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지는 페루 북부에 있는 잉카제국의 마지막 수도 카하마르카입니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에게 죽음을 당한 곳이죠. 철저하게 파괴되어 잉카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스페인 풍의 건물과 광장이 잘 보존된 도시랍니다. 아타우알파 황제가 몸값을 흥정하던 ‘몸값의 방’과 그가 즐기던 온천 ‘바뇨 델 잉카’ 등 잉카의 여러 흔적이 남아 있는 카하마르카로 가볼까요.  _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사라져간 잉카를 추억하며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왠지 서럽다.
바뇨 델 잉카의 여러 탕으로 안내하는 이정표.
카하마르카 시내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몸값의 방’.

아타우알파 황제가 자신의 몸값을 제시하고 있다.
잉카 비극의 시작,
피사로와 아타우알파의 만남
카하마르카는 잉카의 비극을 안고 있는 도시다. 스페인군에게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가 죽음을 당하고 잉카군 8만여 명이 전멸하면서, 한때 남미 대륙을 호령하던 잉카제국은 힘없이 무너진다. 카하마르카는 스페인 풍의 광장과 건물들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콜로니얼양식(17~18세기에 영국, 에스파냐 등이 정복한 식민지에서 유행한 건축 공예 양식)의 도시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여행객은 잉카의 흔적을 찾아 이곳에 모여든다.

1532년 금을 찾아 남미대륙을 탐험하던 피사로는 민병대 180여 명과 잉카제국의 수도 카하마르카에 도착한다. 정예부대 8만여 명을 거느린 황제 아타우알파는 이들에게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호기심이 많은 아타우알파는 자신들과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의 접견 요청을 받아들인다.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접견 장소에 신부를 대동한 피사로는 아타우알파에게 천주교 개종을 권하며 성경을 건넨다. 성경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는 아타우알파는 던지듯 돌려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피사로를 포함한 대다수 민병대는 문맹이라 그들 중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를 신호로 스페인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훈련되지 않은 민병대 180여 명이 8만이 넘는 잉카의 정예부대를 어떻게 전멸시켰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잉카군의 눈에는 갑옷을 입고 말을 탄 스페인군이 반인반마로 보였을 테고, 불을 뿜는 쇠막대기(총)에 저항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잉카군은 사람이 아니라 신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을 거라고 한다. 체포된 아타우알파는 스페인군이 금에 미쳤음을 눈치 채고 거래를 시작한다. 갇혔던 방에서 손을 하늘로 뻗어 닿는 곳까지 금을 채워주고, 은으로는 그의 두 배를 채워주겠다고 자신의 몸값을 제시한다. 그리고 잉카로 금과 은을 모아오라는 전령과 함께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동생의 사형을 지시한다. 그에게는 잡혀 있는 동안에도 스페인군보다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동생이 위협적이던 모양이다. 하지만 금과 은을 받은 스페인군은 황제를 석방하지 않고, 동생을 죽인 죄를 물어 화형을 선고한다. 아타우알파는 당황한다. 미라를 만들 사체가 남지 않는 화형은 죽음보다 큰 공포였던 것이다. 내세의 영원한 삶은 잉카인에게 현재의 삶보다 중요하다. 아타우알파는 화형 대신 천주교로 개종하는 굴욕을 대가로 교수형을 받는다. 카하마르카 시내의 스페인 풍 건물 가운데 아타우알파의 ‘몸값의 방’이 있다. 그 방에 가득 찼을 금과 은을 생각하니 잉카가 얼마나 번영한 제국이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유제품의 천국 카하마르카
카하마르카 시내에는 유난히 ‘Yogurteria’ 간판이 많다. 요구르트를 비롯한 유제품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다. 하나 먹어보려고 들어서니 페루의 온갖 과일로 만든 요구르트가 즐비하다.

어떤 맛을 고를지 몰라 망설이는데, 친절한 세뇨라(스페인어로 아주머니)가 ‘Sauco(딱총나무 열매)’ 요구르트를 권하고 “Muy rico(매우 맛있다)”라며 웃는다. 포장이 어딘지 어설픈 게 더 정감이 가서 못이기는 척 받아들었다.

알고 보니 카하마르카의 유제품은 페루에서 가장 유명해 치즈와 요구르트 만드는 공장을 견학하는 투어가 있을 정도다. 카하마르카 외곽에 젖소 농장이 많은 것도, 길거리에서 직접 짠 우유를 파는 인디오가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잉카의 목욕탕, 바뇨 델 잉카
요구르트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즐긴 뒤 잉카의 목욕탕 ‘바뇨 델 잉카’로 향했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가 온천을 즐기던 곳이다.

짐을 풀자마자 바뇨 델 잉카로 가는 콜렉티보에 올라탔다. 콜렉티보는 남미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으로, 우리나라 버스와 달리 손님이 원하는 곳에서 내릴 수 있다. 타면서 차장에게 내릴 곳을 말하고, 거리에 따라 요금을 낸다. 차장은 행여나 길을 잃을까 봐 위치 설명까지 해주고 나를 내려놓는다.

바뇨 델 잉카는 탕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현지인은 대부분 2누에보 솔(한화 약 800원)짜리 탕에 들어가는데, 관광객에게는 6누에보 솔짜리를 권한다. 내가 들어간 훔볼트 탕은 6누에보 솔짜리 개인 탕이다. 들어가기 전에 물을 모두 빼고 깨끗이 청소해준다. 입장 시간을 문에 기록하고 나면, 그 탕은 30분간 내 세상이다.30분이 너무 짧다고 했더니 살짝 10분을 늘려준다. 물 온도를 내 마음대로 맞추고 탕에 들어가니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바뇨 델 잉카 한쪽에는 아타우알파가 즐기던 온천 방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남미대륙을 호령하던 그가 스페인 민병대에 잡혀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씁쓸해진다.

밖으로 나오니 온천물에서 모락모락 올라온 김이 지는 노을과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지는 해를 바라봤다. 아, 잉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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