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의 몰락을 간직한 도시 카하마르카를 뒤로하고 차차포야스로 갑니다. 차차포야스는 잉카제국이전에이지역을지배한부족차차포야‘( 구름의전사’라는의미)에서유래했습니다.차차포야 부족은 이름 그대로 높은 산 위의 요새, 구름 위에서 살았는데요. 최근 재조명되는 쿠엘랍은 차차포야 부족의 대표 요새 중 하나입니다. 잉카가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몇 되지 않는 부족 중 하나로, 잉카의 끊임없는 공격을 막아낸 대단한 요새라네요. 그러면 구름의 전사 차차포야를 만나러 가보실까요?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현지 교민의 강력 추천으로 발걸음을 돌리다
서울에서 남미 여행을 계획할 당시 차차포야스는 여행 후보지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 사업을 하며 산 지 20년이 된, 교민의 강력 추천으로 남쪽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과감하게 서쪽으로 바꿨다. 구름의 전사, 차차포야 부족이 살던 차차포야스에는 잉카제국 이전의 문명인 차차포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잉카의 파괴로 잉카 이전의 문명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매우 드물어 아주 귀한 곳을 소개받은 셈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잉카와 스페인이 모두 탐냈다는 ‘쿠엘랍’ 요새다. 최후에는 스페인이 정복했으나 거주가 어려워 떠난 뒤 방치되다가 페루 정부가 나서 발굴과 정비를 시작한 지 약 20년이 됐다고 한다. 유적 탐방을 즐기는 여행자의 눈으로 볼 때는 정비가 끝나면 마추픽추만큼 멋진 곳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차차포야스의 명물로는 근교에 있는 곡타폭포를 꼽을 수 있다. 높이 700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폭포다. (세계에서 가장 긴 폭포는 베네수엘라의 앙헬폭포, 두 번째는 아프리카 잠베지 강에 있는 빅토리아폭포다.)

 

남미의 베스트 드라이버
남미는 워낙 넓기 때문에 10시간 이상 가는 장거리 버스가 많다. 이 버스들은 도착 시간을 아침으로 맞추기 위해 주로 야간에 운행한다. 그런데 차차포야스 가는 버스는 새벽 출발, 저녁 도착으로 배차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야 그 이유를 알았다.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비포장도로인데다, 굽이굽이 산길이었다. 황홀한 창밖의 경치와 아찔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급커브 길을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자니 천국과 지옥의 줄타기가 따로 없다. 얼마나 많은 산을 오르내렸는지 세다가 잊어버릴 정도다.

이렇게 12시간을 달렸다. 기사 두 명이 교대로 운전하는데 그 와중에도 옆에 앉은 대기 기사와 남미형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승객들은 속이 타 침이 마르는데, 운전사는 눈 감고도 운전할 있다는 듯이 여유롭다. 이 정도면 이들은 단연 남미의 베스트 드라이버다!

 

구름의 전사 차차포야 부족의 요새 쿠엘랍
차차포야스에 도착하자마자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하고 다음 날 쿠엘랍으로 향했다. 한참 동안 차를 타고 달리다 내린 뒤, 걸어서 산에 오르니 쿠엘랍의 높은 성벽이 첫눈에 들어온다. 동서로 긴 쿠엘랍 요새는 두 층으로 설계되어 1층에는 일반인이, 2층에는 왕족과 귀족, 군인이 거주했다고 한다.

구름의 전사라는 부족의 이름답게 성벽 아래로 구름이 흘러 그야말로 환상의 성이었다. 잠깐의 감상을 뒤로하고 요새 안쪽을 둘러본다. 가이드 후안이 벽 가까이로 우리를 부른다. 모두 모인 걸 확인하더니 벽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빼고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헉! 사람의 뼈다. 차차포야는 성곽의 벽 안에 사람을 묻었고, 이들의 영혼이 본인들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고 한다. 도시이자 요새인 쿠엘랍은 통로마다 침입 차단 장치를 만들어 잉카의 끈질긴 공격에도 요새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잉카가 쿠엘랍의 1층 일부를 겨우 차지했을 때 스페인이 잉카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차차포야는 잉카를 물리치기 위해 스페인을 이용하는 꾀를 냈으나, 이 전략은 오히려 스페인이 쿠엘랍을 정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러한 흥망의 정복사는 유적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차차포야 건물의 특징인 원형 터에 잉카의 특징인 사각형 건물이 세워졌고, 이 건물의 문은 스페인 풍이었다.

쿠엘랍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요새 입구다. 사다리꼴의 좁고 긴 입구는 적의 침입을 막고자 설계했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곳을 찾은 이방의 여행자 눈에는 환상적이기만 하다. 안에서 밖을 향해 나갈 때 좁고 긴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듯 착각에 빠지게 했으니 말이다.

 

선녀의 옷자락 곡타폭포
다음 날 향한 곳은 곡타폭포다.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주로 영어 가이드가 있는데, 곡타폭포는 스페인으로 된 투어 프로그램밖에 없다. 곡타폭포가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서만 투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명 관광지 인근에는 외부 자본이 들어와 자리 잡는 바람에 현지 주민은 터전을 빼앗기고 뒤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곡타폭포의 커뮤니티는 이를 원천적으로 막고, 곡타폭포 투어로 벌어들이는 돈이 다시 곡타폭포에 투자될 수 있도록 한다.

요즘 유행하는 공정거래의 형태라고 할까? 폭포를 감상하는 데 유적지처럼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현지 주민과 함께하는 관광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두시간 정도 산을 따라 내려가니 곡타폭포와 만난다. 멀리서 보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다가가니 황홀하다. 70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안개처럼 부서진다. 이게 바로 선녀의 옷자락이구나. 폭포 밑에서 선녀가 목욕을 한다는 전래 동화가 왜 나왔는지 지구 반대편 페루에 와서 느끼게 될 줄이야.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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