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줌마의 저력 세계에 보여줄 터”

 
아이디어와 상업성은 좀처럼 공존하기 힘든 존재다. 여기에 성공과 지속력까지 담보되기란 더 어렵다. 스팀청소기의 창시자(?)로 불리는 한경희(48) 대표가 끊임없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릎 꿇고 걸레질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박한 주부의 바람에서 출발한 사업.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본인 집은 물론 친정, 시댁 집까지 담보 잡히며 꼬박 3년간 제품개발에 매달렸다. 2001년 드디어 ‘한경희 스팀청소기’가 세상에 나왔지만, 기대와 달리 주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제품 리뉴얼에 뛰어든 한 대표. 당시 별명이 ‘걸어 다니는 민폐’라 회상할 정도로 괴로운 나날이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03년 새롭게 제품을 선보였고, 스팀청소기 하나로 연 매출 1천억 원대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

사업이 안정 모드에 들어서자 한 대표의 아이디어 뱅크는 무한 증식을 시작했다. 스탠드형 스팀다리미, 워터 살균기,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침구 살균 청소기, 마그네슘 프라이팬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아이디어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시장 반응도 괜찮았다. 

수익만을 바라본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주부의 마음을 알기에 작은 불편함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세상의 룰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자부한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목표에도 늘 성공한 데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최근 미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아직도 수많은 우연과 돌발 사고들이 만나 새로운 메커니즘을 생성하고 있었다.

 

2004년 사업 초기에 인터뷰한 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작지만 탄탄한 기업이라는 평을 받은 지 오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여전한 것 같다.

(쑥스러운 듯 웃으며) 정말 오랜만이다. 좋은 성적(?)으로 인터뷰할 수 있어 다행이다. 세상엔 없는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엄마들은 정말 멀티태스킹이다. 남들에겐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한 식사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목숨을 걸고 한 끼를 먹인다. 소중한 아이 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식자재부터 조리 도구까지 신경 써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때문에 아직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필요성을 느끼는 제품들이 많다. 나부터 주부 아닌가.

여성을 편하게 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스팀청소기도 무릎 꿇고 걸레질하는 게 싫어서 만든 제품이다.

사업을 할 때 이런 요구를 캐치하는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아이디어로는 역부족이다.회사 가족(직원)들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오후 4~5시를 ‘싱크 타임’으로 정했다. 그 시간만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라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면 그에 따른 보상(?)도 철저히 한다. 첫해 매출의 3%를 해당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준다. 다행히 직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발명왕이 사업을 하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아이디어와 상품화는 별개의 문제라는 소리다. 유통망 구축 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지금도 어렵다. 제품 개발도 만만치 않지만, 유통망 구축이 가장 힘들었다. 사업 초기 창고에 쌓인 제품을 보면 한숨이 푹푹 나왔다. 품질은 자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 사업이 성공하는 건 아니더라. 유통 단계가 적고 대량 판매가 가능한 홈쇼핑이 큰 도움이 됐다. 대신 매출을 높이기 위해 제조 마진을 최소화해 최저가 전략을 짤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주부들이 우리 회사의 진심을 알아주셨다. 한 시간에 1만 대 가까이 판매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이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만큼 부침도 많았을 텐데… 최근엔 스팀청소기 누전 문제로 인한 폭발 사고 등 논란도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안전조치 권고를 받은 ‘저수식 스팀청소기’ 50만 대를 자발적 안전 점검과 무상 수리를 하고 있다. 다행히 매출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고객에게 ‘무상 수리를 해줘서 고맙다’ ‘작은 회사가 대기업보다 낫다’ 등의 인사를 받은 적도 있다.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

 

아이디어가 강점인 중소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문제가 ‘카피 제품의 범람’이다. 맞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발 빠르게 대처하기도 힘들다. 그냥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품질이 좋은 제품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알려지게 마련이다. 결국 경쟁력 있고 품질 좋은 제품으로 승부수를 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스팀청소기 역시 초기에는 이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스테디셀러로 탄탄히 자리 잡았다. 

스팀청소기부터 프라이팬, 화장품까지 최근 사업 다각화에 주력한다는 느낌이 든다. 매출 구조를 다양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건 아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이라는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부들의 생활과 관련된 사항은 모두 우리 회사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의 삶이 편안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영역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지난해 4월 출시한 ‘한경희 마그네슘 팬’은 신소재를 도입한 프라이팬이다. 종전 프라이팬은 대부분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등을 사용해 오래 쓰다 보면 코팅이 벗겨져서 어쩐지 꺼림칙했다.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을 조리하는 제품 아닌가. 또 팬이 지나치게 무거워 늘 힘들었다. 이런 생활 속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신소재를 찾던 중 마그네슘이 눈에 들어왔다. ‘한경희 마그네슘 팬’은 포스코와 공동 개발한 제품이다. 단순히 매출을 높이기 위해 아무 아이템이나 사업화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최근 해외 시장 진출에도 노력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미국인가.

무모했나? 하하. 이왕이면 제일 큰 시장에서 붙어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현지 주부들의 수요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스팀청소기는 카펫 청소에 유용한 ‘살균트레이’를 개발해 기본 사항으로 넣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독일 캐나다 일본 러시아 핀란드 등에도 수출, 품질을 검증받았다. 앞으로 해외 사업에 더 주력할 예정이다. 1년에 반은 미국 중국 등 해외 지사에 나가 있다. 과정이 힘들겠지만 전 세계 최고의 브랜드가 될 만큼 품질은 자신 있다.

 

 

 

 

한경희 대표는
1986년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2년간 홍보 업무를 맡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은 뒤 미국의 호텔, 부동산 컨설팅 회사, 무역회사 등에서 근무했다.

1996년 결혼하고 이후 옛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교육행정사무관(5급)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돌연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스팀청소기 개발에 매진, 1천억 원대 매출 돌파에 성공하는 등 기업가로 변신에 성공한다. <포브스아시아> ‘아시아 파워 여성 기업인 50인’(2012), 월스트리트저널 ‘주목해야 하는 여성 기업인 50인’(2008) 등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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