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하모 유비끼

 
2012 여수 세계박람회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아이들 손잡고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고, 핑계 김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북적이는 행사장과 더위가 지레 겁나기도 하다. 뭔가 강한 자극제가 필요하다. 입맛 확~ 당기는 그런 것!  취재·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장어 없이 여름을 날 수 없다?
여수에는 정말로 맛난 것이 많다. 눈물 나게 예쁜 바다도 있지만 ,여수 앞바다는 ‘맛난 갯것’ 천지다. 저녁 준비를 하던 아낙이 체 하나 들고 나가 갯것을 건져 올려 국 끓이고 해초를 무쳐 상을 차렸다니 부럽기도 하고 금세 침이 고인다.

맑은 바다를 끼고 있으니 활어 회는 당연히 맛있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군침 도는 돌산갓김치에 꽃게탕과 찜, 굴구이까지 끝이 없다. 그 중에서도 여수의 자랑거리는 바로 장어다. 여수 사람들은 어느 지역 사람들보다 장어 요리를 즐긴다. 장어 소금구이부터 양념구이, 하모 장어탕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다.

장어구이는 내륙에서도 접할 수 있지만, 장어탕은 다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없다. ‘여수식 장어탕’은 어른 팔뚝만 한 갯장어를 뭉텅뭉텅 썰어 시래기와 숙주 등 채소를 넣고 된장을 푼 뒤 뽀얀 국물이 날 때까지 끓인다. 푸짐한 양과 얼큰하고 깊은 국물 맛에 금세 매료되니 장어가 남성에게 좋다고 하지만, 여성의 피부 미용과 노화 방지에 더 좋다. 게다가 고단백 음식이라 더위에 지친 여름에도 기운이 불쑥 솟게 하니 여수 사람들의 여름철 보양식은 당연 장어다. 그리고 여기 장어탕보다 특별한 요리가 있으니 오늘은 ‘요것’을 먹으러 가보자.

일단 국동항으로 향한다. 여수 시내에서 향일함으로 가는 길목에 야경이 아름다운 돌산대교가 있고, 돌산대교 아래쪽에 자그마한 항구가 국동항이다. 이곳에서 철부선을 타고 5분이면 대경도에 도착한다. 여수항 남쪽에 있는 대경도는 소경도와 함께 여수항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국동항으로 들어가는 철부선은 그 자체가 흥밋거리다. 그리 크지 않은 배는 메기처럼 넓적한 입을 쫙 벌려 사람을 태우고 내린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태우고 차도 태우고 쌀도 싣고 소도 태운다. 음매 하며 울어대는 소와 함께 건너는 여수 앞바다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여행의 묘미가 배가된다. 여수의 별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참으로 별스럽다.

 

바다 건너 여수 시내가 보이는 하모 유비끼 요릿집.
청정 여수 앞바다에서 나는 기운찬 갯장어
육지 사람들이 여름철 보신 음식으로 삼계탕 추어탕 등을 먹는다면, 여수에서 첫손으로 꼽는 것은 ‘하모’다. 여수 사람들은 “하모 먹으러 가자”면 만사 제치고 나선다. 하모 요릿집은 여수 시내에도 있지만, 국동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경도를 제일로 친다.

배를 타고 경도에 도착하니 선착장에선 빨간 고무 함지에 갯것을 담아놓고 파는 할머니들이 기다린다. 금방 잡은 문어가 고무 함지를 탈출하려다 잡혀 들어간다. 옆에 앉는 할머니들은 뭐라 뭐라 말을 얹으며 10대 소녀들처럼 깔깔댄다. 매일 보는 이웃이며 친구며 동료들이다.

하모 요릿집에는 실내와 실외 좌석이 있다. 바닷바람 시원한 실외 자리에 앉는다. 바다에 떠 있는 듯 출렁이는 파도가 손끝에 잡히고 저만치 여수 시내가 보이며, 부지런히 사람을 실어 나르는 철부선이 오간다. 마침 수족관 차가 들어와 이 집 수족관에 뭔가를 엄청나게 쏟아 넣는다. 저것이 하모의 재료렷다.

