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우림으로 뒤덮인 아마존강.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무려 아홉 국가가 인접한, 세계에서 가장 길고 큰 강입니다. 이 거대한 강의 시작점을 밟아보고 싶은 생각에 페루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중에서도 ‘페루의 베니스’로 불리는 수상 도시 이키토스를 목적지로 정했죠. 이번에도 여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리마에서 이키토스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지만, 유림아구아를 거쳐 가는 육로와 뱃길을 고집했기 때문이지요. 유림아구아에서 이키토스에 이르는 3일간의 뱃길에서 아마존 우림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육로로 갈 수 없는 도시 중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이키토스로 떠나보실까요.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친절한 남미인 안토니오와 만남
리마에서 출발해서 모체 문명의 도시 치클라요, 잉카의 카하마르카, 차차포야의 차차포야스를 둘러보고 유림아구아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타라포토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무려 세 시간이나 늦은 오후 9시.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도시라 여행 책자에도 관련 정보는 없고 해가 졌는데 터미널 근처에는 호스텔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남미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호스텔조차 없다니….

호스텔 정보를 얻겠다는 일념 하나로 승객들을 샅샅이 살폈다. 현지인이 분명한 인디오 속에서 남달라 보이는 두 청년에게 시선이 꽂혔다. 기대감에 차 ‘여행객이냐’ 묻자 ‘No’라는 실망스러운 답변이 돌아온다. 영어 반 스페인어 반으로 얘기한 끝에 그들의 행선지 역시 유림아구아라는걸 알아냈다. 다행이다! 염치 불고하고 그들에게 빌붙기(?)로 결심했다.

두 청년 중에 영어를 조금 더 잘하는 안토니오가 세 시간이 넘게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라며 걱정한다. 여기에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이라 힘들 거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하지만 무조건 괜찮다며 함께 이동하기로 결정.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안토니오는 페루의 한 시민 환경 단체의 실무자로, 아마존 상류의 생태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마라뇬강으로가는 중이란다.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으나 18시간째 이동 중이라 체력은 바닥이 난 상태. 게다가 급커브 길을 달리는 총알택시에서 긴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했다. 유림아구아의 불빛이 보일 때는 반 실신 지경이었다. 안토니오는 유림아구아의 호스텔까지 안내해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넸다. 난 친절한 남미 사람들이 참 좋다.

 

항해 중간에 정박한 마을.
소 떼와 함께 이키토스로 가는 배에 오르다
아마존은 숨 막히는 더위로 나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흐느적흐느적 겨우 몸을 움직여 배에서 쓸 해먹을 산 뒤 오토바이에 수레를 달아서 만든 모터 택시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이라지만 진흙탕에 나뭇조각을 띄운 길이 전부다. 내가 탈 배는 사람과 화물이 함께 타는 에드워드호. 일꾼들은 각종 화물을 배에 옮겨 싣느라 북새통이었다. 거의 뛰다시피 움직이는 일꾼들 사이를 뚫고 배에 오르자, 한 아저씨가 사람 좋게 웃으며 다가와 선실로 안내하더니 좋은 자리에 해먹까지 설치해준다. 뜻밖의 친절에 어쩔 줄 몰라하는데 갑자기 팁을 요구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기분 좋게 팁을 건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오후 2시에 출발한다던 배가 오후 8시나 돼야 출발한단다. 어쩐지 선실에는 현지인이 하나도 없었다. 해먹에 누웠다가 가끔씩 들르는 행상의 물건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런데 오후 8시가 돼도 배는 움직일 기미가 없다. 직원을 찾아 출항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오후 2시에 떠난단다. 24시간이나 늦는 이유에 대해 설명이나 사과는커녕 배 안의 화장실과 샤워 부스를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단다.

갑판을 가득 채운 해먹
이처럼 가끔씩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행 일정이 짜이곤 한다. 꼼짝없이 움직이지도 않는 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오후 4시가 돼서야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1층 갑판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갑판이 소로 가득 차 있다. 아마존으로 공수되는 소라는데, 육로가 없어 모든 물자를 배로 수송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소와 동승이라… 인간인 나에겐 재미일 수 있으나 좁은 공간에서 괴로워하는 소를 보니 그들은 아니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다.  

 

무념무상 아마존 뱃길에서 만난 평화
에드워드호 1층은 화물칸. 2,3층은 선실이다. 2층과 3층은 뱃삯 차이가 난다. 3층 승객은 외국인 반 현지인 반이다. 현지인들은 영어도 몇 마디 하고 옷차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지나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해먹이 빽빽하게 설치된 2층과는 사뭇 사정이 달랐다.

배에서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벨이 울리면 줄을 서서 먹으라고 주는 건지 버리라고 주는 건지 모를 맛없는 밥을 먹고, 해먹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지나가는 경치를 바라보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더위를 못 참을 지경이 되면 샤워 부스로 끌어 올린 아마존 강물에 샤워를 한다. 유유히 흐르는 황토색 강물을 바라보노라니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여행자에게 다가오는 아득한 그리움과 잔잔한 평화로움이 주는 행복감에 온몸에서 힘이 쑥 빠지는 거 같다.

배에 짐을 싣는 동안 벌어진 어시장.
배는 가끔 작은 마을에 정박해 화물을 싣고 내린다. 그 틈을 타 마을 사람들이 배에 올라 아이스크림이나 과일을 판다. 집 앞에서 갓 따온 바나나의 달콤함을 맛보는 즐거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둘째 날 아침을 먹고 무심코 바라본 강물 위로 점프하는 분홍색 돌고래를 본 순간, 현실 세계에서 동화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분홍색 돌고래의 사연은 이렇다. 아마존강은 원래 바다였다. 아마존 유역이 융기해 강이 된 것. 강에 갇힌 돌고래는 퇴화해가며 분홍색을 띤다. 아마존 원주민은 분홍색 돌고래가 아름다운 여자나 멋진 남자로 변해 사람을 유혹, 수중 도시로 데려간다는 전설을 믿는단다.

출항한 지 4일 만에 이키토스에 도착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만큼 물린 배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고, 해먹이 아닌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3박 4일 무념무상의 아마존 뱃길에서 누린 잔잔한 평화는 오랫동안 나를 맑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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