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오징어 골목

 
동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댄다. 청마 유치환의 시에서처럼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가 저만치 보인다. 동경 130°, 북위 37°, 면적 72.9 km2, 동서 10km, 섬둘레 56.5km로 우리나라에서 여덟번째로 큰 섬, 울릉도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오징어가 주인공인 ‘오징어 왕국’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에 ‘울릉도 트위스트’가 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며 시작되는 노래는 가사가 재미있으면서도 역동적이라 신명이 난다.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간다는 구절이 재미있으면서도 오징어에 울고 웃는 울릉도에 마음이 간다. 

빨간 등대의 인사를 받으며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에 입항하면, 집어등을 단 오징어잡이 배와 방문객을 반기듯 환호하며 하늘을 선회하는 갈매기의 군무에 흥이 난다. 그러다 배를 갈라 뽀얀 속살을 드러낸 오징어에 일순 입이 벌어진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오징어를 한 순간에 보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다. 이곳은 유명한 도동항 오징어 골목이다. 유람선이 닿는 선착장 앞쪽부터 계단을 지나 상가가 늘어선 곳까지 한 자리도 빠짐없이 오징어가 널렸으니 이러한 장관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어릴 때 본 국군의 날 장병 퍼레이드보다 환상적이다. 배를 갈라 뽀얀 속살 드러낸 오징어는 온몸을 햇볕에 맡기고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선탠을 즐긴다. 그 사이를 오가며 검게 그을린 얼굴로 하루 종일 오징어를 뒤집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손길이 바쁘다.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하는 6월부터 가을까지 도동항에는 이런 진풍경이 연일 펼쳐지니 이곳을 감히 ‘오징어 왕국’이라 부르고 싶다. 눈앞으로 펼쳐진 수천수만 마리 오징어는 오징어 나라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고, 울릉도 주민들은 시중드는 것이라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알록달록 오징어순대.
두툼하고 쫀득쫀득한 ‘피데기’가 일품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재미있는 오징어 구경에 넋을 잃다, 아예 계단참에 털퍼덕 주저앉아 오징어 왕국을 만끽하기로 한다. 건너편에서 뻘건 함지박 속 싱싱하게 살아 있는 오징어를 낚아채 즉석에서 채 썰어주는 아주머니가 눈길을 끈다. 짭조름한 갯바람에는 오징어 말리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조금이라도 틈이있으면 오징어를 거니 어느 집의 손바닥만 한 마당 빨랫줄에는 빨래보다 오징어가 많다. 선착장을 바라보고 일렬로 늘어선 상가에는 마른 오징어가 산처럼 쌓여 있으니 오징어 사러 온 손님 맞으랴, 육지로 보낼 택배주문을 받고 포장하랴 주인장은 바쁘기 그지없다.

도동항 안쪽 식당에선 싱싱하게 살아 있는 오징어를 즉석에서 채 썰어주는 물회가 시원하다. 보글보글 오징어 내장탕이 하염없이 끓고, 각종 채소와 오징어 다리가 들어간 오징어순대가 상에 오른다. 짧은 시간, 오징어의 모든 맛이 일순간에 밀려든다.

옆에 앉은 오징어 장사 아주머니가 슬며시 다리 하나를 건넨다. 곳곳에 입담 좋은 오징어 장사 아주머니가 포진했다가 서비스 겸 호객 겸 오징어를 구워대니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방금 불에 구운 오징어는 쫀득쫀득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씹기에 적당히 좋은 식감을 준다. 이것이 바로 울릉도 피데기(반건조 오징어)다. 바짝 말리는 마른오징어와 달리 12시간 정도만 말리면 수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꼬들꼬들하고 씹을 것이 있는 울릉도 피데기는 정말 맛이 좋으니 교통편이 좋지 않던 예전에는 울릉도 사람들만 맛보던 ‘오징어의 참맛’이다.

 

오징어잡이 배.
낭만과 생존 사이, 오징어 골목
어디서 왔는지, 가족은 어찌 되는지, 나이는 얼마인지 ‘한국식 호구조사’를 당하며 앞쪽으로 펼쳐진 오징어들이 멋지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저것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아느냐는 얘기다. 집어등을 잔뜩 단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밤새 오징어를 잡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그것을 기다리는 아낙네는 또 얼마나 고독한지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다.

