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초원에서 놀다

 
주유비가 치솟으면서 먼 길 떠나기가 부담스럽다. 대안은 도심 주변의 초원이다! 서울에 인접한, 심지어 담을 사이에 두고 바짝 붙어 있는 고양시의 원당 종마목장과 서삼릉은 입장료가 1천 원에 불과한 초저가 ‘더블 패키지’다. 무엇보다 지금 찾아야 싱싱하게 돋아난 자연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맛있는 도시락과 넓은 돗자리, 기사에서 소개하는 나들이 필수 사항뿐이다. 취재·사진 박지현 리포터 true100@empal.com

 


종마목장에 종마는 없다?
초원 산책의 시작은 그 유명한 은사시나무 길이다. 이제까지 각종 CF 배경으로 등장한 곳인데, 아침에 보면 유독 은빛으로 반짝이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연인들이 걸으면 자동으로 덥석 손잡을 만하다. 대신 조건이 있다. 낭만적인 산책은, 주말의 경우 아침 8시 30분까지 가능하다. 그 이후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차를 대는 통에 낭만 지수가 확 낮아진다.

본격적으로 원당 종마목장(이하 종마목장)에 발을 들이자 드넓은 초지가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빌딩 숲 사이에서 살아온 도시민은 상상하기 힘든 경치다. 심지어 말들이 초지 위를 여유롭게 서성대니, 이것이야말로 1970년대 방영된 <초원의 집> 분위기다.

여기에서 잠깐 ,알아둘 사항이 있다. 사실 ‘원당 종마목장’의 정식명칭은 ‘경마교육원’이다. 아직도 사람들에게 종마목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곳의 과거 임무(?)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종자가 훌륭한 씨수말의 가격은 100억을 웃돌 정도로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서 한국마사회에서는 혈통 좋은 씨수말을 들여와 주변 축산 농가의 암말과 교배하는 중요임무를 수행했다. 즉 목장은 씨수말와 씨암말의 합궁이 이뤄진 역사적인 공간이다.

지금은 비싼 몸값 자랑하던 종마들이 대부분 전라도 장수목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 종마목장의 상징성을 위해 늙은 종마 한 마리가 남았을 뿐이다. 대신 과천에서 뛸 경마를 훈련하는 공간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종종 이곳에서 기수들이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엄마 비비, 딸 비비안
하얀 담장으로 구분된 초지는 모두 25곳, 여기에서 살아가는 말들은 100여 마리에 달한다. 대부분 몸체가 날씬하고 털이 빛나는 경주마와 승마용이다. 하지만 멋진 말들은 대부분 먼발치에서나 바라볼 수 있다. 관람객과 교감하는 주인공은 몸집이 아담한 관상마 몇 마리다. 24시간 초지에서 방목으로 살아가는데, 손님맞이가 익숙해서인지 사람들이 먹이를 주거나 털을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다. 위치는 입구에서 산책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만나는 중앙 초지다(목장 안내도에서 18번 초지).

주인공 이름은 비비, 올해로 아홉 살인 하얀색의 셔틀랜드 포니다. 보통 25~30년을 사는 말의 수명을 감안하면 젊은이 축에 속한다. 최근에는 비비보다 인기가 많은 녀석(?)이 등장했다. 지난 3월에 비비가 낳은 새끼, 비비안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갓 태어난 새끼는 참으로 신기하고 어여쁘다. 비비안도 마찬가지다.

“앗, 여기 망아지닷!” 종마목장에서 비비안은 사람들을 졸졸 따르게 만드는 스타다. 우리 가족도 몇몇 유치원생과 함께 비비안의 동선을 쫓느라 바빴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초지 중앙에서 어미와 놀던 비비안이 하얀 담장으로 슬슬 다가온 거다. 비비안은 조심스럽게 담장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갓 두 달을 넘긴 새끼는 연한 갈색 곱슬거리는 털로 뒤덮여 있었다. 새롭게 피어난 신록 사이에서, 망아지는 마치 봄 덩어리인 듯했다.

우리 가족은 비비안에게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원래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금기 사항이지만, 종마목장에서는 당근 등을 건넬 수 있다. 싱싱한 당근을 비비안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웬걸! 당근에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어미젖을 빨기에도 바쁜 시기였던 거다. 대신 어미인 비비가 슬금슬금 다가와 딸 대신 당근을 우적우적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이 굉장한 발견이라도 한 듯 시끄럽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우와, 저 이빨 좀 봐. 손까지 먹어 치우겠어!”

