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뻥 뚫리고, 입안이 ‘얼얼’
영산포 홍탁삼합

 
“아따, 요로코롬 콤콤한 놈을 워찌 먹는다요?” “설마 죽기야 허겄소. 일단 묵어보장게.”영산포 포구에 목선이 도착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뱃사람들이 모여 실랑이를 벌인다. 흑산도에서 도착한 홍어 때문이다.

흑산도 홍어는 나라님께 진상할 귀한 물건인데,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로 달포쯤 풍선(風船: 일명 돛배)으로 운반하니 흑산도에서 펄펄 뛰던 놈들도 영산포에 도착할 때면 명을 다했을 뿐 아니라 콤콤한 냄새까지 풍기며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일쑤다. 매번 버리기도 아까워 뱃사람 몇 명이 어디 한번 먹어보자고 한다. 배포 큰 사내 하나가 이놈의 콤콤한 홍어를 잘라 먹어본다. 그 맛은 어땠을까? “아따, 먹을 만합디요.” 예상외로 죽지도 않고 탈도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맛이 좋았다 한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홍어찜.
남해안의 귀한 물건이 모여들던 영산포
영산포는 나주에 있는 포구다. 전라도(全羅道)가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에서 비롯된 말임을 짐작컨대, 나주는 그 세(勢)가 큰 곳이었다. 한반도 서쪽 바다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뱃길로 나라님에게 진상하던 남해안의 귀한 수산물이 해로를 통해 영산포에 집결했으며, 여기서부터는 육로로 운반했다. 그 시기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만큼 영산포 홍어는 오래된 발효 음식이다.

삭힌 홍어 얘기는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도 볼 수 있다. <자산어보>에는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고 기록되었다. 영산포 사람들은 삭힐수록 짜릿하고 톡 쏘는 알싸한 맛을 좋아했다. “홍어 없는 잔치는 먹을 게 없다”고 할 정도다.

요즘도 남도 지방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홍어다. 따뜻한 두엄 속에 며칠 동안 파묻거나 아랫목에 항아리를 두고 속에 짚을 넣어 홍어를 삭힌다. 홍어는 삭히면 톡 쏘는 냄새가 나며, 홍어 살이 단단해지고 싸한 맛이 더욱 깊어진다. 또 관절염 치료제인 황산콘드로이틴이 다량 들어 있다.

 

황토방에서 숙성시키는 옹기들.
영산강 선창의 홍어집들
요즘은 뱃길이 끊겼지만 그 옛날 흑산도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이 닻을 내렸을 영산 강변에는 ‘홍어 도소매’를 간판으로 내건 홍어집들이 여전히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선창에 배가 드나들던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영산 강변에는 홍어집이 100곳이 넘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30여 곳만 남아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아무튼 영산포는 홍어가 유명하다. 이제는 귀하신 몸이 된 흑산도 자연산 홍어를 비롯해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각국의 홍어가 거리에 넘쳐난다. 이른 새벽부터 선창의 홍어집들은 홍어 손질에 바쁘다. 갈고리로 찍어 들라치면 건장한 성인 남자도 힘에 겨운 홍어를 남정네들이 크게 잘라주면 ‘아지매’들이 부위별로 잘게 자른다.

이를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고 현지 판매도 한다. 영산포 홍어(061-337-5000)는 황토방에 둔 옹기 항아리에 홍어를 넣고 가마니를 덮는 등 전통을 살린 고품질 홍어를 만들어낸다. 즉석에서 잘라 탁주와 함께 시식을 시켜주는 홍어는 생각보다 톡 쏘지 않는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택배가 보내지면 그 시간을 고려해 미리 자르기 때문에 조금 덜 숙성한 것이다.

