 있어, 지친 엄마에게 이것저것 가이드 못지않게 알려준다. 역시 어딜 가나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는 법’이다.

볼 것을 봤으니, 싼값에 여행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 3박 4일 일정 중에 쇼핑센터 다섯 곳을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그중 오늘 소화해야 할 곳은 라텍스 매장. 가이드 말로는 “안 사도 좋다”지만, 매장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다 매장을 나오는 길. 일행 중 한 사람이 라텍스 베개를 산 모양이다. 그럭저럭 가이드 체면치레는 해준 셈인가?  

 

‘만리장성+보이차’
 끝도 없이 펼쳐지는 중국의 장관
만리장성은 실제로 보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어떻게 그 옛날에 높은 산꼭대기에 이토록 긴 성벽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 무모하다 싶은 일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시킨 진시황이나, 시킨다고 꼼짝없이 따른 백성이나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만리장성은 절대군주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만 리’를 어찌 걸어갈지 걱정했건만, 첫날 단련이 되어 그런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성벽을 따라 걷는 만리장성 길은 의외로 상쾌했다. 산꼭대기라 바람도 선성하고, 날씨가 좋아 저 너머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는 곳마다 포토 존이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작품이 탄생하니, 역시 만리장성이라며 연신 감탄했다. 무리한 토목공사로 중국 역사 최초의 통일 왕조는 수명을 단축했지만, 후대에선 이렇게 관광 수입을 불러오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쇼핑센터 다니는 게 마치 숙제 같다. 이상한 건 ‘오늘은 어딜 갈까? 나도 뭐 하나 사야 하나?’ 하면서도 은근히 궁금해지더라는 것. 아무리 옆에서 감언이설로 꾀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며 자신을 테스트해보는 심리 같은 걸까. 쇼핑센터 가는 게 분명 싫으면서도 왠지 궁금한 역설적인 상황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어쨌거나 오늘의 쇼핑 코스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보이차 가게. 차 맛을 보여주며 보이차가 얼마나 귀한 차인지, 진짜 보이차는 중국에서도 딱 이 가게밖에 팔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상술을 늘어놓는다. 그러더니 마치 선심 쓰듯 오늘만 특별히(?) 이 가격에 드리겠다며 제시한 가격이 무려 56만 원! 공짜로 부어준 보이차 세 잔을 거푸 마신 뒤 슬그머니 일어섰다. 세상에 이게 말이 돼? 이 넓디넓은 중국에 진짜 보이차 파는 가게가 이곳 한 군데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뭐가 아쉬워서 한국 관광객에게만 파격적(?)인 가격에 팔겠다는 건가. 헛웃음만 나온다. 더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보이차 마시면 살도 빠지고 변비도 좋아진다는 말에 잠시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 이내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쇼핑센터 갈 때는 카드를 꽁꽁 붙들어 매둬야겠다.   

 

‘이화원+진주’
 서태후가 가장 좋아한 보석이 진주?
단체 여행을 하니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화원은 청조 서태후가 살던 곳이라는데, 탐욕과 표독의 극치를 달리던 서태후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살이 더 붙어서인지 어이없으면서도 흥미로웠다. 역사인지 옛날얘기인지 그 중간을 오가며, 가이드의 말을 흥미롭게 듣던 딸아이에게는 중국 여행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중국사에 부쩍 관심을 보이니 말이다. 우리 딸들은 각각 초등 5학년과 3학년.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보면, 요즘이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데리고 다녀도 나중에 ‘생각이 안 난다’ 소리를 하니 돈 들여 여행하는 게 다 소용이 없는 것 같았고, 선배 엄마들 말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짬을 내기 어려워 여행할 수 없다고 하니,초등 고학년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닌가 싶다. 가능하다면 자주 데리고 다니고 싶건만….

가이드가 오늘의 일정을 이화원으로 정한 건 대단히 절묘한 일이었다. 서태후가 살던 이화원에서 서태후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여인이었는지 설명하며, 그녀가 가장 좋아한 보석이 ‘진주’라는 얘기를 유난히 많이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 가볼 쇼핑센터가 바로 진주 파는 곳이란다. 말하는 가이드 아저씨나, 듣는 관광객이나 빵 터지는 순간이다. 짜증을 낼 수 없는 것이 어림잡아 계산해도 우리가 낸 돈으로는 항공료와 숙박비에 대절 버스비와 기사 인건비, 이곳저곳 입장료와 식사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을 것 같다. 가이드도 일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임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적당한 범위에서 나도 뭔가 하나 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적당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바로 진주조개.

작은딸은 뭐든 키우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제일 키우고 싶어하는 건 물론 강아지지만, 엄마의 절대 반대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곤충부터 물고기까지 키워대는 아이가 우리 둘째 녀석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진주조개를 본 것이다. 상인 말이,조개 안에 진주 핵을 넣어놨으니, 이걸 가져가서 수돗물에 담가두고 키우면 그 안에 있는 진주도 점점 자란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개 한 마리 안에 진주가 하나가 들었을 수도, 몇 개가 들었을 수도 있단다. 가격도 100위안(한화 약 1만7천 원)이니, 설령 바가지를 써봤자 그리 큰 손해도 아닐 터. 속는 게 아닐지 걱정되긴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물만 갈아주면 되니 걱정 말라는 상인의 말에 결국 아이 손에 진주조개를 들려줬다. 밀봉된 캔 속에 들어있는 조개를 가져오며 아이는 한껏 꿈을 꾸었다. 조개를 키워 진주가 자라면 그걸로 엄마 반지를 해주겠다는 둥, 팔아서 엄마 선물을 사주겠다는 둥, 아이도 꿈이 컸고 엄마도 김칫국을 마셨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은 딱 거기까지! 

어찌된 영문인지 며칠이 지나도 조개가 꿈쩍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봉지에 든 바지락만 봐도 입을 벌려 발을 내는데, 이 진주조개는 전혀 미동이 없다. 설마‥ 며칠을 기다리다 결국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과도를 가져다가 조개의 입을 강제로 벌리기까지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품었건만, 입을 벌려보니 그 안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작은 진주 빛 구슬 하나. 이게 진짜 진주인지 가짜 구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게 이렇게 굴러다니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 ‘설마’는 ‘역시나’가 됐고, 나와 작은딸의 꿈도 거기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같이 진주조개를 사온 다른 집 아이는 여태 그 조개가 살아 있다고 한다. 그 안에 진주가 들었는지 아닌지는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지만, 조개가 살아 있는 한 아이의 꿈도 살아 있을 테니까.


미즈내일 강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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