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은 무엇인가? 이상향, 사람이 상상(想像)해 낸 이상적(理想的)이며 완전(完全)한 곳.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이상향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전부였다. 하지만 2012년의 이상향은 젖과 꿀만으로 부족하다. 물질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주고 있다. 이제 좀더 이상적이고 완전하기 위해서는 젖과 꿀 외에 흘러넘쳐야 하는 것이 있다. 정신을 풍족하게 해주는 ‘문화’가 그것이다. 유열 대표는 문화, 특히 어린이 문화가 숲처럼 둘러싼 세상을 꿈꾼다.  취재 이재영(자유기고가) 사진 김영선

 

✽ 전통의 멋으로 맛보는 떡박물관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떡박물관’은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이 1999년 안국동 백상기념관에서 <이야기가 있는 부엌살림전>을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2002년 1월 평생 동안 모은 소장품 2천여 점을 가지고 떡과 부엌살림을 테마로 한 박물관을 연 것.

그 이름에 걸맞게 박물관 1층에는 떡 카페가 운영 중이다. 마침 오미자 소스로 버무린 찹쌀떡 시식 행사가 한창이다. 항아리 뚜껑에 떡과 고물을 푸짐히 차려놓았는데. 긴 줄을 서고 5분 남짓 기다려서야 찹쌀떡 맛을 봤다. 평소 떡보다는 빵을 좋아하는 딸과 아들은 하나 더 먹기 위해 다시 줄을 서는 수고로움도 마다치 않았다. 쫀득쫀득하고 달콤해서 젤리를 먹는 것 같다는 게 아이들의 평. “맛있다”를 연발하는 성화에 못 이겨 한 조각에 1천 원 하는 찹쌀떡을 5개 구입해 떡 카페부터 찾았다. 박물관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예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에서 떡과 함께 시원한 식혜와 수정과를 먹으니 꽤 운치 있다. 카페 입구에서 가져온 떡박물관 안내 책자를 보면서 어떻게 둘러볼지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떡 카페에서 1인당 6천 원 이상 주문하면 입장료가 무료란다. 2~3층이 박물관인데 ,우리 가족은 3층부터 둘러보며 2층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3층은 통과의례 상차림 전시관이다.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인생의 분기점에서 받는 의미 있는 옛 상차림을 전시 중이다. 백일상 돌상 혼례상 회갑상 등이 그것. 특히 아이들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혼례상에 관심을 쏟았다. 보자기에 묶인 닭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떡과 다과로 탑을 쌓은 회갑상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2층은 예상대로 떡박물관의 주인공인 떡이 기다린다. 절기에 먹는 떡, 시대별 떡 변천사, 지역별 떡 문화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단옷날 서민들의 풍습을 닥종이 인형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주어 교과 연계 체험 학습으로도 손색이 없다. 

 

✽ 쌀에 대한 모든 것 쌀박물관

 
사대문 안에서 먹거리를 테마로 한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지하철만 타면 다다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지만 아이들에게 박물관이 만만한 장소는 아니다. 부모는 받아들이기 힘든 역사와 사실을 아이들에게 억지로 주입할 수밖에 없다. 한데 먹거리 박물관은 보는 것과 먹는 것의 조합이니 지루할 일도, 배고플 사이도 없다. 떡, 차라는 확실한 테마가 있으니 박물관을 둘러보며 단 하나의 사실만 기억해도 큰 수확이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농협박물관 옆에 있는 ‘쌀박물관’은 말 그대로 쌀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쌀의 면면을 제대로 알려준다. 여기에 입장료도 무료다. 농협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쌀박물관에선 서구화된 아이들의 식습관을 밥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교육과 전시가 다채롭게 열린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쌀을 이용한 요리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 1층은 전시관으로, 2층은 교육관과 쌀 가공 제품 판매점으로 꾸며졌다.

