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의 쿠엔카(Cuenca)라는 도시를 들어보셨나요? <U.S. 뉴스&월드리포트>가 선정한‘은퇴 후 살기 좋은 11곳’중 하나죠. 도시의 센트로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답고 좋은 날씨와 값싼 물가, 거기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드물게 빈부 격차가 적어 치안 역시 좋은 곳이죠. 아름다운 도시 쿠엔카로 나보실까요?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에콰도르 여행의 마지막 도시‘쿠엔카’
에콰도르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가봐야 할 도시가 있다. 에콰도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쿠엔카다. 스페인이 에콰도르를 점령하기 전부터 있었던 도시지만, 지금의 센트로 지역은 1557년 스페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450년 이상 된 도시로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 양식이 잘 유지·보존돼 199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쿠엔카는 지난해 <U.S. 뉴스&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은퇴 후 살기 좋은 11곳’중 하나로 꼽히면서 에콰도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서 명성을 다시 확인했다.

아름다운 도시 경관과 좋은 날씨가 마음을 사로잡은데다,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내 관광 중 만난 메스티소(mestizo: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는 빈부 격차와 인종차별이 없는 쿠엔카에 무한한 자부심을 보였다.

 

스페인 지배의 잔재를 지우고자 한 쿠엔카 사람들
쿠엔카의 센트로 지역을 깊숙이 둘러볼수록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건물이 대부분 스페인의 ‘ㅁ’자 중정(Court Yard) 식이 아니라 창이 많은 프랑스 식이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도시에 프랑스 식 건물이 즐비하다? 쿠엔카 시민의 열띤 설명은 이렇다.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난 쿠엔카 사람들은 스페인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양식의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프랑스 식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순간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과 서울시 청사 철거 논쟁이 머리를 스쳤다. 일제의 잔재를 지우던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벌써 그들에게 몇 발짝 다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Si Si(스페인어로 ‘맞아 맞아’) 맞장구치고 있었다. 200년 세월을 스페인의 지배 아래 살아온 남미인의 일상은 스페인식에 매우 익숙하고 심지어는 본인들을 지배하던 스페인을 동경하기에 이르렀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답답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을 확인하니 속이 시원했다.

 

 디자이너의손을거치면서리본,색실로마지막모양을내고있다.
멋쟁이들의 필수품, 파나마모자
쿠엔카를 대표하는 또 다른 것은 파나마모자(Panama Hat)다. 파나마모자는 정글에서 채취한 파나나모자풀의 어린잎을 주재료로 만든다. 잘 건조된 파나나모자풀을 고산 지역으로 옮겨와 일일이 손으로 찢어가며 흰색에서 크림색 모자를 짜낸다.

기본 형태가 만들어진 모자는 공장으로 팔려가 기계 위에서 다시 모양을 잡고, 리본이나 색실 장식을 붙여 매장에 진열된다. 파나나모자풀을 가늘게 찢어서 만든 모자일수록 고급품으로 인정 받는데, 장인의 손을 거친 최고급품의 가격은 1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모자에 물을 받아도 새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다니 ‘가격 시비’가 미안할 정도다.

파마나모자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수공예품이지만, 제조과정이 힘들고 손에 쥐는 돈이 적어 만드는 사람이 줄어드는 형편이다. 전통 공예품 장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나라나 남미나 다를 바 없었다.

 

 햇빛에서말리면자연스러운베이지모자가,그늘에서말리면새하얀모자가된다.
파나마운하를 거쳐서 파나마모자?
그런데 에콰도르에서 만드는 모자를 왜 파나마모자라고 부를까? 여기에 두 가지 설이 있다. 공식적인 이야기로는 20세기 초중남미 여행가들에 의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모자는 이후 파마나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파나마모자로 불렸다는 것이다.

박물관을 안내해주던 가이드의 믿거나 말거나 설명은 훨씬 흥미롭다. 한때 중남미 멋쟁이들의 필수품이었던 파나마모자는 에콰도르에서 만들어져 중남미 곳곳으로 퍼져나갔는데, 파나마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 언제인가 파나마를 방문한 미국의 대통령이 모든 사람들이 파나마모자를 쓰는 것을 보고 귀국길에 모자 하나를 구입해 파나마모자로 미국에 소개했다. 그 뒤로 에콰도르에서 만들어진 이 모자는 미국에서 파나마모자라고 불렸고, 이 이름은 점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뒤늦게 모자의 원제조자들이 이름을 바꿔보려 시도했으나 너무 유명해진 뒤라 쉽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든 파나마모자는 지금도 전 세계 멋쟁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파나마 모자 대표 생산 판매사인‘Homero Ortega’사의 박물관 한쪽 벽에는 프랭크 시나트라, 앤서니 홉킨스, 션 코넬리, 브루스 윌리스, 줄리아 로버츠, 브래드 피트 등 유명인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모두 파나마모자로 한껏 멋낸 모습이다.

 쿠엔카아낙들의손으로짠모자들,마지막손질을기다리고있다.
긴 여행으로 행색이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고 나도 파나마모자로 멋을 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형적인 동양인의 얼굴인 나에게 파나마모자는 당최 어울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살짝 변형된 파나마모자를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 아름다운 도시 쿠엔카를 에콰도르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것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여행하면서 수많은 멋진 도시에 발을 들여놓겠지만 쿠엔카와 그 도시에서 스친 사람들은 한동안 내 가슴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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