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이런 재미가 숨어 있다니….’ 대구의 명물, 도심 속 골목 투어 내내 든 생각이다. 어릴 적 대구 외가에 가면 주로 앞산공원이나 동촌유원지로 놀러 다녔는데,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찾아간 대구는 도심 속 ‘골목 투어’가 대세다. 약전골목, 진골목, 방천시장 벽화골목 등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자랑하는 골목이 도심에 1천여개나 있어 신기하고 놀랍다. 예스럽고 소박한 골목길에서는 추억을 펼쳐 놓고 삶의 진지함을 얘기하고 있었다. _취재•사진 이은아 리포터 identity94@naver.com 도움말 대구 중구청 문화관광과

 

Street1 진골목
달걀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와 조우하기

 

거미줄처럼 얽힌 1천여 개의 대구 골목을 하루에 둘러보긴 어림없는 일. 한정된 시간에 알찬 여행을 위한 골목 선정이 필요했다. 여러 골목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발동한  곳이 대구 종로를 비켜가는 ‘진골목’이다. ‘질다’는 ‘길다’의  경상도 방언으로 진골목은 ‘긴 골목’을 뜻한다. 진골목 가는 길, 동아쇼핑센터의 서쪽에 들어서니 떡집이 즐비한 떡전골목이 먼저 반긴다. 좀더 걸어가니 약령시 대구답게 한약방과 한의원으로 가득한 ‘약전골목’이 펼쳐진다. 약전골목 사거리에서 잠시 헤맸다. 한약방 주인에게 진골목을 물으니 건너편을 가리킨다. 진골목 표지판이 이제야 보인다. 떡전골목이나 약전골목은 골목이라 하기엔 넓다 싶었는데, 진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한 모양이 골목답다.

지금이야 낡은 옛 골목이지만 근대 초기로 돌아가면 진골목은 코오롱, 금복주 등 알 만한 기업 대표의 저택이 있던 대구에서 알아주는 부자 동네였다. 또 1907년 국채를 갚기 위해 남자들이 금연을 결심하자, 이곳에 살던 여성 7명이 패물을 헌납해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미로 같다며 신기해하는 일곱 살 아들. 앞서 걸어가더니 “엄마, 저기 소아과가 있어요” 하며 간판 하나를 가리킨다. 현존하는 대구 최초의 서양식 주택이라는 ‘정소아과의원’이다. 2층 양옥에 넓은 정원이 있어 지금 봐도 부잣집 같다. 60년간 운영되다 현재는 간판만 남아 있는데, 대구의 근대건축물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한다.

 
진골목에서 만난 가장 흥미로운 명소는 30년 넘게 쉼터가 되고 있는 ‘미도다방’.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공간인 듯싶어 문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가려는데 주인장인 정인숙 여사가 우리를 보고 반겨준다. 그 곳에는 중절모를 눌러쓴 노신사가 홀로 차를 마시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둘러앉아 한시를 논하는 문학의 장이 되기도 한다. 젊은 층도 눈에 띈다.

진골목이 유명해지면서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세대 불문하고 이곳을 찾는다고 정 여사가 귀띔한다.

 

Street2 3•1만세운동길 & 청라언덕
만세 소리와 봄의 교향악

 

대구 도심 곳곳에는 100년 전 근대 문화가 함께한다. 한국전쟁 때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고.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며, 학생이 주동한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난 곳도 대구다. 그 역사의 순간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곳 ‘3•1만세운동길’을 찾아 나섰다. 90계단으로 되어 있는 3•1만세운동길 담벼락에는 3•1 운동에 관한 빛 바랜 사진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신명여학교 6회 졸업생이 쓴 ‘내가 겪은 3•1 운동’에 관한 글귀에 시선이 멈춘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거리로 나선 여학생들. 만세를 부르다 일본 경찰한테 모욕이라도 당할까 싶어 치마허리에 달린 끈을 떼고 조끼허리를 만들어 입었다는 생생한 경험담에 새삼 가슴이 뭉클해졌다. 

계단 끝에 올라서자 경북 지역 최초의 교회 ‘제일교회’와 붉은 벽돌로 지은 미국인 선교사 주택 세 채가 보인다. 1910년경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은 선교박물관과 의료박물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지정되었는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고 공휴일은 휴무다. 일요일에 찾은 우리 가족은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선교사 주택이 있는 그곳에서 뜻밖의 노래비를 만났다.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짓고 노산 이은상이 노랫말을 붙인 가곡 ‘동무생각’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로 시작하는 노랫말의 배경이 바로 이곳, 푸른 담쟁이덩굴이 휘감겨 있던 청라언덕. 노래비의 마지막 문구 “이 언덕을 찾는 이들의 가슴에 청라언덕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원하면서…”처럼 그날 이후 내 귀에는 봄의 교향악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Sreet3 방천시장 벽화골목
고 김광석을 추억하다

 

마지막 코스는 남편이 가장 가고 싶어한 ‘방천시장 벽화골목’이다. 그곳의 주인공이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등 주옥같은 노래를 남긴 김광석이기 때문이다. 김광석 노래를 즐겨 부르면서도 그의 고향이 대구 방천시장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머쓱해하는 남편.

중구 대봉동에 위치한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통과하는 신천 제방을 따라 개설되었다고 해서 방천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1960년대부터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점포 수 1천 개가 넘는 대표 재래시장이었지만,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밀리면서 점포 수가 60개까지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대구 중구청은 방천시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예술 프로젝트 ‘별의별 별시장’을 시작했고,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더해져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칙칙한 방천시장에 상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대형 사진 현수막을 걸고, 간판 하나도 아기자기하고 보기 좋게 꾸며 방문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방천시장 문전성시의 핵심 프로젝트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100m가 넘는 차가운 둑길 콘크리트 벽에 김광석을 추모하는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그림과 설치 조형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카메라 셔터도 쉴 새 없이 누르게 만든다. 들을수록 더 듣고 싶고 부르면 부를수록 더 아름다운 김광석의 노래를 닮은 골목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옛것은 지키면서도 쉼 없이 발전하는 대구의 어제, 오늘, 내일이 모두 골목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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