 

행복의 비밀은 당근!
가장 신이 난 것은 나들이에 동행한 세 살배기 아들이다. 입을 하마처럼 쫙 벌리면서 찢어지게 웃었다. 우리 가족은 주변 아이들에게 당근 조각을 나누어주면서 인심을 베풀었다. 감사의 인사가 여름철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종마목장에서나 가능한 당근 한 조각의 행복이다. 참, 담당자가 귀띔한 바에 따르면 당근보다 좋은 준비물은 각설탕이다. 영화 <각설탕>에서 나왔듯 말은 당근보다 달콤한 각설탕을 사랑한다. 물론 손바닥에 남을 말의 침만 감수한다면 말이다.

비비안과 교감했다면 건너편에 홀로 자리한 샌드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시라. 현재 새끼를 배고 있어서 당근을 주면 순식간에 해치운다. 앞머리를 따고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인데, 노안인 외모와 달리 실제 나이는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종마목장 산책의 마무리는 역시 언덕에 마련된 포토 존이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좋고, 시원한 바람이 자주 지나가 상쾌하다. 무엇보다 초지에 지천으로 핀 냉이 꽃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말들이 먹지 않는 냉이 꽃은 늦봄까지 세를 불리며 봄 냄새를 가득 풍긴다. 하얀 안개꽃이 들판에 뿌려진 듯한 모습은, 종마목장의 또 다른 볼거리다.

 

봄과 여름 사이의 간이역, 서삼릉
우리는 돗자리를 펴기 위해 서삼릉으로 자리를 옮겼다(담장을 사이에 두고 두 공간이 붙어 있다). 사실 서삼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유적지다. 조선 시대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와 그의 아들 인종, 여기에 철종의 무덤까지 모여 있다. 무엇보다 신록이 아름답다. 종마목장의 자랑이 드넓은 초원이라면, 서삼릉은 울창한 숲길이다. 안에 들어가면 자연의 보자기에 몸을 감싼 것마냥 마음이 편안하다.

입장료는 단돈 1천 원! 그것도 19세 미만은 공짜여서 4인 가족이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종마목장보다 사람이 적은데다,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돗자리를 펴기도 좋다. 내부를 둘러보는 데는 30분이면 족하다. 혹 아이와 찾는다면 서삼릉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좋을 듯. 오전 10시3 0분과 오후 2시에 진행되는데, 예약해야 한다. 물론 안내 팸플릿만 챙겨도 서삼릉을 즐기기엔 문제가 없다. 내지에 능에 대한 설명, 그러니까 참도나 홍살문, 정자각 등에 대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담겨 있다.

입구에서 울창한 산책로를 따라 3분 남짓 걸었을까. 예릉 주변에서  돗자리 명당을 발견했다. 키 큰 소나무가 아름드리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고 주변 능을 여유 만만하게 산책했다. 신과 왕이 걸었다는, 각기 높이가 다른 돌길을 따라 오래된 정자각에 닿자 과거의 시간이 손에 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돗자리에서 두 발을 쭉 뻗은 채 누웠다. 하늘은 가을처럼 높은데다 주변 나무는 온통 연둣빛, 여기에 새까지 음향효과를 보태니 이보다 행복한 초원 산책은 없을 듯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감상하면서 리포터는 세 살배기 아들과 살짝 잠이 들었다.

 

완벽한 나들이를 위한 5가지 체크 사항
몇 시에 도착할까? 오전 9시! 주말에 차를 가져간다면 무조건 오전 9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 종마목장과 서삼릉의 주차장은 아담해서 오전 9시를 넘기면 주차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후 2시가 넘으면 아예 경찰관이 차를 돌리라고 조언한다. 혹 늦잠을 잤다면?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라.

도시락을 못 챙겼다면?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두 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는 종마목장 매점에서 컵라면 등으로 가볍게 때우는 것, 둘째는 나들이 마무리에 인근 음식점에 들르는 것이다. 종마목장에서 나가다 허브랜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음식점 몇 곳이 눈에 띈다. 가격은 한정식 8천 원 수준.

돗자리 명당은 어디? 종마목장에서 돗자리 명당은 중앙의 나무 벤치  주변이다. 대부분 일찍 도착한 순으로 이곳에 자리를 펼친다. 좋은 자리가 없다면 종마목장을 둘러보고 아예 서삼릉으로 자리를 옮기시라. 능 주변에 키 큰 소나무가 많아서 그늘 자리가 많다.

화장실, 어디가 깨끗한가? 종마목장과 서삼릉, 화장실은 모두 깨끗하다. 종마목장은 입구 쪽에 간이 화장실까지 설치한 상태. 단 깨끗하기는 매점 옆 화장실이 낫다. 서삼릉 화장실은 좀 낡았지만 관리는 잘 되는 편이다.

 유모차 빌릴 수 있나? 서삼릉에서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빌릴 수 있다. 하지만 각각 3대와 2대뿐이어서 주말에는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휠체어에 비해 유모차는 깨끗하지 않아서 민감한 주부라면 사용하기가 꺼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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