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의 박희태 국회의장이 같은 정당이자 같은 법조인 출신인 고승덕 의원의 돈봉투 폭로 37일만에 결국 사퇴했다. 사실 이 사건은 두 사람이 내용을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고승덕 의원이 돈봉투를 반려했을 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윗선 즉 최종적으로 당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경선 후보에게도 즉각 보고되었을 것이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전은 의회의 권위와 함께한다. 최근 검찰의 국회의장 사무실 압수수색은 한국 의회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혔다. 우리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도 신중했어야 하지만 의회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박희태 의장도 곧바로 사퇴하고 국민에게 사죄했어야 마땅했다. 국회의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의회 권위에 치명타 입힌 국회의장실 압수수색
지금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다. 다선의원이 초선의원보다 욕을 더 많이 먹는 풍토에서 “정치인은 사회의 필요악”이라며 조롱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인 대선주자들보다 비정치인 안철수의 인기가 더 높은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이 뽑기보다 여론조사나 모바일 투표 등을 통해 뽑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의회민주주의는 결국 몰락하고 말 것인가. 대의민주주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 먹는 정치인’이 없다면 의회민주주의는 다시 회생한다고 믿는다.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1년간 들어가는 돈은 월급 약 1억2000만원, 보좌관 비서관 등의 급여, 차량 유지비 등 경비를 합쳐 약 5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그 돈은 모두 국민세금이다. 부끄러운 돈정치를 하지 말라고 5억원 정도를 주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반영해서 좋은 정치를 하라고 주는 것이다. 

국민들은 다선의원일수록, 청와대와 가까울수록 더 부패해 있다고 느끼고 있다. 6선의 국회의장 돈봉투 사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대통령의 창업공신들이 줄줄이 돈 문제와 연관돼 낙마하고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보수와 진보 등 이념 차이보다 돈 먹는 정치인과 깨끗한 정치인으로 구분하는 문제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시대 정치인의 제1의 사명은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부패와 빈부격차를 해결하는 일이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아예 정치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돈을 벌려면 정치 대신 사업을 해야 한다. 정치인은 공공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돈 먹지 않는 깨끗한 정치인들로 의회 구성해야
의회민주주의를 소생시키기 위한 첫번째 필요조건은 돈 먹지 않는 정치인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각계각층의 민의를 반영하는 견해 차이가 있을수록 의회는 풍요로워진다.

바로 이것이 충분조건이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단계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때 의회주의는 꽃피게 돼 있다.

돈 먹지 않는 정치인들이 공공성을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을 계속해나가면 언젠가는 합의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돈을 받고 공공성을 훼손하는 로비를 하면 대화와 토론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제 국회에서 날치기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이념보다 돈이 더 앞서는 것이 이제까지 우리 정치 풍토였다. 심지어는 정책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공공성을 훼손하고 다수 국민의 이익보다 극소수에게 특혜를 준 것 역시 지난날 우리 정치 현실이었다. 정치와 돈, 이제는 그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

 

내일신문  장/명/국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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