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과 만나는 마카오 여행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 어느 시대에 가장 가보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제 시대가 끌렸다. 역동적이고 글로벌한 움직임을 보이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 그 문화를 엿보고 싶었다.   _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홍콩에서 하룻밤을 보낸 토요일 오전, 여권을 챙겨 서둘러 길을 나섰다. 교통편은 호텔 셔틀버스. 차에 탄 지 5분도 되지 않아, 기사 아저씨가 ‘마카오 페리 터미널’을 연거푸 외치면서 하차 안내 멘트를 한다. 숙소를 선착장이 있는 홍콩 섬, 셩완에 정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터미널 안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티켓을 구입한 뒤 환전소에 들러 하루 동안 쓸 경비를 마카오 화폐 파타카로 바꿨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마카오에서는 홍콩달러를 사용할 수 있지만, 홍콩에서는 파타카를 쓸 수 없는 것. 기념으로 보관할 생각이 아니면 출국 전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

마카오까지는 쾌속선으로 한 시간. ‘오호, 벌써 도착했어?’ 상쾌한 마음으로 배에서 내리는데, 오 마이 갓! 외국인 입국 심사대가 만원이다. 단체 관광객이 많은데다, 입국 카드를 쓰지 않은 여행자도 여럿.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30분 넘게 차례를 기다리니, 페리 터미널을 속속  빠져나가는 홍콩 시민과 마카오 거주민이 부러울 따름이다. 주말을 이용해 여행할 계획이면 입국 심사에서 걸리는 시간을 염두에 두길.

 

평화로운 아침 산책
마카오를 ‘동방의 작은 유럽’이라 부르는 건 450년 이상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 가톨릭을 전파하는 거점 역할을 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이들의 역사에서 비롯한 마카오만의 특징이다.

우리 가족이 정한 첫 방문지는 ‘카모에스 공원’.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군인 카모에스를 기리는 곳인데, 이곳을 찾아간 이유는 단 하나.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역만리 외딴곳에 한국인 신부의 자취가 남았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공원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마을 쉼터다. 해금처럼 생긴 현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할아버지와 나무에 기대서서 ‘등 치기’ 체조를 하는 아주머니, 무리 지어 바깥 활동을 나온 유치원생들까지…. ‘한국에 비유하면 마카오의 파고다공원’이라는 여행 책자 설명이 딱 들어맞는 풍경이다. 마카오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마주하니, 편안함이 밀려온다.  

공원 안쪽에서 갓과 도포 차림의 동상 발견. “마카오에서 공부했구나!” 수도자의 길을 가기 위해 멀고 긴 여정을 택한 청년 김대건의 결단에 ‘짝짝짝’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동네 약수터 느낌의 작은 공원이지만, 애국심이 발동한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카모에스 공원에 유독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이리라.

포르투갈 귀족의 여름 별장으로 지은 ‘카사 정원’, 종교인과 선원, 무역상, 정부  관리 등이 잠든 ‘신교도 묘지’, 결혼식이 많이 열려 꽃들의 성당이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 성당’도 세계문화유산. 관광객이 붐비지 않아 조용하게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마카오의 어제’와 마주하다
마카오가 사랑받는 이유는 도보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 이정표를 따라 5~10분 걸으면 금세 다음 목적지가 나타난다. 우리를 기다린 건 17세기 초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이 설계한 ‘성 바울 성당’ 유적. 파란 하늘과 맞닿은 장엄한 건축미에 놀라고, 7년간 공들인 정교한 조각에 감탄이 절로 난다.

아쉬운 점은 1835년 의문의 화재로 성당 앞면과 계단, 지하실만 남고 모두 소실된 것. 하지만 건물 뒤쪽에 남은 성당 터를 둘러보면서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저거 해골 맞지?” 성당 지하 ‘종교예술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성당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천사와 성모마리아, 돛을 단 범선 등 ‘숨은 조각 찾기’에 열심이다. 머리 일곱 달린 용은 그렇다 쳐도, 성당 벽면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운 해골이라니!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니 ‘사후를 생각해 죄를 짓지 마라’는 한자도 함께 쓰여 있단다. 보는 만큼 앎의 세계도 커지는 게 여행의 묘미다.     

성당 유적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긴 곳은 ‘몬테 요새’다. 외적 침입에 대비해 성벽을 따라 대포를 설치했는데, 실제로 1662년 네덜란드가 침입할 때 사용했다고. 요새 안쪽에 있는 성모상에선 평화를 소망한 마카오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여행자는 물론 현지인이 이곳을 즐겨 찾는 건 전망대처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팁은 마카오박물관 안에 요새 입구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것. 힘들게 언덕길을 오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마카오박물관’도 빠뜨릴 수 없는 코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마카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알찬 전시가 돋보인다. 옛날 의식주 생활상을 재현한 미니어처가 인상적. 주택과 사원 등 바깥 풍경을 안으로 옮겨온 색다른 볼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땀을 식힐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카페와 휴게 시설을 갖춰 아침부터 이어진 강행군(?)으로 지친 다리를 쉬는 데 최적의 장소다.

 

마음을 빼앗은 유럽풍 거리
성 바울 성당 유적 앞 골목길은 생동감이 넘친다. 노릇하게 구운 에그타르트와 아몬드쿠키, 육포를 파는 상점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이 빼곡하다. 쟁반 가득 시식용 과자를 들고 나온 총각은 ‘저렇게 퍼주고도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후한 인심을 보여준다. “육포, 맛있어!” 서툰 한국말로 손님을 부르는 행위마저 정겹게 느껴진다.    

고소한 쿠키 향에 요란해진 배꼽시계를 달래면서 향한 곳은 ‘세나도 광장’. 여행 책자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마카오의 얼굴’이다. 광장을 둘러싼 다채로운 색감의 유럽풍 건물과 지구본 모양의 분수대, 물결무늬가 선명한 모자이크 바닥까지 동서남북이 모두 근사한 뷰 포인트. ‘예쁘다’ ‘아름답다’ ‘이국적이다’ 등 생각나는 형용사를 총동원해도 광장의 매력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마카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으면 세나도 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하자.

보이차와 딤섬, 광둥식 얌차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자선사업을 위해 지은 ‘자비의 성채’에 들렀다. 기금을 기부한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와 가톨릭 성화를 전시한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말에 무심코 들어갔는데,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10점. 순한 미소를 짓는 관리인 아저씨가 우리 가족을 전시실 한쪽으로 안내하더니, 사진을 찍으라면서 커다란 초록색 창문을 열어준다.

포토 존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에 마카오에 대한 호감 지수가 급상승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세나도 광장은 또 다른 느낌이다. 느긋한 오후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마지막 코스로 택한 건 이색 박물관이다. 경주용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전시한 ‘그랑프리박물관’은 아이들에게, 압착기와 증류기로 와인 제조 과정을 설명한 ‘와인박물관’은 어른들에게 인기 만점. 광장 앞 큰길에서 페리 터미널 방향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마카오 반환을 기념해 만든 6m 높이의 황금 연꽃이 이정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차 정류장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두 박물관의 공통점은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 시뮬레이션 가상 운전이나 와인  시음을 원할 때만 체험비를 받는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세 종류의 와인을 맛보는 비용은 15파타카.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천200원 정도다. 소믈리에가 권한 화이트 와인 ‘비뇨 보르데’는 깔끔하면서도 향이 깊다. 매력적인 명소로 근사한 하루를 선물한 마카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와인의 여운도, 여행의 추억도 오래오래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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