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화해의 역사에서 발견한 情

 
인류 문명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 동서 문명의 교차로, 형제의 나라…. 수많은 매력이 있는, 환상의 나라 터키.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져 일궈낸 의미 깊은 곳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무려 10개나 될 정도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보는 곳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터키의 참 매력은 이방인과 거리낌 없이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순박한 사람들에 있다. ‘다름’을 경계하기보다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공존의 지혜를 체득한 지 오래. ‘칸 카르데쉬(피를 나눈 형제)’를 외치며 씩 웃는 미소 속에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숨어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_취재•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동양과 서양, 두 대륙을 껴안은 ‘이스탄불’
“왜 하필 터키인가?” ‘내일신문 세계사 그랜드 투어 1탄’으로 터키를 꼽았을 때 많은 이들이 던진 질문이다. 부모 없이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들이 가기에는 거리(비행시간만 11시간에 우리나라의 3.5배 정도 면적으로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나 여행 기간(7박 9일) 등 여러모로 힘들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답은 명확했다. 터키만큼 다양한 문화의 스펙트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아시아와 유럽의 문명이 나뉘고, 작은 분수 사이로 기독교(아야소피아)와 이슬람교(블루 모스크)가 마주하는 나라가 어디 흔하랴. 

때문에 여행 첫날 이스탄불에 도착, 유람선을 타고 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널 때는 장시간 비행에 따른 피곤함을 잊기에 충분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 정도 보스포루스 해협 양옆으로 펼쳐진 동서양 문화를 한눈에 보고 있자니 감회가 남달랐다.

유럽 쪽에는 돌마바흐체 궁전( 금 14t과 은 40t을 사용해 지은 곳으로, 당시의 화려한 궁중 생활을 엿볼 수 있다)과 갈라타 타워(갈라타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 등을 볼 수 있다.

반면 고개를 돌려 아시아 쪽을 살피면 고전적인 오스만 양식의 저택과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관광객에겐 신기함으로 다가서지만 터키인에겐 일상이라는 것. 우리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었다며 감격(?)할 때도 그들은 출퇴근을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유유히 낚시를 한다. 이스탄불의 신구 시가지를 연결하는 골든혼의 아타튀르크 다리에는 오후 늦은 시간까지 낚시하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현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반찬 값이라도 벌 생각으로 낚시를 한단다.

동서 문명의 교류지에서 만나는 현재의 평범한 삶. 사실 어찌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충돌하고 뒤섞이며 공존해온 그네들에겐 당연한 결과물일 수 있다.

유럽 축구에 열광하면서도 이슬람교도로 살아가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라. 초기 기독교 문명 사이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려 퍼지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럽인, 아시아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깨고, 자신을 유라시안(유러피언+아시안)이라 칭하는 지혜로운 터키인. 단편적인 세계사 상식을 습득하는 데 급급하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사항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아야소피아 vs 블루 모스크, 동서 문명의 이중주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바로 아야소피아다. 치열한 문명 충돌에도 굳건히 그 아름다움을 지켜온 비잔티움 건축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아야소피아를 처음 봤을 때는 약간 실망(?)했다. 미너렛(이슬람교 사원의 외곽에 설치하는 첨탑) 네 개가 우뚝 선 외관에서는 모스크 특유의 개성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내부에 들어서자 켜켜이 쌓인 문명의 퇴적층이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부활하고 있었다. 이슬람교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이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와 어우러진,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던 것.

아야소피아는 금칠한 유리 조각을 조금씩 다른 각도로 붙여 만든 모자이크 성화로 유명하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와 전면 대치되는 상황. 다행히 터키인은 파괴라는 극단적인 방법 대신 두꺼운 회칠로 덮어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1934년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서 성모마리아, 예수 등 비잔티움 시대의 화려한 흔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야소피아를 보기 위해 터키에 왔다는 한 중학생은 “폐쇄적으로 생각한 이슬람교가 기독교 문명을 온전히 보존한 게 정말 신기하다”며 “대학생이 돼 다시 터기에 올 때는 완전히 복원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야소피아를 관람한 뒤 ‘걸어서’ 블루 모스크로 이동했다. 기독교인 사이에선 아야소피아가 대표적인 성지순례 코스로 꼽힌다. 블루 모스크 역시 이슬람교도에게 비슷한 존재다. 걸어서 두 종교의 성지를 만나는 건, 터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스만제국 술탄 아흐메드 1세 때 지어진 블루 모스크는 터키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내부는 푸른빛을 띠는 이즈닉 타일 2만여 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당시 이즈닉 타일 한 장 가격은 은화 18개 정도로 고가였다. 화려한 사원 안은 기도를 드리는 신도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도 외에는 내부를 잘 공개하지 않는 모스크 안에 들어올 수 있다니, 왠지 모를 엄숙함이 느껴졌다.  

 

잘 보존된 그리스•로마 유적을 거닐다
아이들에게 터키 여행이 인기인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지를 볼 수 있다는 것. 어른이 외우기도 어려운 그리스 신화 속 각종 신들의 이름을 줄줄 읊어대는 걸 보니 신기할 정도다.

터키의 에페수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대 도시다. 소아시아 지방인 에페수스는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면서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당시의 영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셀수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신전, 성요한교회, 아르테미스 신전,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된 대극장 등 유적이 많다.

가장 좋은 점은 책으로 접하던 유적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여 유적을 훼손하는 건 아닐지 살짝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성요한교회와 셀수스 도서관을 거닐며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에페수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안탈리아 지방의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역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극장 중 제일 보존이 잘된 곳이다.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 특별한 음향 장치 없이도 꼭대기 자리까지 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구성했다. 위아래 양끝에 서서 서로 말을 건네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귀여운지 말을 거는 터키인들이 많았다.

아이들로만 구성된 터키 여행단이 없어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현지인들의 질문 공세가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다. 한국에서 워낙 험한 일을 많이 보고 들은 탓일까? 행여 아이들이 잘못될까, 반가움보다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게 사실.

하지만 어디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말은 다르지만 친절함과 친밀함이 미덕인 터키 특유의 문화를 느끼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만 관계가 형성돼도 아비(터키어로 형님)라 부르며, 형제의 나라를 외치는 터키인과 조우, 7박 9일 짧지만 긴 터키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