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여행이 다소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옛날에 살던 잘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인데 그 위인들이 하나같이 남자고, 활동 영역이 정치나 학문 쪽이라 고리타분할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말랑말랑, 감칠맛이 넘친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간다. 경북 영양, 참으로 멀기도 하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 휴게소에서 한 번 정도 쉬면 되는데, 두 번이나 쉬고도 길이 조금 남았다.

“엄마, 아직 멀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누굴 만나러 가요?”  “할머니!”

“어느 할머니요? 친할머니? 외할머니?”

“아니, 요리 잘하시는 어떤 할머니!”

“요리 잘하시는 할머니? 누구예요? 그럼 맛있는 요리도 해주실까요?”

“그럼! 그래서 그 맛난 음식 먹으러 가는 거야.” “정말요? 와~ 신난다.”

 

당면이 들어가지 않은 잡채.
눈앞에서 펼쳐지는 17세기 요리
드디어 도착이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따뜻하며 안온한 공간, 모락모락 맛난 냄새가 난다. 반짝반짝 빛나는 놋수저가 묵직하니 놓여 있고, 물김치와 덜어 먹는 접시가 기다린다. “이것은 잡채입니다.”

“엄마, 이게 잡채래요. 당면도 없는데…. 구절판 같아요.”

“저는 450년 전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지은 장계향 어르신의 13대 종부 조귀분입니다. <음식디미방>에 전하는 방법으로 만든 첫 음식은 잡채입니다. 꿩고기를 삶아 잘게 찢은 것을 가운데 두었고 주위로는 여러 가지 나물을 둘렀습니다. ‘붉은색은 무엇이냐’ 물어보시는 분이 많은데 동아를 썰어 맨드라미 물을 들였습니다.”

동아에 맨드라미 물을 들였다! 강원도에서 자란 필자는 어릴 적 어머님이 증편이라고도 하는 기정떡 만드는 것을 많이 보았다. 명절 때면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구멍이 뽕뽕 생기도록 부풀어 오르면 주르륵 쟁반에 담고 그 위에 곱게 썬 밤, 석이버섯, 대추 등 색색의 고명을 얹어 쪄내곤 했다. 마당의 맨드라미 꽃을 뜯어다 쪽쪽 찢어 얹는 것이 필자의 몫이었으니 흰 떡 위에 붉은 맨드라미가 붉게 물들며 꽃처럼 화사하게 웃는 듯했다. 어릴 적 기억에 아삭아삭 동아의 신선한 식감(食感)이 더해지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대구 껍질로 만든 대구 껍잘 누르미
대구 껍질 누르미, 어만두, 빈자병…
“자, 이번 요리는 대구 껍질 속에 잘게 다진 표고버섯, 꿩고기 등을 넣어 만든 대구 껍질 누르미입니다. 꿩고기 국물과 밀가루를 섞어 즙(소스)을 얹었습니다. 이것은 어만두입니다. 보통 밀가루로 만든 피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광어 살을 저민 피에 목이버섯과 버섯을 소로 넣었습니다.”

“와~ 정말 신기한 요리들이 많아요. 참 맛있어요. 그런데 이건 뭐예요?”

빈자병, 화전, 섭산적 3종 세트
“그건 빈자병이란다. 녹두를 갈아 반죽을 만들고 안에 팥을 넣어 노릇하게 지졌지.”

“그런데 굉장히 달콤해요. 팥이 이렇게 단가요?” “꿀로 팥을 반죽했단다.”

화전, 가제육, 영계찜 등 맛난 음식이 이어진다. 야제육(野猪肉)은 멧돼지 요리고, 가제육(家猪肉)은 집돼지 요리다. 박과 무의 중간 형태 채소인 동아를 이용해 동아누르미, 동아선, 동아적, 동아돈채 등 다양한 요리를 하니 놀랍기만 하다. 생더덕을 두드려 얇게 펴고 찹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긴 뒤 꿀에 잰 섭산석이 맛있고, 피를 맑게 하는 석이버섯을 넣고 떡을 빚어 잣가루로 고명을 얹은 석이편도 독특하다. 채소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찌거나 구워냈기에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깔끔하다. 또 재료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 있으니, 이것이 모두 <음식디미방>에 담긴 요리들이다.

 

 
80세 할머니가 남긴 146가지 생활의 비법
<음식디미방>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 원래 이름은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으로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方文)’이란 뜻의 조리 백과, 즉 요리책이다. 고어에서는 ‘지’ 발음을 ‘디’로 했다. 정부인 안동 장씨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쓴 책으로 ‘동아시아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이자 ‘한글로 쓴 최초의 요리서’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엄마, 아주 오래된 책이네요. 이분은 요리사였나요?”

안동 장씨 장계향은 주부다.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제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끼되,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떨어지게 하지 말라”고 전하니 자식 열을 키우고 환갑 진갑을 넘긴 벽촌의 부인이 자신의 노하우를 정성 들여 남긴 것이다.

