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숙암계곡은 ‘목신(木神)들의 숲’
한그루 한그루가 당산나무급 … 둘레 140cm ‘사시나무’ 등 거대수목 즐비

한국특산종인 왕사스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거제수나무’와‘사스레나무’의 교잡종이다. 회색 표피가 벗겨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 마치 멸종된 포유류‘매머드’를 연상하게 한다.
‘목신(木神)들의 숲’ ‘한반도 숲의 모태(母胎)’ ‘숲의 다문화가정’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숲’ …

가리왕산스키장 예정지 숙암리 계곡을 돌아본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의 소감이다.

취재기자는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과 함께 지난해 9월엔 중봉에서 내려오는 남자 활강경기장 노선을, 지난 6월 2·3일엔 하봉에서 내려오는 여자 슬로프 예정지를 모두 답사했다.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지원으로 진행한 숲 탐방 프로그램은 국립수목원 이병천(식물분류학) 박사의 풍성한 해설로 깊이를 더했다.

“이 사시나무를 보세요. 가슴높이 둘레 140cm가 넘습니다. 지름 45cm나 된다는 얘깁니다. 사시나무는 보통 지름 30cm까지 자라지, 이렇게 큰 나무는 드뭅니다. 그만큼 이곳의 토양이 비옥하고 토심이 깊다는 거죠.”

이 박사는 “이곳 숙암리 계곡의 토심은 평균 1미터 정도 된다”며 “보통 산 계곡부의 토심이 30cm 정도니까, 다른 산보다 3배 이상 깊은 셈”이라고 말했다.

 

하봉 능선이 여자 활강경기장 예정지임을 알려주는 표식기.
대표 나무는 단연 ‘왕사스레나무’
이렇게 깊은 토양층은 나무들의 풍화작용때문이다. 수만년 이상 오랜 시간 동안 나무들이 암석층을 뚫고 뿌리를 내려 흙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토양에 자라는 가리왕산의 나무들은 다들 덩치가 크다. 중봉과 하봉에서 내려오는 1000미터 이상 능선에는 지름 15cm 이상, 길이 5미터가 넘는 철쭉들이 무리지어 자란다.

신갈나무도 밑둥에서 첫 가지까지의 높이가 12미터가 넘는 거목들이 군락을 이룬다. 보통 마을에서 자랐다면 한 그루 한 그루가 당산나무가 될 만한 나무들이다.

‘물들메나무’ ‘물박달나무’ ‘올벚나무’ ‘산개버찌나무’ ‘물푸레나무’ … 수많은 나무 가운데 가리왕산을 대표할만한 나무는 단연 ‘왕사스레나무’다. 한국특산종인 왕사스레나무는 북방계 나무인 ‘거제수나무’와 ‘사스레나무’의 교잡종이다.

거제수나무는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는 거대수목으로 자라지만 한국에 오면 크기가 작아지는데, 가리왕산의 거제수나무는 높이 20미터 이상으로 상당히 큰 편이다.

사스레나무는 백두산 수목한계선에 무리지어 자라는 중간키(높이 2.5미터 정도) 나무다. 이 두 나무가 만나 새로운 종을 이룬 가리왕산의 왕사스레나무는 최대 20여미터까지 거대한 크기로 자란다.

회색 표피가 벗겨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 마치 멸종된 고대 포유류 ‘매머드’를 연상하게 한다.

 

하봉 능선에서 만난‘수정난풀’.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기생식물로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거의 유일한 천연림 지대
상지대 엄태원(산림과학과) 교수팀의 조사 결과, 가리왕산의 왕사스레나무-신갈나무군락은 평균 높이 16미터에 이르고 평균 식물종수 39종으로 종다양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숲의 다문화가정’이란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슬로프 예정지인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북쪽 사면은 대부분 조림지인 가리왕산 일대에서 거의 유일한 천연림이다. 이 숲은 아극상림 단계의 활엽수림으로 생태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병천 박사는 “가리왕산은 백두대간에서 벗어난 독립된 산군이고 1500미터가 넘는 높이에 석회암층이 많이 분포하는 등 산림생태계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골고루 갖춘 산”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산림청은 가리왕산의 산림 유전자보지역을 훼손하지 않고 동계올림픽 알파인활강경기장을 건설할 수 있는 대안지를 찾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과연 ‘환경올림픽’이 될 수 있을까.

 

정선 = 글·사진 내일신문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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