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기가 흐르는 섬 강화

 
단군 할아버지가 마니산 정상에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해서 강화도는 신령스러운 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이 탄생한 땅, 강화도. 발걸음 닿는 곳마다 의미와 신성함이 서려 있으니 우리의 근본을 찾아가는 여행을 해보자.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 섬이고 배를 타고 들어가야 섬이지만, 요즘엔 섬이 아닌 섬들이 많다.

강화도 역시 배를 타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그저 자동차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된다. 다리를 건너 강화도의 넓은 땅을 종횡무진 달려간다. 저만치 마니산이 보인다.

“우와, 섬이라고 해서 작은 줄 알았는데 무척 커요.”

“그렇지? 그런데 그거 아니?”

“뭐요?”

“우리가 지금 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는 거!”

“우리 차가 뭐 배나 잠수함인가요? 말이 돼요?”

“진짜야.”

조선 시대 말 김교헌이 쓴 <신단실기>에 “하늘은 음을 좋아하고 땅은 양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을 물 한가운데 있는 산에 설치했다”고 나온다.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이 물 가운데 있는 산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선 중엽까지만 해도 마니산은 강화도 본도와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 솟은 ‘고가도’라는  섬이었다. 그런데 가릉포와 선두포에 둑을 쌓은 뒤 막았기에 육지가 되었다.

“정말이에요? 그럼 단군 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여기를 지나가셨겠네요?”

4천 년 전인 청동기시대에 단군 할아버지는 제를 지낼 물건과 음식을 배에 잔뜩 싣고 노를 저어 고가도로 향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단군 할아버지가 배를 탄 이유
“엄마, 예상치 못한 것을 상상해 보니 정말 신기해요. 그런데 왜 단군 할아버지는 힘들게 바다를 건너 그 섬에 단을 쌓고 제를 올렸을까요? 마니산에 특별한 뭔가가 있어요?”

아마도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마니산에 쌓은 참성단이 북쪽의 백두산과 남쪽의 한라산을 이었을 때의 절반으로 한반도의 중앙, 아니 한반도의 중심이라 한다. 또 하나, 풍수 전문가들은 강화 마니산을 ‘제1생기처’라 부른다. 한반도에서 좋은 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빠, 기가 많이 발생하는 걸 어떻게 알아요? 눈에 보여요? 그걸 알 수 있는 기계라도 있나요?”

기계가 있다. 풍수 전문가와 대학교수들은 지기 탐지기(L-ROD)를 사용한다. 이를 이용해 측정할 때 회전수가 높은 곳이 기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생기처로 널리 알려진 합천 해인사가 17〜46회 회전하는 데 비해, 강화의 마니산은 무려 65회나 회전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모두 접고서라도 단군 할아버지가 선택한 장소니 신령스러운 곳임이 분명하다.

 

마니산 참성단의 개천대제 모습(사진 제공 강화군청).
성화를 채화하는 마니산 참성단
이제 마니산에 오른다.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단군로와 계단로다. 거리상으로는 계단로가 짧지만,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개인적으로 단군로가 더 좋다. 마니산은 468m로 높아 보이지 않지만, 섬이라 거의 해발 0m에서 오르니 그리 낮은 것도 아니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참성단(사적 136호)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이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 고려 시대에는 왕과 제관이 찾아와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 시대까지도 제사 의식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북한에는 단군릉을 비롯한 단군 관련 유적지가 많지만, 남한에는 강화도의 참성단이 유일한 단군 관련 사적지다. 요즘도 개천절에는 마니산에서 제례를 올린다. 또 전국체육대회가 시작되기 전 선녀 일곱 명이 태양열로 성화를 채화하거나, 흐린 날 부싯돌로 불을 붙여 전국체전이 열리는 곳까지 성화를 보낸다.

참성단의 아랫부분은 둥글고, 옆모습은 사다리꼴이며, 꼭대기는 정사각형이다. 자연석을 쌓아 만든 제단으로 아랫단이 둥글고 윗단은 네모로 천원지방을 나타낸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으로, 김교헌의 <신단실기> 내용과 연관해볼 필요가 있다.  


