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MBC-TV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코너(이하 ‘나가수’)는 온 국민의 관심사라 할 만하다. 일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출연 가수들의 노래와 퍼포먼스에 감동한다. 여기 출연 가수도 아니면서 관심을 끄는 이가  있으니, ‘나는 가수다’ 자문위원장 장기호 교수다. 얼굴색 하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순위를 발표하는 이 사람.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로 “이번 주 1위는~”하고 말하는 순간 모두 숨을 죽인다. 그를 만나러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찾아갔다.
취재 박선순 리포터 ss7262@hanmail.net 사진 이운영

 

나는 ‘나가수’ 자문위원장이다!
장기호(50) 교수는 MBC PD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 “좋은 음악이 정말 많은데 이대로 묻힐 순 없다. 가수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인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자.” 이어 이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저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도 지양하는 편이죠. 그리고 가수들을 모아 경연을 한다니, 처음엔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프러포즈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어차피 방송될 것이라면 대중음악을 위해 내 각도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달라고 했죠.”

제작사 측에서 찾는 자문위원장의 요건은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학계에 적을 두고 있고, 가수들에게 어느 정도 인식이 된 사람이었다. 이런 면에서 대중음악을 했고, 현재 대학에 있는 장기호 교수는 적임자였다.

그를 선두로 여러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구성됐다. 가수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오는 이들의 평가는 비판을 위한 평가라기보다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평가에 가깝기에 자문위원들의 평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가수’가 방영된 후 폭발적인 관심만큼 논란도 적지 않았다. 초기 청중 평가단의 선택과 달리 탈락 가수에게 다시 기회를 주면서 결국 담당 PD가 교체된 일도 그중 하나.

그러나 이 또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했다는 장 교수. ‘나가수’의 힘은 무엇보다 아이돌이나 댄스 그룹이 장악한 대중음악계에서 묻혀 있던 실력파 가수들에게 제2의 노래 인생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실제 음원 시장의 90%가 아이돌 가수의 노래였던 데 비해 지금은 ‘나가수’에서 공연된 노래에 50%를 내줬다. 수면 아래 숨어 있던 중·장년층 팬들이 부상했는가 하면, ‘이런 류의 음악을 해도 팔린다’는 음원 시장의 재인식을 가져오기도 했다.

리포터 역시 500명의 청중 평가단은 아니지만 TV를 보면서 나름대로 평가를 한다. 그러나 자문위원들과 사뭇 다를 때가 있다. 이 차이에 대한 해답도 장 교수는 명쾌하게 내려준다.

“음악을 얘기할 때 보통 개인사나 음반 판매량 등 음악 외 영역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죠. 그러나 자문위원은 전문가적 시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처음엔 청중 평가단도 노래보다 가수를 봤고, 가수의 백그라운드를 보고 무대에서 얼마나 땀을 흘리는지만 봤습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청중 평가단도 업그레이드됐다는 걸 느낍니다. 보시다시피 자문위원의 평가와 비슷해져가죠?”

 

나는 실용음악과 교수다!
대중음악을 하던 그가 유학길에 오른 것도 전문적인 이론을 겸비하고 싶어서다. 그동안 끊임없이 분석하고, 간간이 교재도 만들었단다. 지금은 실용음악의 바이블로 불릴 정도.

2002년부터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장 교수는 실용음악과는 어느 학과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과라고 말한다.

대중음악의 다양한 세계를 배우는 곳인데, TV 속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라는 착각에 아트적인 측면보다 엔터테이너적 측면을 강조해 극히 일부만 배우는 게 현실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아트를 먼저 만들어 엔터테이너로 포장해야 진정한 대중음악이며 실용음악이라는 것이 장 교수의 소신이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어느 날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도피에 불과하다고 일언지하에 잘랐다는 그. 이 방면에서 필요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이 있더라도 갈수록 부딪쳐야 할 요소가 많은데,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 재능이 있긴 하지만 때가 늦었고, 취미로 하라고 결론을 냈단다.

올해 수시 모집에서 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을 반영하듯, 실용음악과의 경쟁률이 상당했던 데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인생은 방향감각이 중요합니다. 진로도 마찬가지죠. 좋아하는 것과 재능이 일치할 때 그것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재능은 무시하고, 단지 하고 싶어 뛰어드는 것은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재능만 믿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 또한 낭패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재능과 일치되어야 하고, 굶어 죽더라도 그 일이 좋을 때 꿈은 이뤄진다고 봅니다.”

 

나도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다!
장 교수는 해군 홍보단 출신이다. 제대 후 가수 김수철씨를 만나 음악을 시작했다. 그 후 같은 동네에 살던 고 김현식씨와 어울리다 음반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어 김현식 3집 앨범에 참여했다. 김종진씨를 만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음악을 그만두려다가 지금은 드라마 제작자로도 유명한 송병준씨를 만나 광고 음악에도 도전했다. 당시 탄생한 음악이 드라마 배경음악으로도 쓰인 ‘샴푸의 요정’이다.

사람들이 이 곡에 보내는 애정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의 길에 들어섰다는 장 교수.

이후 그룹 ‘사랑과평화’에 합류하고, ‘빛과소금’도 창단했다.

가수 이승환, 김현철, 이문세, 신승훈, 박학기, 장필순, 권인하 등 그동안 그가 프로듀싱, 연주, 작곡에 참여한 음반만 해도 쟁쟁하다.

2007년에는 솔로앨범 <KIO CHAGALL OUT OF TOWN>을 발표했고, 지난 6월에는 빛과소금 콘서트도 열었다. 15년 만에 선 무대다. 여전히 연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장 교수.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KIO CHAGALL OUT OF TOWN> 속편으로 미니 앨범도 나올 예정이란다. 그 자신, 대중음악과 끊임없이 호흡해온 이다.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아도 표정이 자유롭다. 처음 교수실 문을 열었을 때 양복을 입고 있지 않아 놀란 뒤 두 번째 놀라운 모습이다.

TV 속 진지함이 대중음악에 대한 그의 진정성 때문이었다면, 유쾌한 웃음과 뚜렷한 음악 철학 속에서 대중음악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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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호 교수는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MBC-TV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했으며, 김현식 3집 편곡과 연주를 했다. 그룹 ‘사랑과평화’ 베이시스트, 사랑과평화 5집 다수를 작곡·편곡·녹음했다. 그룹 ‘빛과소금’을 결성했으며, 솔로앨범< KIO CHAGALL OUT OF TOWN>을 발표했다. 작품으로 ‘왜 날’ ‘샴푸의 요정’ ‘그대 떠난 뒤’ ‘오래된 친구’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등이 있다. 이승환, 김현철, 이문세, 신승훈, 박학기, 장필순, 권인하, 낯선사람들 등의 음반에 프로듀싱과 연주자, 작곡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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