어디로 갈까, 무얼 먹을까?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회, 홍어삼합, 홍어보리앳국, 홍어탕, 홍어볼테기덮밥, 홍어샤부샤부, 홍어전, 홍어모둠정식…. 홍어를 먹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하다. 홍어삼합은 기본이고 홍어무침도 조금, 홍어찜도 조금 먹고 싶고 홍어보리앳국도 당기고…. 즐거운 고민을 하니 주방장 ‘아줌씨’ 빙그레 웃음 짓는다.

 

황석영 선생과 홍탁삼합
가장 먼저 선보이는 것은 삼합과 홍어찜. 홍어 요리의 최고는 역시 삼합이다. 잘 익은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홍어회를 한입에 먹는 음식이다. 삼합을 제대로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잘 삭힌 홍어회를 초장에 슬쩍 찍는다.

이 홍어를 아직 따뜻한 돼지고기(당연히 돼지고기에는 비계며 껍질이 붙어 있어야 제 맛이 난다) 수육에 얹고 잘 익은 배추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다시 그 위에 올린다. 이렇게 쌓은(?) 홍어 돼지고기 신 김치를 한꺼번에 집어서 입안에 넣는다.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의 맛 중에 ‘삼합’을 제일로 친다. 우연히 ‘홍탁’을 맛보고 진저리를 친 적이 있다. 무슨 날고기 같은 것을 두툼하게 썰어 내오고 그와 크기가 비슷하게 돼지고기 삶은 것 몇 점이 곁들어졌는데, 묵은 김치가 찢어 먹기 좋도록 썰지도 않은 채로 한 접시 따라 나왔다. 술은 주전자에 넘칠 듯 가득 들어 있는 탁주 막걸리였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홍어삼합을 먹고 쓴 글이다. 이는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함께 홍어 요리를 먹는 듯 참으로 구체적이다. 삼합을 입에 넣은 순간을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이렇게 회상한다.

“한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 올라오는 듯한 가스가 입안에 폭발할 것처럼 가득 찼다가 코를 역류하여 푹 터져 나온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고는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쭈욱 들이켠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면 어쩐지 속이 후련해진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말 그대로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 이들 홍어 삼겹살 묵은 김치를 전라도 사람들은 ‘삼합’이라 부른다. ‘홍탁삼합’을 처음 먹는 사람들은 어찌나 독한지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지기도 한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많이 삭힌 홍어일수록 코가 뻥 뚫리고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자극적이라 어떤 이는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맥스’라고 했다. 

 

커다란 홍어가 그려진 영산포 홍어의 거리.
취기를 달래주는 영산포 등대
여기에 곁들여지는 것이 바로 막걸리다. 홍어는 막걸리와 천생연분이라 톡 쏘는 홍어 맛을 은근하게 휘감아주는 탁주의 맛을 홍어의 ‘홍’자와 탁주의 ‘탁’자를 따서 ‘홍탁’이라 한다. 또 하나 곁들여지는 것이 홍어보리앳국이다. 봄철에 나는 보리 순을 넣고 끓인 홍어애(홍어 창자) 해장국은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능이 있기도 하지만, 전라도 특유의 깊고 진한 된장 맛이 어우러진 천하일미다. 지금이야 사계절 음식이 되었지만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다. 쌀쌀한 바람이 코끝에 닿으면 홍어의 톡 쏘는 맛이 절로 혀끝에 느껴진다. 아무러면 어떠랴! 거나하게 홍어 요리를 만끽하고 나면 영산강가를 걸어봄 직하다.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발원해 남도의 대지를 적시며 서해로 흘러드는 115km의 영산강. 강가에는 옛 영광을 그리듯 새하얀 영산포 등대가 서 있다. 조명을 밝힌 등대 주변에 앉아 영산강에 비친 이런저런 풍광과 물소리를 듣기에 좋다.

저녁으로 홍탁삼합을 먹은 뒤 얼큰한 취기에 찾는 영산강의 강바람은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옆에 앉은 동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놀란 노루 새끼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지내던 바쁜 일상도 잠시 돌아보게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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