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면 서해안의 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따끈한 굴밥을 먹으러 서산으로 향해보자. 아이들 교과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무학대사 이야기를 핑계 삼아 말이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갯벌은 땅일까, 바다일까?”

바닷바람이 제법 차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곁에 두고 서해안을 향해 달린다. 서산•홍성•보령은 물론 태안반도까지 어우르니 해안선 길이만 200여km에 달하는 천수만이다. 그 끝자락에 신비한 장소 하나가 존재한다. 섬도 아니고, 육지도 아니다. 물이 차면 섬이 되어 배로 건너고,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어 걸어 들어간다. 썰물 때 갯벌 위로 드러나는 짧은 자갈길을 통해서 갈 수 있는 바위섬. 작긴 해도 바닷물에 둘러싸여 운치가 그만인 이곳의 이름은 간월도(看月島)다.

아이들은 아직도 ‘섬이다, 육지다’심각하게 얘기 중이다. 때마침 물이 빠져 자갈과 개흙이 섞인 땅을 밟고 소탈한 계단을 올라 좁디좁은 해탈문을 통해 간월암(看月庵)에 발을 들인다. 

간월암에 들어서니 눈길 닿는 곳과 두어 걸음 발치 너머가 모두 비단 자락을 펼쳐놓은 듯 서해다. 대웅전, 종각, 요사채가 손바닥만 한 마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자리한다. 게다가 이 작은 섬의 가운데는 바위산이니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각이 있다. 용왕님을 모시는 용왕단은 반대편이지만 지척에서 마주 보며 눈인사를 나눈다. 삼선각 또한 곁을 나누니 이 작은 간월도 안에 우주(宇宙)가 담겨 있다. 계단참까지 물이 차면 우주 속에 고립된 듯 신묘한 분위기며, 일주문에 이르는 계단이 물속으로 이어지니 계단을 지나 물 위를 걷는 도인이 사는 신비한 세계로 보인다.

 

無學? 舞鶴? 해석하는 방식도 여럿인 무학대사의 이름

“엄마, 무학대사 얘기 좀 해주세요.”

무학대사는 1327년 삼기에서 태어나 1405년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한 고려 말 조선 초의 승려다. 그가 태어난 곳은 간월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지면 모월리 학돌재인데, 여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무학대사의 모친 엄씨가 만삭일 때 나라에 진 빚을 갚지 못한 부친을 대신해 고을 현감에게 소환되었다. 끌려가던 중 급작스레 산통을 느껴 노루가 앉았던 눈 녹은 자리에 아기를 낳고 말았다. 눈을 치우고 옷으로 아기를 덮어두고 현감에게 가니 엄씨의 상황을 들은 현감은 인간의 도리로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하며 “길에 낳은 아이를 데려오라”고 명했다. 급히 가보니 놀랍게도 아기가 있는 땅에 서기가 비치는 게 아닌가.

게다가 큰 학이 날아와 두 날개로 핏덩이 아기를 감싸고 있었다. 현감은 이를 좋은 징조라 하며 부인을 방면하고 아기 이름을 무학(舞鶴)이라 지어 주었다. ‘춤추는 학’이란 뜻이다. 그 후로 학이 아기를 보살핀 고개를 ‘학돌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 이상해요. 여기 백과사전에서 뽑아온 자료에 있는 ‘무학’이랑 한자가 달라요!”

그렇다. 무학대사의 한자 이름이 혼란스럽다. 무학은 속성이 박(朴)이요 이름은 자초(自超), 호가 무학인데 백과사전을 찾으면 ‘無學’으로 표기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다른 자료를 찾아본다. 

무학은 18세에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진주 길상사나 묘향산 금강굴에서 수도하던 무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안면도의 젓개로 온다. 밤새 불을 밝히고 공부하니 뱃길을 오가는 사공들이 등대로 오인해 배를 저어오다가 젓개 앞의 암초에 걸려 배가 부서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에 무학은 이곳 천수만 간월도로 옮겨 수련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잔잔한 바다에 비치는 찬란한 달빛은 마치 물속에서 큼직한 수정이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 같고 보석의 기둥이 하늘로 이어지는 것 같던 그 순간, 무학은 불도의 깨달음을 얻는다. 바다의 달을 보고 불도를 깨달은 곳이라 간월도(看月島)라 했고, ‘달을 보는 섬’이란 뜻을 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나옹스님이 ‘너는 더 배울게 없다’며 법호를 무학(無學)이라 지어주셨다. 하지만 무학대사는 ‘배운 것이 없어서 무학(無學)이다’라고 했다. 음은 같지만 그 시기와 이야기는 다르면서 해석하는 방식이 여럿인 무학대사의 이름이다.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특별한 인연
마치 대단한 것을 알아낸 양 무학이라는 한자 두 개를 들고 간월암을 빠져나온다. 물에 잠긴 간월암을 보고 싶건만, 그걸 보려면 12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갈등이 생긴다. 때마침 뱃속에서 들려오는 신호음.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우선 먹고 봐야겠다. 길 양쪽으로 간월도 어리굴젓 파는 아낙들이 서로 오라고 손짓한다. 집에 가져가도 녹지 않을 듯 꽁꽁 얼린 어리굴젓을 사들고 근처의 굴밥집으로 향한다. 향긋한 굴 향에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밥 냄새와 따뜻한 온기에 몸이 확 풀린다. “아빠,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삼은 데는 무학대사의 힘이 컸다고 들었는데 무학대사랑 태조 이성계 임금은 어떻게 만났어요? 궁금해요.”