오징어가 어판장에 도착하면 수협 직원들은 종을 치고 돌아다니고 경매가 벌어진다. 입찰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징어 아지매들이 달라붙어 오징어의 배를 따 뱃속에서 꺼낸 내장이 산을 이룰 정도라 하루 종일 작업을 하고 나면 종아리 허리 팔다리가 찢어질 듯 아프다고 한다. 사이사이 대나무 꼬챙이가 등장해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삼각형 부위에 대꼬챙이를 끼워 스무 마리씩 엮어 한 축을 만들면 바닷물에 씻은 건조대에 넌다. 사실 이 부분은 머리가 아니고 지느러미다. 건조대에 널었다고 해서 일이 끝나지 않는다. 햇살과 바람의 상태를 고려하며 젖혀진 귀를 뒤집는다. 뭉친 다리는 쭉쭉 뻗은 미스코리아의 다리처럼 보기 좋게 만들고, ‘탱’이라 부르는 대나무로 심을 박아 맵시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오징어 덕장에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항시 달라붙어 있다. 속살 뽀얀 오징어가 저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치 뒤에서 바라보면 낭만이지만, 한 걸음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치열한 생존이다. “그래도 오징어야 많이 잡히는 것이 좋은 것이지”하며 후렴구를 붙이니 오징어가 흉년이면 보릿고개가 되고 오징어가 풍년이면 생기가 도는 곳이 이곳 울릉도요, 오징어란 놈은 울릉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오징어는 까마귀 훔치는 도둑이라는 뜻
오징어의 원래 이름은 ‘오적어’였다. 옛날에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까마귀가 수면 위를 날다가 오징어 한 마리를 낚아채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부는 오징어 다리가 까마귀를 휘감아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았다. 하여 ‘까마귀 훔치는 도둑’이란 뜻으로 오적어(烏賊魚)라 했으니, 오징어는 본의 아니게 흉악한 놈이 됐다. 그 후 발음이 쉬운 오징어가 되었으니 까마귀를 훔치는 오징어 나라인 도동항은 사람의 마음도 훔친다.

이제 오적어가  사는 바다를 바라보며 도동항에서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자. 저동항에 이르는 좌안 산책로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우안 산책로가 있다. 철썩이는 파도를 발아래 두고 2〜5m 높이의 울릉도 해안 절벽 길을 걷는 기분은 가히 일품이다.

또 산책길에 만나는 간이 횟집은 즐거움의 연속이다. 바닷가 옆 테이블에 앉으면 울릉도 청정 바다에서 방금 건져낸 물기 뚝뚝 듣는 미역에 오도독오도독 붉은 해삼(홍삼)을 얹고, 쥐치 회와 샛노란 성게 알을 얹어 쌈을 싸 먹는다.

울릉도의 바다가 한입 가득 차며 동해가 입속에서 노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울릉도 해안가에서 채취한 주먹만 한 자연산 홍합에 해초를 넣고 끓인 홍합탕은 온몸을 정화하듯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홍합은 뭉근히 끓인 미역국도 맛있고, 반질반질 홍합밥도 맛좋다. 홍합밥과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따개비밥이 있다. 따개비는 바닷가 갯바위나 암초에 붙어 사는 1cm 크기의 회갈색 부착생물로 15분 정도 삶으면 알맹이와 껍데기가 분리된다.

알맹이만 골라 밥을 지으면 연녹색 따개비밥이 된다. 양념장과 김 가루 듬뿍 얹어 비벼 먹는 따개비비빔밥이 별미고, 따개비 알맹이를 잔뜩 넣고 끓인 따개비칼국수 역시 울릉도의 별미니 오징어만 생각하고 왔다가 종합 선물 세트를 품에 안은 듯 입이 벌어진다. 해안 산책로에는 바다와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따뜻한 햇살에 살랑살랑 갯바람이  부니 마음을 빼앗긴다. 도동항에서 출발하여 울릉도의 제1경이라는 코끼리바위와 현포, 천부를 거쳐 선녀가 목욕하다 늦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다는 전설의 삼선암 등을 돌아보면 울릉도에 홀딱 반해 돌아가기 싫어진다. 

하지만 어쩌랴.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 도동항의 오징어 퍼레이드를 뒤로하고 떠나니 울릉도가 점점 멀어진다.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하는 청마 유치환의 시(1948)가 또다시 읊조려지고 ‘울릉도 트위스트’가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려진다. 지겹도록 맡은 도동항의 오징어 냄새와 ‘움직이는 울릉도 백과사전’인 운전기사의 재담이 귓가에 들리고, 구수한 온정이 느껴지는 오징어 장사 아주머니가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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