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카페에서 만화가 이우일을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두건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크다는 정보에 의해서다. 189cm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려진 티셔츠와 레이밴 선글라스 차림의 그는 모델이나 영화배우 같은 포스를 풍겼다.

그런데 웬걸,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동아일보의 ‘도날드닭’을 그린 색기발랄, 발칙하던  만화가의 실체는 몹시 소심하고 수줍어하며, 시니컬한데다 염세적인 성향까지… 오오, 이 남자! 흥미롭다.

취재 박미경 리포터 rose4555@hanmail.net 사진 송은지 촬영 협조 네스카페

 

말하자면 이우일(44)은 만능엔터테이너 혹은 멀티플레이어형 인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그는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만화가다. 300일이 넘는 신혼여행을 필두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여행가이자, 유머러스한 문체로 여행기도 여러 권 출간한 에세이스트다. 또 각종 매체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터고, 사진가며, 못 말리는 잡동사니 수집가다.

일단 도서관으로 가서 ‘이우일’이 저자로 된 책을  죄다 대출해 봤다. 시리즈까지 합치면 스무 권이 넘었다. 어떤 책을 손에 쥐든 금방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아내이자 동화 작가인 선현경과 이우일이 303일 동안 다녀온 신혼여행기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화젯거리였다. 무엇보다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그들의 추억거리가 부러웠고, 그 모험을 단행한 두 사람의 의기투합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이 커플이 궁금했다. 더구나 이 훤칠한 미남, 끼 있는 만화가가 오직 한 여자와 10년 넘게 연애하다 결혼했다는 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런 의견에 그는 삐질삐질 웃으며 조그만 소리로 고백한다.

“일편단심은 아니에요. 10년 동안 만났지만 여러 번 헤어졌고, 다른 여자도 만났어요. 아내도 다른 남자와 연애한 것 다 알아요. 하하. 어느 날 술 마시다가 ‘우리 결혼해서 여행 가지 않을래?’하는 프러포즈에 그녀가 오케이 했고, 혼수며 살림집 다 생략하고 일단 떠났어요. 가진 것이 없었기에 가능한 결단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자칫 무모해 보인 이 경험이 만화가로 살아가는 그에게 무궁무진한 자산이며 원동력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행 중에 메모해둔 것, 일기와 사진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신혼여행기가 출간되었으니 뜻하지 않게 본전도 뽑은 셈이다.

 

‘잘 노는 삶’에 관한 고찰
여행에서 돌아오니 만화가 박광수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광수생각’으로 스타가 되어 있었다. 홍익대 재학 시절 전설적인 언더그라운드 만화 동아리 ‘네모라미’의 핵심 멤버였던 그는 단순 명쾌한 캐릭터로 종전 관념을 깨는 코믹 외설(?) 만화를 발표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은 유망주다. 마침 동아일보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오자 기회라 생각하고 ‘도날드닭’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사회 현상이나 문제 등에 대해  풍자를 해봤지만, 반응은 날이 갈수록 싸늘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다, 방향을 달리 잡아라 등등 매일 ‘깨지다가’ 드디어 어느날 잘렸다.

“올 것이 왔다 싶었지요. 독자들에게 끝낸다는 인사도 못 하고 하루아침에 잘렸으니까요.”

잘린 이유는 명쾌했다. 당시 인기를 끌던 ‘광수생각’처럼 마지막 칸에 결론을 한 줄 쓰라는 요구를 그가 도통 듣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 칸에 결정적인 멘트를 넣어주는 친절함이 불편했어요.

한 줄로 답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안 했죠.”

알 만하다. 그러나 결국 그의 고집이 옳았다. 훗날 ‘도날드닭’이 가장 이우일다운 만화로 인정받았으니.

그는 이어 딴지일보의 김어준씨와 만나면서 ‘존나깨군’이라는 엽기적인 제목으로 인디 만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리플이 수 천 개 달렸고 80%는 악플이었다. 그런 반응에 힘입어 그는 점점 ‘이우일’다워졌다.

“저는 좀 늦되는 스타일이에요. 메이저가 아닌 쪽이 내 성향이거든요. 계산 빠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지 않겠죠. 늘 저의 머릿속에 꽂혀 있는 건 이번 주엔 어디로 휴가 갈까,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 하는 잘 노는 삶에 대한 거예요. 그외 것은 그리 관심이 없어요.”

아, 멋지다. ‘잘 노는 삶’이라니. 그것이야 말로 가장 잘 사는  방법일 터다. 만화책 <고양이 카프카의 고백>을 보면 고양이 카프카의 시선으로 본 한심하고 철딱서니 없는 주인 이우일이 그려진다.

