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26 재보궐선거 후 정치권은 새로운 전쟁에 돌입했다. 이번엔 ‘쇄신전쟁’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재보선민심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보궐선거 패배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쇄신논의를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지도부 책임론과 인적개편 문제를 둘러싼 당 내부의 갈등은 이미 진행중이다. 민주당도 거듭 태어날 것을 다짐하며 반성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여야의 유력한 대선주자들도 쇄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대세론은 원래 없는 것”이라며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당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성찰한다”며 “민주당이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나만 빼고 변하면 된다’는 기득권에 민심은?
그러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말하는 만큼 성찰하고 행동으로 옮길지 솔직히 기대가 되지 않는다. 변화를 얘기하면서도 자신을 버릴 생각이 없는 당내 기득권세력의 존재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쇄신파는 ‘의원직을 걸더라도 근본적인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당 주류는 현재의 질서에 변화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민심을 수습하겠다고 방향을 정한 모양이다. 사실상 주류인 친박 내부에서는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부채’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가 박 전 대표의 대선행보에 상처를 낼까봐 방어하는 데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장 후보선출 과정에서 당내 일부 세력은 자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줬다. 이들은 야권통합 논의 과정, 그리고 전당대회와 총선, 대선에서 ‘지역 역차별’과 ‘정통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밑천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게 뻔하다. 

이러니 정치권 안팎에서 “여야 모두 쇄신 목소리는 요란하겠지만 별로 바뀐 게 없이 지금 모습대로 가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10·26 재보궐선거 민심의 핵심은 ‘1%사회에 대한 거부’ ‘여의도 기득권에 대한 거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대세론이나 정통야당을 떠나 그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미래를 맡기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의 권리선언이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행동하는 무당층’은 나름의 정치행위로, 투표행사로 ‘기득권세력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양극화 심화와 일자리 부족, 전세·물가대란으로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어 놓고도 ‘1%를 위한 정치’에 급급한 한나라당에 대해 ‘SNS 선거놀이’로 조롱했고, 투표로 심판했다. 야당다움도 새로운 대안도 보여주지 못한 민주당에 대해서도 ‘자당 후보를 못 내게 하는’ 불명예로 경고를 줬다.


 
서까래 몇 개 바꾼다고 새집 되지 않아
역설적이게도 10·26 재보선 결과는 여의도 정치권에게 살 방법을 제시했다고 본다. ‘바꾸면 산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내부전쟁에서 기득권을 버리자는 쪽이 이겨야 할 이유다. 일찍이 당나라 말기의 선승 임제 의현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할아버지를 만나면 할아버지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선어를 남겼다. 당대의 고승 단하천연은 날씨가 추워지자 나무부처를 태워 따뜻함을 얻었다(丹霞燒佛). 눈앞의 허상과 집착을 버리라는 선불교의 가르침이지만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처지에 빗대도 별로 틀린 교훈이 아니다.

서까래 몇 개 바꾼다고 기둥까지 좀 먹은 집이 새집으로 바뀌지 않는다. 아예 주춧돌을 새로 놓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낡은 한나라당을 죽이고, 낡은 민주당을 죽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비워야 채울 공간이 생기고, 죽여야 살 자리가 만들어진다.

아직 총선은 5개월, 대선은 13개월 남았다. 죽이고 새로 살릴 시간 역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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