 
단군왕검은 1천 년 이상 살았다?
마니산 단군 관련 유적지에 와서 단군신화를 빠뜨릴 수 없다.

“너희 모두 단군신화는 알지?”

“네, 알죠. 그런데 국사 선생님이 단군신화가 실화일지도 모른대요.”

그럴지도 모른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에서 언급된다. 이는 <삼국사기>에 있는 내용을 신화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그래서 단군신화를 해석하는 시각은 여럿이다. 한반도의 북방에서 동쪽으로 환웅족이 이동하다가 백두산 부근에서 토착민을 만나는데 호랑이를 섬기는 호족과 곰을 섬기는 웅족이라는 것.

농경민족인 웅족은 환웅족과 어울리고, 수렵민족인 호족은 쫓겨난다. 100일간 마늘과 쑥을 먹으며 참은 곰이 여인이 되고, 호랑이는 참지 못해 굴을 나가는 것과 같다. 그 후 두 세력을 같이 지배하는 지도자 단군왕검이 나와 수천 년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신기해요. 단군왕검이 사람이 아닌가요? 1천 년이 넘게 다스린다고 했는데, 사람이 1천 년을 살 수가 있나요?”

“음, 그게 말이야….”

단군왕검은 우리 민족의 시조다. 시조란 한 겨레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을 칭한다. 단군왕검은 단순히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정치 권력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단군왕검은 제사장이면서 통치자다. 그러니까 단군왕검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권한이 있으면서 정치 우두머리였다. 왕검은 첫 번째 단군의 이름으로 단군이 왕위에 올라 1천 년 이상 다스렸다는 것은 1대 ‘단군왕검’부터 제 47대 ‘단군고열가’까지 1천500년 동안 나라가 이어졌다는 뜻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하나가 아니다?! 
“아빠, 궁금한 게 또 있어요. 단군이 세운 나라가 조선이래요. 조선은 이성계가 세우지 않았나요?”

“우리 역사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모두 세 개가 있단다. 청동기시대 단군이 처음 연 나라가 ‘조선’이고, 2천200년 전 위만이라는 인물이 세운 조선이 있지. 또 600년 전 너희에게 익숙한 이성계가 세운 나라도 조선이란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단군 할아버지가 세운 나라를  ‘고조선’ ‘단군조선’이라 부르고, 위만이 세운 조선은 ‘위만조선’으로 구분해 부른단다.”

“아, 그렇구나.”

“자, 그럼 전등사에 들렀다가 풍물 시장 구경을 해보자.”

“전등사엔 왜요? 힘든데 그냥 시장 구경이나 가요.”

“전등사에 중요한 게 있거든. 너희 단군 할아버지 아들이 세 명인 걸 알고 있니?”

“아뇨, 몰랐어요.”

단군에겐 부소 부여 부우라는 아들이 있었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사적 130호)은 강화도 남쪽의 정족산에 있어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천혜의 요새인 정족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석을 이용해 쌓았고 네 개의 문을 두었는데, 이중 남문과 동문은 전등사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풍물 시장 구경을 간다. 2일과 7일에 장이 선다. 강화에 유명한 것이 많지만, 인진쑥과 사자발약쑥 등 강화 쑥은 효험이 높고 육쪽마늘은 특산물이다. 여섯 조각이라 육쪽마늘인데, 다른 마늘에 비해 저장 기간이 상당히 길다.

“어! 엄마 이제 알았어요. 웅녀가 사람에 되기 위해 먹은 것이 마늘과 쑥이잖아요.”

“아~ 저도 알았어요. 단군 할아버지가 왜 강화도에 정착했는지.”

맞다. 분명 웅녀는 강화 육쪽마늘과 강화인진쑥, 사자발약쑥을 먹었을 것이다. 그것을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았다. 쑥과 마늘뿐 아니다.

강화 순무는 바다만 건너면 제대로 자라지 않으니 강화 땅은 분명 신묘한 기가 흐르는 특별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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