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세습’, 북한 붕괴 카운트다운의 시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최고의 화두는 역시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이 ‘3대 세습’에 성공할 수 있느냐이다. 28세의 젊은 나이와 2년이란 짧은 승계 과정은 약점으로 부각되는 반면 아버지 김정일의 이른바 ‘선군정치’를 이어받아 군부를 확실히 장악할 것이란 예측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단순명료한 질문을 던져본다. ‘28세 김정은은 앞으로 50년간, 다시 말하면 반세기 동안 북한을 통치할 수 있을까?’ 김정일 사후 북한정세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내놓은 전문가일지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유일무이하다. ‘Never!’ 즉 ‘절대 불가능!’하다라는 점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19일 2011년 올 한해 수십년간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이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사망했다고 전했다.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75, 징역 35년) 전 튀니지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83, 재판 중) 전 이집트 대통령, 로랑 그바그보(66, 재판 중)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무아마르 카다피(69, 살해) 전 리비아 국가원수, 알리 압둘라 살레(69, 권력이양 중) 전 예멘 대통령, 김정일(69, 사망) 북한 국방위원장 등 총 6명의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최후를 이미 맞았거나 맞고 있는 중이다.

올 한해 철옹성 같았던 이들 국가의 독재의 장막이 줄줄이 무너져 내린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정치수준의 향상, 전세계적인 불황, 지리적인 인접성 외에도 소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나 군부가 아무리 북한주민들을 감시, 통제, 차단을 위해 그 어떠한 희생도 불사하는 무력을 행사한다 할지라도 향후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지금과 같은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 상황에서 만약 김정은이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부적절한 통치행위를 답습한다면 김정은이 필연적으로 맞을 운명은 집안내력인 ‘심근경색’뿐만 아니라 제네바 전범재판, 실형, 암살, 살해 등이 될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는 북한의 트레이드마크인 ‘민항기 폭파’, ‘대통령 및 요인 암살’, ‘민간인 사살’, ‘도끼 만행’과 같은 테러행위를 벌이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아마도 김정은과 군부 그 어느 누구도 주도적으로 군사모험주의를 감행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다. 물론 그만큼 인민에 대한 통제도 느슨해질 것이다. 북한의 ‘마지막 황제’는 결국 왕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북한과 함께 쓸쓸하게 역사 속으로 퇴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필자는 1990년 당시 러시아 유학을 앞두고, 당시 심취해 있던 <마르크스 자본론>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체류 중이던 미국인 교수와 스터디를 했다. 순수한 학문으로서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던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자본론을 가르쳤던 미국인 교수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두 국가 간의 충돌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한반도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순수’ 이데올로기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두 국가 모두 가부장적인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한반도)의 가치관에 ‘토착화’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왕조와 제국의 붕괴에는 공통적인 몇 가지 조건들이 교집합처럼 얽혀 있다. 어린 지도자(왕자)의 등극과 그를 둘러싼 섭정 세력들 간의 다툼, 이어지는 숙청과 수렴청정 역시 빠질 수 없다. 혼란한 정치 상황과 과도한 세금에 백성들의 경제난이 심화되고, 그 틈을 타 외세의 간섭이 시작된다. 붕괴를 눈앞에 둔 지도층의 통제 강화로 사태는 더 악화된다. 이러한 ‘몰락의 징조’에서 지금의 북한이 자유롭다고 어느 누가 얘기할 수 있을까.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 언급된 데이비스(Davies)의 이론에 따르면, 혁명은 경제적으로 생활 전반이 호전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악화되는 시점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따라서 혁명의 주체 세력은 전통적으로 억압받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호전되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보다 나은 삶의 맛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러시아의 실패한 혁명 역시 데이비스의 이론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91년, 러시아에서 ‘8월 쿠데타’가 일어났다. 소련 공산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로 전향하면서 이에 반발한 보수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그러나 8월 쿠데타는 러시아 국민들의 격한 저항으로 단 60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미 자본주의의 단맛에 젖어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러시아 국민들 때문이었다.

데이비스의 ‘소유-억압’ 이론은 미국 남북 전쟁, 1960년대의 흑인 폭동,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이러한 혁명들은 삶의 질이 점차 향상되다가 갑자기 악화된 시기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화폐 개혁 실패에 따른 인민들의 반발이 혁명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왕조와 제국의 붕괴를 이르는 징조들, 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소유와 억압의 역사를 조합해 볼 때, 북한의 붕괴는5년 안에 닥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북한의 붕괴는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그토록 염원했던 민족의 대화합은 경이적이겠으나 그 외 실질적인 경제적, 문화적 문제들이 수없이 포진해 있다. 통일 20년을 맞은 독일의 ‘빛과 그림자’, 아직까지도 독일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는 동독 서독간의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격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북한과 남한의 통일 시대를 위해 다각적인 차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46년 간 북한을 통치한 할아버지 김일성과 18년의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지는 ‘3대 세습’을 성공한다면 28세 김정은은 최소한 50년 이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전무후무한 독재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과연 김정은은 반세기에 달하는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북한을 통치할 수 있을까. 50년이란 세월은 청년 김정은에게 너무 긴 시간이다.
 

글/ 한류연구소 [한구현 전 한양대 연구교수(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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