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이 귀띔해준 알뜰 여행지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 가깝지만 비용 때문에 쉬이 떠나지 못한다. 이런 때 제주에 지인이 산다는 건 축복이다. 리포터에겐 결혼하고 제주에서 사는 여동생이 있다. 부담스런 숙박비 해결은 물론, 북적이는 관광지 대신 숨겨진 제주를 보여주는 가이드까지 되어준다. 그래서 눈치 없는 언니는 올겨울에도 제주를 찾았다.
취재•사진 이은아 기자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 제주는 섬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거리마다 축하 현수막이 붙었고, 공공 관광지는 올 연말까지 무료 관람이다. 제주 여행은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 왔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명소들이 생겨나 늘 설렌다. 다만 10여 년 전에 무료로 본 주상절리, 섭지코지 등이 입장료를 받는 건 좀 아쉽다. 이번 우리 가족 제주 여행은 새내기 제주도민인 여동생의 추천 여행지로 정했다. 무엇보다 무료로 제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제주의 숨은 비경, 사려니숲길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여동생은 첫 번째 강추 코스로 ‘사려니숲길’을 꼽았다. 일단 ‘사려니’라는 이름이 예뻐서 끌렸다. ‘신성한 곳’‘신령스러운 곳’이란 의미로, ‘제주의 숨은 비경 31’에도 뽑혔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됐다.

사려니숲길은 해발고도 500~600m에 있는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으로 걸어서 오르기 좋다. 거리는 총 15km. 참꽃나무 숲, 서어나무 숲, 물찻오름, 붉은오름, 사려니오름, 천미천, 서중천 등 천혜의 자연이 가득하다. 

하지만 안내 지도를 보니 탐방 제한 구역이 꽤 많았다. 산책이 가능한 코스는 참꽃나무 숲, 물찻오름, 치유와 명상의 숲, 붉은오름 정도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도 왕복 10㎞가 넘는다.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하늘만 좀 흐릴 뿐, 걷기에는 괜찮은 날씨. 비록 녹음이 사라진 초겨울 숲 속 풍경이지만 신비로운 산수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발 디딜 때마다 아름다운 숲 풍경이 펼쳐진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제주만 보다 맑은 새소리와 고즈넉한 숲 속을 한가로이 걷다니…. 어느새 마음이 숲처럼 평온해진다. 

사려니숲길은 참 친절하다. 곳곳에 세워진 나무 표지판에는 사려니 숲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씩 들어 있다. 숲이 왜 좋은지, 걷다가 만나는 나무와 야생초의 이름은 무엇인지… 사려니 숲을 예찬한 시(詩)도 감상할 수 있다.

사려니숲길에는 또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 길에 붉은 송이를 깔았다는 거다. 송이는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고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제주도 송이는 1990년대 말에 보존 자원으로 분류됐다. 2010년 대법원에서 제주도의 공공재산으로 인정해 도외 반출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제주도에서만 ‘자갈자갈 송이 길’을 즐길 수 있다.

사려니숲길은 사계절 모두 운치 있고 매력적이다. 그래도 초록빛 숲속을 타는 듯 붉게 물들이는 제주의 꽃 ‘참꽃나무 숲’을 감상하려면 5월이 절정이란다. 다시 한 번 제주에 올 이유가 생겼다.


여행자들의 쉼표, 월정리 해변
아일랜드 조르바
겨울 바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동생은 제주시에서 40여 분 거리에 있는 구좌읍의 월정리 해변을 추천했다. 동생 내외는 우리에게 월정리 해변 맞은편에 있는 카페 ‘아일랜드 조르바’에서 ‘나만의 바다’를 멋지게 찍어오라는 주문까지 한다. 

솔직히 ‘연인들에게 인기라는 카페를 제주도까지 와서 꼭 가봐야 할까?’ 잠시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가보길 정말 잘했다. 월정리 해변과 아일랜드 조르바는 한 세트처럼 어우러졌다. 

아일랜드 조르바 담벼락에는 옆으로 기다란 직사각형 액자 모형이 뚫려 있다. 이곳에서 해안도로 건너편에 있는 월정리 해변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처럼 연출된다. 바다 쪽에는 학교 다닐 때 앉았던 낡은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누가 앉아도 바다와 함께 멋진 작품이 된다. ‘나만의 바다’라는 표현에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흐린 날씨에 간간이 비도 부슬부슬 내렸지만, 우리 부부는 신천지를 발견한 듯 ‘우리 가족의 바다’를 찍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한참을 사진 찍기 놀이에 열중하던 우리는, 아들 손에 이끌려 월정리 해변으로 내려갔다. 

올해 처음 맞이하는 겨울 바다. 여전히 옥빛을 간직한 맑은 바다와 고운 백사장, 저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까지 기대 이상으로 멋스러운 겨울 바다가 연출되었다.

한적한 백사장은 여섯 살 아들에게는 큰 캔버스다. 어느새 백사장에 ‘사랑’이라 쓰고 작은 하트를 그리는 ‘센스쟁이’. 밀려오는 파도에 글씨가 지워질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월정리 해변과 아일랜드 조르바를 누비며 우리는 기대 이상의 쉼표를 얻었다.    

 

전국에서 제일 큰 시장
제주시 민속오일장
제주시 민속오일장’은 제주도민의 삶과 함께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에서 제일 큰 시장이다. 여동생도 대형 마트 대신 이곳 오일장에서 장을 본다니 어느새 제주 사람이 다 됐다. 오일장을 보려면 날짜가 중요하다. 제주 민속 오일장이 열리는 날은 끝 자리 2, 7일. 

사실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정도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런데 큰 오산이다. 일단 주차장부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비가 와서 사람들이 많이 올까 했는데, 시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우와~”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점포 수만 1천 개가 넘는다고 하니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없는 거 없이 다 있다. 농수산물은 기본이고 닭, 오리 같은 가축과 한약, 옹기 가게, 대장간까지 정말 시장다운 시장이다. 이곳에서 특히 인기 있는 건 옥돔이 있는 수산물 가게와 감귤과 한라봉이 있는 과일 가게다. 재미있는 건 가게마다 ‘전국 택배 가능’이라는 문구가 있다는 거다. 그만큼 관광객도 소문을 듣고 선물 사러 많이 온다는 얘기. 단 구입 전 원산지 표시를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한라봉을 살까 싶어 “한라봉 요즘 어때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주인이 “요즘 한라봉은 맛이 별로고, 그냥 감귤이 나아요” 하는 게 아닌가. 비싸도 몇 배나 비싼 한라봉이 진열되어 있는데도 사지 말라니. 주인 아저씨의 우직한 솔직함에 더욱 믿음이 갔다. 

한 채소 가게에서 왠지 익숙한 사투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주인아주머니의 고향이 바로 리포터의 친정이 있는 경북. 이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다니. 제주에 내려와 터 잡고 산 지도 20년 가까이 되어간다며 이런저런 제주 살이 이야기가 보너스처럼 더해졌다.

이렇듯 제주시 민속오일장에 오면 물건구경에 사람 구경, 그 속에 담긴 인생 구경까지 한 번에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다. 어떤 유명 관광지보다도 실속 있고 매력 넘치는 곳, “제주 민속오일장으로 오세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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