1층 전시관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모형 벼가 눈에 띈다. 황금 들판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쌀 역사관으로 향했다. 벼의 전래와 역사, 쌀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영상과 사진, 민속 용품으로 표현되었다. 바로 옆 쌀 체험관은 팔도의 쌀 문화와 전국 유명 쌀 브랜드, 쌀의 영양소와 효능 등을 보여준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세계 쌀 이름을 지도를 통해 알아보는 체험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쌀의 탄생을 다룬 만화영화도 상영하고, TV 모니터를 통해 쌀과 관련된 퀴즈 풀기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쌀 자동판매기에 3천 원을 넣으면 현미부터 5분 도미, 7분 도미, 백미 등 취향대로 즉석 도정한 쌀을 구입할 수 있다. 벼부터 시작해 현미를 거쳐 백미까지 차이점을 직접 눈으로 본 뒤 딸은 백미를, 아들은 현미를 구입했다. 2층은 교육관과 쌀 가공 제품 판매점이다. 체험 예약을 하지 않아 요리 체험은 포기했다. 우리 가족은 쌀 가공 제품 판매점에서 간식 타임을 즐겼다. 즉석 쌀 떡볶이와 쌀 조청에 가래떡을 주문했다. 즉석 쌀 떡볶이는 맛은 좋은데 가격(2천500원) 대비 양이 적은 것이 흠. 하지만 조청에 가래떡(2천 원)은 아이들이나 어른들 입맛에도 안성맞춤이다.

 

✽ 향기에 반하는 아름다운 차박물관

 
인사동길에서 종로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에 작은 푯말 하나가 보인다. 여기서 만날 수 있는 먹거리 박물관은 ‘아름다운 차박물관’이다. 입소문을 통해 찾은 곳이지만, 막상 그곳에 다다르니 살짝 실망스럽다. 박물관이라기보다 볼거리가 많은 전통 찻집 분위기랄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스리랑카 유럽 등 전 세계 110여 종의 차를 구비한 티 판매장과 다국적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주요 공간. 여기에 젊은 작가들의 도자기 작품을 전시한 작은 갤러리가 전부다. 잔뜩 기대한 터라 아이들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애당초 ‘먹거리 박물관 투어’라는 테마로 시작한 나들이라 의무감을 갖고 박물관 탐방에 나섰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다구와 각종 차를 전시·판매하는 공간. 평소 꽃차를 즐기는 남편을 위해 티포트 구입을 계획하던 터라  꼼꼼히 살폈다. 소박한 백자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놀랍게도 22만 원이나 한다. 얼마 전 백화점에서 눈독 들인 프랑스산 티포트보다 3배 비싸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지만 선뜻 구입하기엔 망설여지는 가격이다. 대신 목련꽃잎차와 홍화차를 샀다. 목련의 향은 어떨지, 홍화 우린 찻잔은 어떤 빛을 띨지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과 그렇게 차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아이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호기심 많은 아들은 갤러리 곳곳을 누빈다. 반면 차분한 딸은 서까래 천장을 배경 삼아 걸린 시화를 진지하게 관찰한다. ‘꽃차, 나에게 말을 걸다’를 읽다가 리포터에게 돌발 퀴즈를 낸다. “엄마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작은 뭘까요?” “… 녹차?” “아니래요, 잎차가 아니라 꽃차가 그 시작이래요.”

어디에 그런 내용이 나왔냐고 물으니 <삼국유사>라는 문헌에 적혀 있다며 뿌듯해한다. 박물관으로 둔갑한 상업 공간이라며 쇼핑이나 하자던 리포터의 마음이 순간 부끄럽다.

구석구석 살펴보니 차와 관련된 알짜배기 역사가 갤러리에 가득하고, 중간중간 놓인 벤치에 앉아 그림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굳이 카페 내부에서 차를 주문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눈치 주지 않으니 인사동 나들이 뒤 지친 다리를 풀고 싶은 사람에게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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