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BiKi(Busan International Kid’s Film Festival)가 올해로 7회를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알아서 놀고 즐길 줄 아는 나이 일곱 살이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도 쑥쑥 자라는 아이처럼 7년이란 세월 동안 많이 성장했다. 첫해인 2005년 6개국 45편이던 출품작이 지난해에는 21개국 142편으로 부쩍 늘었고, 세계적인 어린이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이란 출신의 푸란 데라크샨데 감독이 영화제를 찾기도 했다. 오는 7월 20일 개막을 앞두고 이 영화제를 시작하고 키워온 김상화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취재 이재영(자유기고가) 사진 김영선 촬영 협조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어린이를 위한 영화제의 필요성
김상화(50) 집행위원장은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만화’의 카테고리에 넣지만, 사실 애니메이션은 ‘영상’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 즉 영상물을 만들다 보니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게 됐다. 부산이라는 지역 안에서 관계는 더 촘촘했고, 함께 영화와 영화인, 영화 세대를 걱정하게 됐다. 그리고 19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만들어진 다음 해 부산독립영화협회가 출범하면서 현장 선배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 등을 거치며 지역 영상 산업, 영상 교육을 고민하다가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처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우선 영상 세대에 사는 아이들이 영상 언어를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어디서도 그걸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 필요성을 인식했고, 지역 영화 인력이 잠깐이라도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크게 맞물려 시작했어요.”

 

 
교육자의 시선으로 본 문화 예술 교육
두 가지 큰 축이 아니라도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부산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어린이 예술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시기나 예술은 중요하지만, 특히 어릴 때 예술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 예술적 프로그램이 교육의 중심에 놓여야 하고, 그 속에 모든 것을 녹여서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시대는 지식 중심의 학습으로 채워져 있죠. 중요한 시기를 건조하게 보내는 것이 굉장히 안타까워요.”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예술 교육의 물꼬를 트고자 했고, 그것이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실체화된 것이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쉽게, 어느 날 짠~ 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2005년 사단법인을 설립하기 전 우여곡절을 겪으며 애써 꾸린 조직이 무산되기도 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예산 확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상업적 이벤트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모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라는 시장을 이용한 여타 체험 프로그램과 생각하는 바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뭐든 선생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정하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협찬 문제로 애태우는 경우가 많아요.

회원을 모집하게 해주면 협찬하겠다는 대형 학습지 회사나 건강하지 못한 먹거리인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은 돈을 준다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아이들 축제니까요.”

 

 
어린이가 주체가 되는 진짜 어린이 축제
어려움 끝에 2005년 조직이 꾸려지고, 그해 여름 영화캠프와 영화학교의 문을 열면서 정신없이 달려 지금까지 왔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국내 유일의 어린이영화제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의 중심에는 어린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어린이들이 합니다. 개막식과 폐막식 사회는 물론 진행 요원, 심지어 심사위원도 어린이죠. 어린이들이 만든 10분 안쪽의 영상물이 출품되는 영화제에 그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시선이 같은 사람들이 심사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른들의 눈에 미성숙하게 보일 뿐, 또래에 맞는 자기 인식과 판단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가장 도덕적인 집단이 아닌가. 믿음대로 처음 심사위원 규정을 스스로 만들어보라고 자리를 마련했더니, 자신과 관련된 출품작이 나오면 그 작품의 심사에서 빠지기로 결정하는 등 민주적인 방식으로 룰을 정했다. 어리지만 공정함이 뭔지, 민주적 합의가 뭔지 다 알고 있는 집단이었다.

 

 
“재미있었니?”대신 “어땠니?”
초기 아이들의 작품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뻔하다고 할까, 결론적으로 ‘착한 어린이가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도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소재나 주제가 다양해지고 영상을 표현하는 것도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아이들이 이미지를 가지고 놀 줄 아는 것 같아요. 같은 아이가 매회 출품하는 건 아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영상 교육이 확산되고, 그런 경험들이 전해지기 때문이죠. 요즘은 모든 게 영상, 이미지로 통해요. 문자보다 이모티콘이 익숙한 세대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영상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모님들이 많은 영상을 함께 봤으면 해요.”

TV건 영화건 보다 많은 것들을 부모님이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좋은 영상 교육이 될 거라고 말하는 김상화 집행위원장. 단 영상을 보고 나서 제발 “재미있었니?”라고 묻지 말았으면 싶다고 한다. 영상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로 나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재미있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마의 생각일 뿐, 아이들은 그 영상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냐는 질문이 오면 두 가지 선택 외에 할 수 없다. 그러니 “어땠니?”라고 물어 좀더 이런저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엄마의 얘기를 집어넣는 게 아니라,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라는 것.

“영화제나 영화캠프에 참가하면 우리 아이가 배우나 감독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고 기대하는 부모님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냥 노는 거예요. 영화라는 매체를 수단으로 아이들이 일상에서 일탈을 경험하는 거죠. 자신들만의 축제를 통해서 말이죠. 이거면 된 거지, 뭘 더 바래요.”

2012년 일곱 살 BIKI의 포스터는 ‘이런 세상 어때?’를 주제로 아이들의 그림을 공모해 꾸몄다. 자동차로 하늘을 날고, 로봇과 함께 사는 꽃이 만발한 거꾸로 된 세상이 포스터에 들어찼다. 영화제 한 번 참여하는 것이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도록 떠오를 인생의 소중한 추억 하나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의 말대로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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