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는 세상의 배꼽, 잉카의 황금기를 간직한 수도 쿠스코로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잉카문명과 친해지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잉카의 매력에 좀더 빠져보실 차례입니다. 쿠스코 근교에는 마추픽추 외에도 잉카와 프리 잉카 시대의 유물이 많습니다. 학창 시절 역사 수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저도 매료된 잉카 시대로 함께 떠나볼까요?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켄코의 돌산과 퓨마 모양의 바위.


쿠스코 시내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잉카 탐험에 나서기로 했다. 쿠스코 근교에는 마추픽추뿐 아니라 삭사이와만 푸카푸카라 켄코 탐보마차이 친체로 등 잉카와 프리 잉카의 유적이 많다.

볼거리가 워낙 많다 보니 관광객이 넘쳐난다. 쿠스코는 이 훌륭한 조건을 놓치지 않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관광 인프라를 갖췄다.

관광 안내 센터에서는 친절한 직원에게 다양하고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쿠스코 근교 유적지 9곳에 입장할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을 판매하는가 하면, 호스텔과 여행사에서는 기본적으로 가까운 유적  2~3곳을 하루에 둘러볼 수 있는 상품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잉카에 대해 약간 예습한 상태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무엇보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가이드의 외침을 피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호젓하게 유적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놀라운 잉카의 석조 기술 ‘삭사이와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삭사이와만의 돌.
쿠스코의 요새 삭사이와만은 잉카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삭사이와만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규모에 놀란다. 22번이나 구부러진 아름다운 돌벽이 360m 넘게 펼쳐진다.

스페인 점령 시 건물을 짓는다고 무단으로 채취한 탓에 하단 3층만 남았지만, 그래도 위용은 살아 있다. 가장 큰 돌은 높이 9m에 두께 3.6m로 무게는 300t에 달한다. 한 개만 놓여 있어도 거대한 크기에 입이 벌어지는데, 그 돌들이 가지런히 쌓인 장관을 상상해보라. 거대한 돌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옮겨왔으며, 어쩌면 그토록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단 말인가.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설까지 떠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잉카 시대의 쿠스코는 퓨마 모양 도시다.
삭사이와만은 퓨마의 머리에 해당한다.
삭사이와만은 잉카의 황금기를 만든 파차쿠텍 황제 때 짓기 시작해 후계자인 투팍 황제 때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1층의 돌이 2~3층 돌에 비해 유난히 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큰 돌로 된 1층은 잉카 이전의 부족이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가 100년에 불과한 잉카제국의 건축술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려면 잉카 이전 부족에게서 전수했다는 가설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잉카와 잉카 이전의 역사는 거의 가설일 뿐 정확히 밝혀진 것이 드물다. 삭사이와만 돌 벽의 조합을 잘 살펴보면 뱀 퓨마 등 잉카가 신성시한 동물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초보자의 눈으로 찾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삭사이와만에서는 쿠스코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쿠스코는 잉카인이 섬기는 신 가운데 하나인 퓨마 모양이다. 삭사이와만은 가장 중요한 퓨마의 머리에 해당했다고 한다.

 

미로 안에 펼쳐지는 ‘켄코’의 신비함
삭아이와만에 이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던 켄코에 찾아갔다. 켄코는 케추아어로 ‘미로’라는 뜻이다. 커다란 바위를 뚫어 만든 미로를 지나면 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재단이 나온다. 앞서 본 유적들과 달리 신비로움이 스며 있는 곳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돌산을 중심에 두고 왕좌와 신료들의 의자가 길게 둘러져 있다. 돌산 앞에 자연석으로 보이는 돌 하나가 있다. 제사를 드리는 동지 무렵 돌산에 바위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그 모양이 마치 퓨마 같다고 한다. 갸우뚱거리는 우리 일행에게 가이드는 그림자 사진까지 보여주며 해설의 격을 높이느라 애를 쓴다. 퓨마라기보다 개의 형상에 가까운 바위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된 것처럼 느껴지던 돌산 안의 미로.
다음 행선지는 돌산 안의 미로다. 잉카인이 신을 경배하러 가던 길이어서 신기하다.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서는 앨리스처럼 가이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돌산 안의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그중 지하로 향한 길 끝에는 왠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향해 목만 빼고 있는 여행객의 마음도 같은지 아무도 선뜻 발은 내밀려 하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다. 의식에 사용된 걸로 추정되는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이드에 따르면 인신공양에 쓰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단다. 지하 공간도 인신공양을 준비하는 장소였을 거라는 해설을 듣는 순간 나의 상상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호러물로 바뀐다. 한참을 헤매다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난 다시 땀에 젖은 등산복과 천근만근 배낭을 어깨에 진 외로운 여행자가 된다. 그리고 두 팔을 하늘로 한껏 펼쳐본다. 아~ 남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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