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아이와 단둘이 뉴욕으로 자유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석 달 전에 항공권을 구입하고, 두 달 전에 호텔 예약과 뮤지컬 티켓 예매를 마치면서 조금씩 준비한 노력은 여행의 기쁨으로 돌아왔다. 글과 사진, 영상으로 상상하던 뉴욕을 오감으로 만나는 느낌. 4박 5일의 짜릿한 즐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재·사진 김혜원 리포터 pinepole@naver.com

 
올해 열세 살인 아들은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한다. 여행지로 미국 동부를 선택한 건 뉴욕, 보스턴, 워싱턴 등 보여주고 싶은 도시가 모여 있기 때문.  

여행을 계획한 뒤, 아들에게 권한 첫 번째 활동은 오래전에 구입한 ‘먼 나라 이웃 나라 미국’<미국인 편> <미국 역사 편> <대통령 편> 3권을 다시 읽는 것. 미술관 투어에 대비해 <명화로 보는 그림 이야기>로 미술 사조와 그림 기법을 익히고, <라이언 킹>  <박물관이 살아 있다> DVD로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도 유발했다. 일정은 최대한 느슨하게 짜려고 애썼다. 박물관과 미술관 휴관일을 검색해 주요 코스를 정하고, 나머지 시간대엔 관광 명소를 하나씩 넣는 방법으로 구성했다. 이제 준비 완료. 자, 출발이다! 

 

반 고흐에 반하고, 뉴욕의 밤에 취하다
14시간 비행 끝에 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자유 여행의 첫 관문은 목적지까지 이동하기. 존F.케네디국제공항에서 뉴욕 맨해튼에 있는 호텔까지 슈퍼 셔틀을 이용했다. 주소만 건네면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12인승 밴인데, 도착지 위치가 비슷한 여행객이 함께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뉴욕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콜택시를 이용했다는 후기도 많지만, 여행의 참맛을 즐기기에는 2% 부족한 것 같아 슈퍼 셔틀 티켓을 샀다. 짐을 풀고 시작한 첫 번째 일정은 모마(MoMA)라고 불리는 ‘뉴욕현대미술관’ 관람. 입장료를 아낄 수 있는 ‘뉴욕 시티 패스’를 구입한 뒤, 산책하는 기분으로 미술관 나들이에 나섰다. 인상파,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시대별 대표작을 보면서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들으니 고갱, 세잔, 피카소, 샤갈 등 거장들과 가까워지는 느낌. 아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작품에 흥미를 보였다. 주거니 받거니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폐관 시간이다.  

쇼핑의 중심 ‘5번가’와 황금빛 프로메테우스 조각상이 돋보이는 ‘록펠러센터’를 거쳐 도착한 ‘타임스스퀘어’. 눈을 떼기 힘든 형형색색 전광판과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어울려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나라 기업 광고를 찾는 건 또 다른 재미. 불빛에 홀려 셔터를 연거푸 누를 수밖에 없는, 잊지 못할 뉴욕의 첫날 밤이다.

 

박물관은 살아 있고, 뮤지컬은 감동이다  
시차 적응이란 예상치 못한 복병에 오전 9시쯤 눈을 떴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든 것. “더 잘래.” 이불을 뒤집어쓰는 아들을 깨워 ‘미국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공룡 뼈와 화석, 동물, 광물과 보석, 세계 문명 유적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이곳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촬영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풍선껌 부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 이스타 섬 모아이 석상은 인기 전시물. 영화 속 장면을 찾는 자발적 미션은 박물관 투어의 즐거움을 더한다. 자연사박물관의 또 다른 매력은 우주 탄생의 신비를 경험하는 과학 전시관 ‘로즈 센터 포 어스 & 스페이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것. 태양계와 지구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저녁에는 브로드웨이 민스코프 극장에서 뮤지컬 <라이언 킹>을 봤다. 감동적인 스토리에 푹 빠진 건 원작 DVD를 보고 간 덕분. “배우들의 영어 대사가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는 게 아들의 감상평이다. 완성도 높은 음악과 캐릭터를 잘 살린 의상, 아프리카 평원을 그대로 옮겨온 듯 실감 나는 무대장치까지 모든 것이 최고다.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사람들이 왜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하는지 알겠어요.”