<음식디미방>에는 요리만 있는 게 아니다. 오이지 물에 꿩고기를 삶고 소금으로 간한 뒤 삭혀서 꿩김치를 만드는 비법, 복숭아를 밀가루 죽에 넣어두면 한겨울까지 싱싱하다는 등 음식 저장 노하우도 담겨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채소와 과일을 보관해 다른 철에 얼마든지 사용한 것이다. 국수와 만두를 비롯한 면병류, 어육류, 소과류 등의 조리법과 술 만드는 법 51가지, 음식 재료의 저장·발효·보관법 등에 이르기까지 장계향 할머니의 살림 노하우 146가지를 담았다. 게다가 340년이 지난 요즘도 재연할 수 있을 만큼 꼼꼼하게 적혀 있으니 <음식디미방>이 갖는 의미는 크다. 1600년대 경상도 영양 지방에 살던 사대부가 안주인이 가정에서 실제 만들어 먹던 식생활을 엿볼 수 있고, 옛날과 오늘의 식문화를 비교·연구하는 소중한 학술적 자료이자 사라져가는 옛 조리법을 발굴할 수 있는 지침서로서도 그 가치가 상당하다.

 

공부 잘하는 자식보다 착한 자식이 좋다
“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왜 한글로 쓰였나요? 한문을 모르셨나요?”

“아니, 장계향 할머니는 한문을 굉장히 잘하신 분이야. 열 살 때 <소학>과 <십구사략>을 깨치셨거든. 한문 실력이 뛰어난데도 한글로 쓴 것은 먼 훗날 자식들까지 가까이 두고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

장계향 할머니는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8년 11월, 경당 장흥효(1564~1633)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부친은 퇴계학파의 적통으로 서애 류성룡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중심 인물이라, 많은 제자들이 집에 드나들었다. 어려서부터 그런 분위기가 몸에 배어 열두 살에 ‘경심음’ ‘성인음’ ‘소소음’ 등의 시를 창작했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한다. 열아홉 살에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과 혼인하는데, 부친의 총애를 받던 제자로 1남1녀를 두고 아내와 사별한 상태였다. 장계향은 전부인의 아이를 매일 10리(4km)씩 업어 나르며 공부시켰고, 결혼 뒤에는 자신이 낳은 6남 2녀를 포함해 자식 열 명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인 장씨라고 쓰여 있어요. 무슨 뜻이에요?”

장계향의 자녀 중 셋째 아들 길암 이현일이 대학자이자 이조판서에 올라 정부인의 품계를 받았으니 ‘정부인 장씨’라 부르는 것이다. 이현일은 어머니의 80평생을 기록해 <정부인 장씨 실기(實記)>라는 책을 썼는데, 그가 기억하는 장씨의 모습이 참으로 가슴 뜨끈하다.

“너희가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맹수도 품고 길들이는 여인의 힘
맛난 음식을 먹고 나서 두들 마을을 돌아본다. 석계 이시명 선생은 1640년(인종 18)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길모퉁이에 석계고택이 보인다. 정부인 장씨가 1680년(숙종 6) 83세로 임종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아빠, 생각보다 집이 작아요. 이게 전부예요?”

석계고택은 일(一)자형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한 이(二)자형 구조로 앞쪽에 3칸 규모의 평대문이 있다. 그 명성에 비해 참으로 단출하다. 이 집에서 정말 자식 열 명을 키워냈단 말인가? 문득 장씨 부인에 대해 읽은 글줄이 생각났다.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고생하면 장씨 부인은 솥을 밖에 걸고 죽과 밥을 지어 사람들을 먹였으며,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를 돌보고, 고아를 데려다가 가르치고 길렀다. 몰래 음식을 보내고 이를 알리지 못하게 하는 등 남모를 선행에 인덕과 명망이 자자했다니 자신의 치부(致富)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살폈기에 집이 작고 단출한 것이리라.

마을을 좀더 돌아가니 석계 이시명이 14년간 후학을 양성하던 석천서당이 있다.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이곳 두들마을에서 석계 이시명은 그저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살았다. 전통 가옥 30여 채와 기암괴석이 멋진 두들마을은 ‘언덕 위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문학의 거장 이문열 작가의 고향으로 안동 장씨는 이문열의 선대 할머니이자,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다.

17세기 조선 시대 음식이 궁금해 찾아왔던 영양의 두들마을에서 만난 여인! 부모를 잘 모시고 자녀를 잘 키운 현모양처라는 점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지만, 자식이 열 명이나 되고 사회사업가 수준의 선행을 했음은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수준급의 시를 짓고, 개성 강한 그림을 남기고, 과학서에 가까울 정도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요리책을 남긴 여인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진취적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그리 만만치 않은 시절이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장계향 할머니가 남긴 그림, 맹호도를 보았다. 사나운 호랑이도 온순하게 만들고 품을 수 있는 여인이었기에 그러한 일들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 이것이 맹호도라고 하셨죠? ‘맹수’같지 않고 ‘멍수’같아요. 무섭지 않고 우스워요. 집에서 한 마리 키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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