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푸른 하늘을 양산 삼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로 향했다. 이곳은 나들이족에겐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공간이다. 아이들은 바람개비 언덕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다 거대한 조형물 감상에 빠진 엄마와 만날 수 있다. 동행한 할아버지는 임진각 전망대에서 잠시 옛날 추억에 잠길 수도 있겠다. 주차료 2천 원이면 세대 불문,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하다.

취재·사진 박지현 리포터 true100@empal.com

 

 

파주에 거대한 쉼터가 형성된 이유는 2005년 세계평화축전에서 비롯된다. 당시 미스코리아들의 영원한 바람인 ‘세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9만9천m2 땅에 주제별 쉼터를 조성했다. 그러니까 중앙 주차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원을 그리듯 바람의 언덕, 음악의 언덕, 임진각, 기관차 전시장 등을 배치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평화누리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을 만큼 그 자체가 거대한 설치 작품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낭만적인 이름이 인상적인 ‘바람의 언덕’이다.

 

김언경 작가의 설치미술인‘바람개비’.
수천 바람개비의 군무
바람의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는 매우 독특한 연못을 지나야  한다. 굳이 ‘독특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연못에 아주 이색적인 수도꼭지 조형물이 서 있어서다. 마치 <잭과 콩나무>에 등장하는 거인이나 사용할 듯 커다란 수도꼭지는 송운창 작가의 설치 작품 ‘Water-Report’.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듯, 분단된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기를 희망하면서 제작했다. 그래서인지 수도꼭지는 빨간색과 초록색, 두 가지다. 수도꼭지 조형물 뒤에는 평
송운창 작가의 설치 작품‘Water-Report’.
화누리의 휴식처인 수상 카페 ‘안녕’(031-953-4855)이 있다. 녹슨 철재로 마감된 카페는 평화로운 연못과 탁 트인 하늘을 배경 삼아 커피 향기를 내뿜는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서 데이트족에게 유독 인기가 많다. 우리가 이곳을 지날 때는 오전 10시 남짓이어서인지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카페 건물을 통과하자 드디어 바람의 언덕에 닿았다. 이름이 보증하듯, 언덕에 오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바람이 쉼 없이 분다. 특히 아이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람개비 수천 개가 있어서다. 김언경 작가의 설치미술인 ‘바람개비’는 설치 방향이 제각각 달라서 어디에서 바람이 불든 항상 춤을 추듯 돌아간다. 바람에게 생명이라도 부여받은 것처럼.

바람개비는 아이들을 춤추게 한다. 바람개비가 돌아가자 세 살배기 아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돌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람개비는 아이에게 군무를 뽐내는 가무단처럼 느껴졌을 게다. 한동안 바람개비 사이를 뛰어다니던 우리는 저 멀리, 언덕 너머에 서 있는 거대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모아이 석상을 닮은 ‘큰 사람’
호기심에 단숨에 잔디 언덕을 내달렸다. 거대한 조형물은 언뜻 이스터섬에 남아 있는 모아이 석상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 주인공은 최평곤 작가의 ‘통일 부르기’라는 조형물이다. 몸체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거대해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큰 사람’으로 불린다. 모양새도 무척 독특하다. 네 사람 몸체가 간격을 두고 조금씩 땅에서 솟아나는 듯하다. 처음에는 머리만 나왔다가, 다음에는 허리까지 나왔다가, 마지막에는 몸 천체가 땅에서 솟아나는 형상이다.

“신기하네, 이거 대나무로 만들었어!” 호기심으로 작품을 뜯어보던 엄마가 내뱉었다. 그랬다. 작품은 우리의 예상을 깨고 대나무로 마감되었다(물론 뼈대는 철근으로 잡았다). 대나무를 얼기설기 연결해서 사람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를 완성한 셈이다. 재질도, 크기도, 모양도 신기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우리 주변을 맴돌다 갑자기 작품 안으로 사라졌다. 얼기설기 연결된 작품 안에 풀과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자신만의 은신처를 완성해놓은 거다. 드넓은 들판에 서 있는 거대한 조형물, 그 사이를 오가는 참새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모처럼 유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아이들에게 아주 근사한 놀이터다. 바람의 언덕에서 큰 사람 조형물을 지나 야외 음악당까지, 초록빛 잔디가 촘촘해서 넘어져도 웬만해선 생채기가 나지 않는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조형물 주변을 신나게 뛰면 그만이다.

 

전망대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뒷담화?
야외 음악당을 지나 찾은 곳은 임진각이다. 1972년 실향민을 위해 만든 3층 건물에는 전망대를 비롯해 기념품점 편의점 한식당 카페 등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의미를 생각하면 무척 경건한 곳이지만, 현실은 비극적인 역사와 별 상관이 없는 듯했다. 임진각의 첫인상은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의 이색적인 휴식 장면이다. 잠깐 임진각에 중국인 여행객이 넘쳐나는 속내를 살펴보면 이렇다. 아직 한국 여행 상품은 중국에서 저가에 판매된다. 당연히 여행 일정에는 평화누리처럼 입장료가 공짜인 관광지가 대부분이다.

우리 가족이 임진각을 찾았을 때도 중국인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어떤 중국인들은 누워서 낮잠을 자기도 했고, 몇몇 중국인들은 아예 자리를 깔고 카드놀이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3층 전망대에 올라가자 10여 명이 100분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토론 주제는 여행상품에 대한 뒷담화?! 서로 다른 여행사를 통해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인들이 전망대에서 통성명을 하고, 여행 상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당신네는 한국 여행 얼마에 왔어? 정말? 우리보다 싼걸!” “코스가 재미있어?” “별로!” 등의 이야기였다.

중국인 특유의 시끄러운 수다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우리는 시야가 탁 트인 전망대에서 주변을 감상했다. 눈부신 초록 물결 사이로 가깝게는 자유의 다리가, 멀게는 북한이 내다보였다. 임진각 전망대에서 분단의 아픔쯤은 뜨거운 태양, 아니 시끄러운 수다 소리에 증발한 듯했다.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심정이었다.

 

증기기관차와 보리밥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들으면서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증기기관차 전시장으로 향했다. 바람개비와 큰 사람이 환상적인 조형물이라면, 기관차는 분단의 슬픔을 얘기하는 현실적인 전시물이다. 한때시속 80km를 자랑하던 증기기관차는 한국전쟁에서 피폭된 후 반세기가 넘게 비무장지대에서 방치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몸체에 1천여 개 총탄 자국을 간직한 채 역사의 증인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켜켜이 쌓인 세월 탓일까, 기관차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달랐다. 우선 세 살배기 아들은 기관차를 보더니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부터 지었다. 당연하다. 아이에게 기차란 무릇 커다란 눈동자를 자랑하는 토마스가 전부 아닌가. 반면 손자의 손을 잡은 아빠는 어느새 실향민 모드에 돌입했다(누군가는 이북에 부모님을 두고 왔다고 오해했을 게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시기, 아빠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지금도 아빠에겐 당시 전쟁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6남매 중 둘째인 아빠는 어른들의 바쁜 발걸음을 쫓으며 정신없이 서울에서 평택으로 피란살이를 떠났다.

그때 정신없이 올라탄 것이 바로 기차다. 불행히도 서울에서 유리 공장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는 평택에 정착하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사이 아빠는 여러 해의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다. 잔인한 추억은 낡은 기억마저 생생하게 만드는 법이다. 아빠는 증기기관차를 보면서 아홉 살 어린이가 된 듯했다. 지금도 쌀밥을 편애하는 아빠는 기관차 전시장을 떠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도 보리밥을 싫어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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