뉴욕 여행에서 뮤지컬을 빠뜨리는 건 평생 후회할 일. 당일 공연 티켓을 25~50% 할인 판매하는 티켓 판매소 ‘tkts’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설렁탕+뉴욕의 환상 레서피
아침 일찍 ‘빨간 버스’라 불리는 그레이 라인 티켓을 샀다. 본격적으로 도시 탐방에 나서기 위해서다. 업타운 투어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는 발레,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링컨센터’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모교인 ‘컬럼비아대학’. ‘센트럴파크 동물원’은 규모는 작지만, 동물들의 탈출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배경으로 나와서인지 찾는 이들이 많다. 

독특한 나선 모양 구조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구겐하임미술관’에선 ‘콤포지션 8’ ‘몇 개의 원들’ 등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가 발길을 붙잡았다. 기하학적 도형의 어울림 속에서 ‘화가의 의도가 뭘까’ 짐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멧(Met)’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인데, 330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한다.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는 건 말 그대로 욕심. 아들 의견을 반영해 ‘이집트 문명’   ‘그리스 ·로마 예술’  ‘무기의 변천사’를 집중적으로 관람했다. 끝없이 이어진 유물·유적 퍼레이드에 고대와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다. 전시실 바닥에 편하게 앉아 조각상을 스케치하는 학생들과 지하  카페테리아에서 책을 읽는 노인들 모습도 인상적인 풍경. ‘집에 돌아가면 좀더 자주 박물관을 찾자’ 결심했다.

코리아타운에 들러 국물이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니 속이 든든하다. “미국까지 와서 한국 음식을 찾느냐”며 엄마를 타박하던 아들도 만족스런 눈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올라 밤늦도록 맨해튼 시내를 내려다볼 계획이라면, 근처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뉴욕 야경은 말이 필요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86층 전망대에 오르니, 동서남북 도시의 밤 풍경이 조금씩 다른 색깔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한 가지 팁. 야경 감상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필수다. 로어 맨해튼은 물론 뉴저지와 브루클린까지 지역별 특성과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 흥미진진하다.

 

9·11테러부터 한국전쟁까지… 평화를 소망하다
이제 뉴욕 남쪽을 여행할 차례.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투어 버스를 타고 9·11 테러 피해 지역인 ‘그라운드제로’와 황소상이 눈길을 끄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 ‘월 스트리트’를 둘러봤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서니, 가슴이 먹먹하다. 재건 작업이 한창인 공사장을 빠져나오면서 ‘다시는 이런 희생이 없기를’ 기도했다. 

다음 목적지는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인 ‘자유의 여신상’. 높이 46m인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기증한 선물. 오른손에 횃불을 높이 들고, 왼손으로 독립선언서를 안은 모습을 마주하니, 자유를 향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다시 돌아온 배터리파크. ‘한국전쟁 기념비’에 잠시 들렀다. 아들이 관심 보인 건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운 국가들. 참전한 군인 숫자와 사망자 수를 살펴보더니, 새삼 전쟁의 비극을 깨달은 듯 진지한 얼굴이다. 

“자, 그럼 유엔본부로 출발할까?” 192개 나라가 회원으로 가입한 유엔은 국가 간의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 가이드 투어에 참가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데, 소요 시간은 60분 안팎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인생 이야기를 다룬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를 읽으면서 유엔 조직과 하는 일,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해 미리 공부해서인지 총회 빌딩과 회의장, 전시물이 모두 친근한 느낌. 평화와 안전, 인권 신장 등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치를 마음으로 익히는 소중한 경험이다.

뉴욕에서 보낸 4박 5일은 문화와 예술, 역사를 경험하면서 지구촌 일원임을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들에게 좀더 큰 세계를 여는  데 필요한 열쇠를 건넨 것 같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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