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관객 마음 잡기, 어른보다 어려워요”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은 무엇인가? 이상향, 사람이 상상(想像)해 낸 이상적(理想的)이며 완전(完全)한 곳.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이상향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전부였다. 하지만 2012년의 이상향은 젖과 꿀만으로 부족하다. 물질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주고 있다. 이제 좀더 이상적이고 완전하기 위해서는 젖과 꿀 외에 흘러넘쳐야 하는 것이 있다. 정신을 풍족하게 해주는 ‘문화’가 그것이다. 유열 대표는 문화, 특히 어린이 문화가 숲처럼 둘러싼 세상을 꿈꾼다. 

취재 이재영(자유기고가) 사진 김영선

 

지켜보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울 수 있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선 오래도록 고민한 결과다.

“왜?”라는 질문이 무색할 만큼 유열(52) 대표는 뮤지컬 마니아라고 한다. 무대극이 좋아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찾아보던 중 2001년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슬라바 폴루닌의 러시아 무언극 <스노우 쇼>를 만났고, 그에게 뮤지컬 제작사 대표라는 또 다른 타이틀이 생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벌리고 공연을 봤습니다. 굉장히 생략된 언어로 표현됨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 있는 모든 시람들이 감동을 받았어요. 어느 순간 무장해제 되고, 묘한 환상의 세계에 온 것 같았죠. 언어가 없지만 많은 상징과 은유라는 장치로 자유, 해방감 등을 실감 나게 표현했어요. 그 작품을 보고 <스노우 쇼>처럼 관객과 풍요롭게 교감할 수 있는 창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7주년 맞은 <브레멘 음악대>의 성공 비결
지금에야 아이들 것만 잘하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처음 창작 뮤지컬을 만들기로 하면서 그는 우선 아이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고 차츰 스펙트럼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심은 모든 이들의 본질적인 것이어서, 단순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텍스트를 찾아봤어요. 우리의 설화나 외국의 오래된 동화를 기본으로 했죠.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들은 그 속에 좋은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브레멘 음악대>를 떠올렸어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점도 들어맞고,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어요. 뛰어난 하나가 아니라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이 모두 주인공이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죠. 아이들에게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알려줄 수도 있고, 친구란 서로 돕고 용기를 주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존재라는 것도 이야기 하고요. 동물 네 마리가 브레멘으로 가면서 함께였기에 도둑을 물리치고 행복을 얻는 과정은 우리 삶과도 꼭 닮았잖아요.”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를 보면 종전의 아동극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세련됐다. 아동극은 왠지 유치하고 시시할 것 같다는 편견이 부끄러운 작품이다. <브레멘 음악대>의 눈높이는 마치 용수철 같아서 공연 내내 아이와 함께 극에 빠져 브레멘으로 행복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준다. 함께 긴장하고 울고 웃으며 공연을 보고 나서 제법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는 작품이랄까? 일방적인 감흥이 아닌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공연이다.

“사회적인 이미지가 어린이극은 ‘유치’하다는 것이지요. 아이들 건 쉽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어린 관객 마음 잡기가 가장 어려워요. 호기심 왕성한 스펀지 같은 감성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죠. 어린이 뮤지컬을 하면서 옛 어른들이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다’라고 한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이들이 극에 빠져드는 걸 보면 정말 놀라워요. 집중력이 대단하죠. 어른 못지않은 혹은 더 나은 관객들이에요.”

 

외국과 달리 척박한
국내 어린이 공연 제작 현장

유열 대표는 어린이 극이 쉽고 유치하다는 편견을 심어준 데는 우리의 문화적 환경 탓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어른 아이 장르 구분 없이 제작비가 똑같이 들어간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어른 공연에 비해 티켓 가격이 저렴하고, 지자체나 정부에서 아무런 지원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각자 알아서 투자나 후원을 받거나 다른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 등으로 자생해야 하는 것이다.

7년 동안 작품을 만들고 <브레멘 음악대>를 키워오면서 지치지 않은 것은, 물론 좋아하는 일은 끝까지 해낸다는 기본적인 삶의 철학이 우선했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는 싱글이고, 가수라는 또 다른 직업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참 안타까워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좀더 좋은 문화 환경에서 자랐으면 합니다. 유럽의 몇몇 나라는 아이들 공연을 만들려면 자격증이 필요해요. 아무나 함부로 만들지 못하게 하죠. 어른들은 좋고 나쁨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해요. 하지만 아이들 것은 철저하죠. 저희 컴퍼니도 작품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 만들 때 꼭, 소아정신과 오은영 박사의 자문을 구하고 감수 받습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제일 부러운 건 곳곳에 있는 어린이 극장이에요. 연령대에 맞는 다양한 작품들이 끊임없이 올라가요. 아이들은 언제나 저렴한 가격으로 보고 싶은 공연을 볼 수 있죠. 때로는 참여극이나 체험극을 통해 스스로 배우가 되기도 하고, 방학 때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기도 합니다. 부모를 위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무궁무진하고요. 지자체와 국가에서 공동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죠. 극장 운영에서 티켓이 차지하는 부분은 20% 정도라고 해요.”

 

문화를 풍요롭게 향유한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

그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아이의 문제가 대부분 환경과 부모에서 시작된 것이듯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아이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했다.

그렇게 문화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꼭 배우나 예술가가 되지 않더라도 문화를 향유하고 지원하고 응원하고 즐기는 어른으로 자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앞둔 신랑으로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예비 아빠로서 그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 꾼다. 행복한 환경을 체험하고 그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누구보다 자유롭고 건강한 아이가 많아졌으면 한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소중한 존재니까.

“<브레멘 음악대> 뮤지컬 넘버 중에 ‘브레멘 그곳은 모두의 꿈이 소중하게 사랑받는 곳’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 유열컴퍼니가 말하려는 바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곳이 각자 다른 꿈이 모두 사랑받는 브레멘이 되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고요.”

일곱 살이 되면서 계속 성장한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는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는 우리 이야기로 만든 창작 뮤지컬 또한 마찬가지일 터. 사람은 누구나 각각의 기억 속에 다르게 존재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유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억되는 가수지만, 누군가는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킨 DJ로 기억하고, 또 다른 이는 정갈한 진행이 일품인 MC로 떠올린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그를 ‘각자의 꿈을 알아주고 문화를 풍요롭게 해준 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아낌없는 사랑을 준, 그들의 소중한 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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