하모가 무엇일까? 장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미용식이자 건강식으로 사랑받는 식용 장어는 네 종류쯤 된다. 포장마차 소주 안주로 일등 공신인 꼼장어는 먹장어다. 회나 숯불구이로 먹는 것은 붕장어, 양념장을 발라 살살 구워 먹는 장어는 민물 장어다.

오늘의 주인공 하모는 돌산도와 금오도 연안과 가막만에서 잡히는 갯장어다. 양식이 되지 않아 100% 자연산인 갯장어는 단백질과 지방질이 풍부해 체력 보강에 매우 좋다. 특히 단백질 성분인 글루탐산이 다량 함유돼 기력 회복에 좋은 대표 보양식으로 꼽힌다. 거센 이빨 때문인지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에서 ‘하모’라는 말이 유래했다. 갯장어보다 하모라는 말이 더 통용되는 것은 얼마 전만 해도 잡히는 대로 일본으로 수출했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하모 한 점

유비끼용 하모 한 접시.
종업원이 부지런히 상을 차려준다. 국물에 채소를 넣은 전골냄비가 놓이고 밑반찬이 나온다. 하모는 하모  유비끼를 짧게 부르는 말로 ‘갯장어 샤부샤부’라 생각하면 된다. 장어 뼈와 머리, 인삼과 감초 등 한약재를 넣고 10시간 이상 끓인 국물에 부추 양파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대추 등을 넣고 끓이다가 먹기 좋게 토막 낸 하모를 데쳐서 먹는다.

섬세한 칼집을 넣은 하모 한 점을 팔팔 끓인 국물에 넣으면 하얀 살점이 오그라들면서 꽃이 피듯 뭉실뭉실 떠오른다. 칼집을 넣은 오징어가 오므라들 듯이 말이다. 예쁘고 아까워서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육질이 탱탱해진 하모 한 점을 집어 간장 달인 소스나 초고추장에 찍은 다음 상추나 깻잎에 싸 먹는다. 부추와 버섯을 곁들여 쌈을 싸면 더욱 맛있다. 씹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녹는다. 민물 장어의 느끼함이 없고, 바닷고기 특유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담백하고 깔끔하며 고소한 맛만 혀끝에 남는다.

하모는 유비끼로 먹어도 좋지만, 송송 썬 하모 회도 놓칠 수 없다. 그러니 반반 섞어서 주문해 먹는 것이 요령이다. 하모 유비끼를 기다리며 먹는 하모 회가 꿀맛이다. 하모 유비끼를 데치던 국물에는 죽이나 라면을 끓여 먹는다.

일반적으로 밥이 나오는 다른 지방과 달리 생쌀이 나온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다. 남은 국물에 생쌀과 채소, 땅콩 가루를 넣고 끓이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죽은 고소하니 맛있다.

그러나 이처럼 환상적인 하모 유비끼는 여름에만 맛볼 수 있다. 6〜8월이 제철이다. 철이 지나면 식당은 아예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9〜10월까지 영업하는 집도 있다 한다.  

 

여수 장어로 힘내고 여수 한 바퀴
하모를 먹고 힘이 불끈 나면 여수를 돌아보자. 여수 앞바다엔 317개 섬이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박람회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섬은 오동도다. 오동도 주변 해역이 여수 세계박람회 행사장인 덕분이다.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도라고 부르던 섬은 이제 봄날의 동백꽃으로 더 유명하다. 세계박람회장에서 오동도까지는 길이 768m 방파제로 연결되는데, 이곳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오동도에 용굴 코끼리바위 등 해변의 기암괴석이 많아 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부담스럽다면 코끼리열차를 타고 섬을 둘러볼 수도 있다. 오동도 등대를 해양 문화 공간으로 꾸며 무료 개방하며, 드넓은 야외 광장은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좋고, 전망대에서는 여수 세계박람회 행사장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저녁 시간에는 길이 450m 연륙교인 돌산대교에 가보자. 여수의 대표 ‘포토 존’ 가운데 하나로, 진정한 여수 밤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돌산공원에서 바라보는 돌산대교의 야경이 멋지다. 지난 봄 벚꽃이 휘날리는 길에서 ‘벚꽃엔딩’을 들었다면, 이제 돌산대교에서 버스커버스커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여수 밤바다’를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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