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진화론을 탄생시킨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제도. 다들 과학 시간에 들어봤을 이름인데요, 갈라파고스는 다른 남미의 관광지보다 가족 단위 여행객과 여름 캠프를 온 미국 청소년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만큼 자연을 관찰하면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원시의 자연이 살아 있는 갈라파고스로 가보실까요?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손질중인 생선을 노리는 물개.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불법이므로 아저씨는 생선 찌꺼기를 깨끗히 봉지에 넣어 처리,물개는 군침만 흘리다 돌아서야 했다.
무조건 간다, 갈라파고스!
많은 남미 배낭여행객이 갈라파고스를 일정에서 제외한다. 이유는 단 하나, ‘예산’!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가슴 벅찬 그곳을 차마 일정에서 뺄 수 없었기에 과감히 두 달 치 예산을 2주 만에 써버리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갈라파고스 행 비행기 표를 구하는 데 실패했지만, 무작정 공항으로 갔다. 태평양의 적도에 위치한 갈라파고스제도에는 산타크루즈(Santa Cruz) 섬과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 섬에 공항이 하나씩 있다. 이중 갈라파고스에서 제일 큰 섬이고, 호스텔이나 여행사가 많은 산타크루즈 섬으로 향했다.

산타크루즈 섬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회사의 체크인 창구에 가서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무작정 기다렸다. 여행은 기다림과 나의 싸움인가, 아니면 나의 무모함인가? 첫 번째 비행기는 빈자리가 없었다. 두 번째 비행기도 마찬가지. 결국 무려 100달러를 더 주고야 산타크루즈가 아닌 산 크리스토발 행 비행기에 올라 갈라파고스제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갈라파고스, 넌 결국 내 예산을 이렇게 갉아먹는구나.

 

갈라파고스에 있는 나무처럼 자라는 선인장. 천적인 거북과 이구아나를 피하기 위해 진화한 모습이다.
원시 자연이 살아있는 찰스 다윈의 섬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다윈과 함께 밑줄 쳐가며 외우던 갈라파고스제도. 1835년 스물여섯 살 다윈이 영국 해군 측량선을 타고 섬에 들어와 동식물의 변이를 관찰, 진화론을 완성한 바로 그곳이다. 큰 섬 13개와 돌섬 100여 개로 구성된 갈라파고스제도는 마그마의 활동과 판의 이동으로 아직도 섬이 생성되고 있다. 지구에서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하지만, 기막힌 원시의 자연이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대륙에서 1천 km 떨어진 자연 환경은 외부 동식물 유입을 어렵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동식물의 변이에 따른 진화를 관찰하기 좋은 조건이란다. 갈라파고스제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왠지 자연의 신비를 이해한 과학자가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물개에 대해 설명 중인 내추럴리스트. 물개는 새끼를 냄새로 구별하기 때문에 사람의 냄새가 묻으면 새끼 물개는 어미에게 버림받고 굶어 죽는다. 
미국 시민권 따기보다 어려운 갈라파고스 거주권
갈라파고스제도는 다윈이 그 가치를 발견하기까지 쓸모없는 섬으로 버려졌지만, 그 덕에 자연환경이 파괴되지 않았다. 오늘날 갈라파고스제도는 무관심이 지켜낸 자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갈라파고스제도에서 거주가 허가된 섬은 산타크루즈, 산 크리스토발, 플로레나(Florena) 뿐이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산타크루즈와 산 크리스토발에 거주한다. 섬에서는 작물의 재배, 가축, 어업 등이 당국의 통제 아래 진행되며 동식물의 유입 또한 철저히 관리된다. 미국 시민권 따기보다 어려운 것이 갈라파고스 거주권 따는 것 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거주가 허용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은 내추럴리스트와 동행해서 방문할 수 있다. 내추럴리스트는 갈라파고스를 안내하는 가이드로, 내추럴리스트를 양성하는 대학의 3년 과정을 마쳐야 한다.

갈라파고스 거주자들도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갈라파고스 태생만 내추럴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크루즈 투어나 데이 투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갈라파고스의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투입되어 관광객에게 갈라파고스의 자연을 소개하고, 자연을 해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평화로운 공존의 섬, 갈라파고스

이곳 벤치는 물개와 사다새, 인간의 공유물이라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갈라파고스제도의 산 크리스토발은 평화로운 어촌 같았다. 성수기인데도 관광객은 모두 산타크루즈섬으로 갔는지 해변을 따라 난 산책로는 조용했고, 기념품점도 오전에 잠깐만 열었다.

하지만 이런 조용함이 썰렁하기보다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 편안한 평화로움에 반해 엄청난 물가를 잠시 잊고 산 크리스토발 섬에서 빈둥대고 싶어진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면 사람보다 많은 물개들이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심지어 사람 대신 벤치에 앉아 있다. “뽁 뽁” 소리를 내며 엄마 젖을 빠는 귀여운 아기 물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동화책에서만 보던 사다새(펠리컨)도 우리나라에서 참새 보듯 흔하다.

무엇보다 동물들이 전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작은 새나 도마뱀은 가까이 가면 도망치지만, 웬만한 동물은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무시당한(?) 거 같아 조금 섭섭할 정도다. 갈라파고스제도에서 동물이 얼마나 잘보호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GAIAS 대학. 키토에 있는 샌프란시스코대학의 부설 대학으로, 갈라파고스의 자연환경과 자원을 연구하는 매력적인 연구소를 갖추고 있다.
환상의 조건 GAIAS 대학
산 크리스토발 섬의 만 해변 앞에는 GAIAS 학교도 있다. 수도 키토에 있는 샌프란시스코대학의 부설 대학으로,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된다. 매인 캠퍼스에서 생물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일부 학점을 취득하는 과정과 지역 주민을 위한 친환경 관광학, 서비스 경영학, 자연 자원 경영학, 경영학 등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섬세하고 복잡한 자연환경을 지속·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커뮤니티 칼리지가 있다. 

이 학교는 학부 과정뿐만 아니라 갈라파고스의 자연환경과 자원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운영하는데, 운이 좋게도 친절한 ‘훈남’ 연구원을 만나 연구소 구석구석을 안내 받았다. 연구소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설비를 갖추는 중인데도 훌륭해 보였다. 훈남 연구원은 갈라파고스 출신으로, 이 연구소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이 남달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갈라파고스의 자연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곳의 연구원들에게 축복이 아니겠는가! 전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과학도였던 나도 이곳에서라면 다시 한 번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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