아내 선현경, 아빠를 닮아 ‘기럭지’가 몹시 긴 초등학생 딸 은서와 새 식구인 고양이 비비의 소소하고 공감 가는 일상에 킥킥 웃음이 새어나온다. 사실 이우일이 대책 없이 모아온 각종 수집품으로 꽉 찬 집 안에서 부인과 딸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물건을 사들이는 에피소드를 보며 꼭 그의 집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가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버텼기에 할 수 없이 포기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집을 촬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더니 본인이 직접 찍어 보내주겠단다.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 고양이 카프카의 사진도 첨부했다.

 

수집가는 천상의 행복을 맛본 사람
작업실 겸 서재로 쓰는 그의 집 2층은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바로 그의 수집벽 때문이다. 그의 수집에는 어떤 계통도, 원칙도 없다.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것이면 뭐든 모았다. 어린 시절부터  딱지, 구슬, 미니카, 프라모델, 레고, 액션 피겨, 만화책 등을 은밀히 보관했고, 돈을 벌어 좋아하는 레고와 프라모델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어른이 된 것만으로 기뻐했다. LP, CD, 비디오테이프, DVD, 그림책, 사진집, 소설책, 똑딱이 카메라, 책 띠지며 각종 스티커, 옷에 붙어 있던 태그, 낙서된 포스트잇까지…. 그가  열광하며 모으는 것은 사실상 ‘모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임과 동시에 ‘잡동사니’다.

대개 수집가들은 좋아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모으지만, 그의 수집품 사이에는 공통점이라든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저는 분초 단위로 관심사가 바뀌어요.(웃음) 그래서 일관성은 전혀 없지만 모두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고, 그것들을 찾아내 하나하나 모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죠. 여행지에서 가져온 조각상,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책… 그들과 교감을 포기할 수 없어요.”

본인이야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추억을 수집한다 쳐도 부인이나 딸의 반응은 어떨까.

“늘 아내의 눈치를 봐요. 그래도 결국은 살 거라는 걸 알기에 눈감아주는 아내는 정작 1년 내내 아무것도 안 사요. 그래서 제가 아내 옷까지 사는 기쁨을 누리죠. 우리 딸 은서는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제 것이 될 거라는 생각에 흐뭇해하는 듯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게 뭔가를 요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딸이 성장해서 사랑에 빠지면 아빠의 진귀한 물건을 애인에게 갖다줄까 봐 걱정이에요. 그때마다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주입해요. 하하.”

너스레를 떠는 그의 천진난만함이 네 칸짜리 만화에서 본 듯도 하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수집품을 통해 그에 얽힌 일화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 책으로 출간하는 작업을 해냈다. ‘한 웃기는 만화가의 즐거운 잉여 수집 생활’이란 부제가 붙은 에세이집 <콜렉터>다. 이렇듯 그에게 놀이는 늘 무언가를 창출하는 도구가 되었다. 아내는 남편 이우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좋아한다면 그 물건의 용도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자, 가족을 위험에서 구하고자 황당한 서바이벌 용품을 준비해두는 남자, 마흔이 넘도록 레고를 조립하고, 아이처럼 가지고 놀 줄 아는 남자. 그러나 주식이나 부동산은 거들떠도 안 보는 남자….”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HAPPY, HAPPY, JOY, JOY’
‘여자 이우일’로 불린다는 그의 아내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다. 무엇이든 아이에게 결정권을 준다. 중학생이 된 딸을 영어 학원에 보내자는 아빠의 의견보다 딸의 선택을 우선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즐겁게 살 수 있다면 굳이 대학 진학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있다. 아내의 스마트폰 카톡 메시지가 ‘happy, happy, joy, joy’인 것만 봐도 알겠다.

“아이가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면  우선순위가 ‘재미’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많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과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을까’ 걱정하죠.  내가 재미있는 걸 찾아내면 그 안에서 많은 길을 발견할 거예요. 기회는 준비한 사람에게 주어지죠.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면 열심히 시도하는 겁니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명예나 인기에 목매지 말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됩니다.”

그는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모든 것은 잊히고 지나간다는 다소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고, ‘가족과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소중하다고 믿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이층집에서 책 무게 때문에 방구들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며 딸내미와 레고 조립하는 재미로 사는 이 남자를 현실감이 없다고 비난하지 마시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문득 떠오른 말, 누군가 앤디 워홀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앤디 워홀 자신이라 말했듯이, 이우일의 가장 위대한 수집품은 바로 이우일 자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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