“글쎄…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전해오는 얘기가 하나 있지.”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 아버지 이자춘의 상을 당했다.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중 스님 두 사람이 지나가면서 명당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그래서 빠른 말을 타고 쫓아갔지만 축지법(縮地法)을 써서 걷는 두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힘겨웠다 한다. 이성계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무학대사가 귓속말로 전했다. “이왕 들킨 일이니 알려드리지만 비밀을 지키시오. 그 자리는 1년 뒤 임금이 될 명당이오.” 이렇게 무학대사와 인연을 맺은 이성계는 1년 뒤 대들보가 부러져 서까래 세 개가 걸쳐지고, 거울이 깨지고, 허수아비가 공중에 매달린 이상한 꿈을 꾸었다. 마음이 뒤숭숭한 이성계는 다시 무학대사를 찾아가 해몽을 부탁하자 “대들보가 부러져 서까래가 세 개 걸쳤다면 ‘임금 왕’자요, 허수아비가 공중에 매달려 있으면 만인이 우러러볼 것이고, 거울이 깨지면 자연 소리가 들리는 법, 얼마 안 있어 용상에 앉을 길몽입니다”라고 풀이했다. 정말로 오래지 않아 이성계가 왕의 자리에 올랐다. 전국의 명당을 돌며 지기(地氣)를 살펴 한양을 수도로 일러주는 등 조선 건국부터 도와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은 한 나라의 국사요, 책사인 셈이다.

 

어리굴젓으로 전하는 무학대사의 고마움
“와~ 굴밥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따끈한 영양굴밥이 앞에 놓인다. 이곳 간월도 인근에서 나는 굴은 특별하다. 늘 바닷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간월암처럼 하루 4~7시간은 갯벌에 묻혀 있고, 반은 햇볕을 받고 자라기 때문이다. 양식한 굴은 1년이면 엄지손가락만 하게 크지만, 간월도 굴은 3년을 자란 뒤에 캐도 2~3cm밖에 안 되고 거무스름한 빛깔을 띠는 것이 특징으로 이런 굴을 ‘강굴’이라 한다. 바닷물로 깨끗이 씻어 보름간 발효시킨 뒤고춧가루 넣어 양념하면 ‘얼얼하다’ ‘얼큰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어리굴젓’이 된다. 강굴에는 물날개(굴에 나 있는 명털)가 잔잔하고 그 수가 많아 양념을 잘 빨아들이는 것도 맛을 더하는 이유다.

그런데 어리굴젓과 간월도 강굴이 유명해진 것 또한 무학대사와 연관이 있다. 무학대사는 왕사가 되어서도 간월암에 자주 머물렀으니 태조 이성계에서 맛보라며 어리굴젓을 보내곤 했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소문이 나면서 어리굴젓은 간월도의 특산품이 되었다. 간월도에서 득도한 무학대사가 간월도 주민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금도 돼지라 말하던 무학대사
“엄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 임금님과 많이 친했나 봐요.”

“그랬던 모양이야. 무학대사가 태조 임금을 돼지라고 놀리기도 했으니 말이야.”

“엉, 임금을 돼지라고 놀렸어요? 그러고도 멀쩡했어요?”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모르는 모양이다. 태조 임금과 무학대사는 격의 없이 지냈는데 태조가 하루는 무학대사에게 “오늘 무학대사를 보니 스님의 얼굴은 돼지와 같소이다”라고 하니 무학대사가 웃으며 답하기를 “전하께선 꼭 부처님처럼 보이십니다”라고 했다. 태조가 다시 “과인은 무학을 돼지라고 했는데 왜 무학은 과인을 부처라고 하는 것이요?”라고 묻자, 무학대사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해 태조 이성계가 껄껄 웃었다 한다. 무학대사는 참으로 배포가 큰 사람이다.

무학대사는 무엇이든 생기면 다른 이에게 주어버렸다 한다. 사상이 너무 심오해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었는지 글을 많이 쓰지 않았다. 글은 물론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는지 제자들을 침묵으로 가르쳤다 하니 간월도에서 깨달은 것이 무념(無念), 무소유(無所有)인가. 우주를 담은 간월암과 스스로 세상과 단절을 행하는 간월도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간월도 길목에 있는 어리굴젓 기념탑이 멀어진다.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에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 부르기 군왕제를 올리는 곳이다. 다시 세상과 떨어지며 저녁 햇살에 몸을 숨기는 간월도를 뒤로하고 돌아오자니 굴을 부르는 아낙네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귓전을 맴돈다. 들릴 듯 말 듯 노랫소리 너머로 무학대사의 염화미소가 어른거린다.
 

저작권자 © 감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