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카 타고 떠나는 만화 여행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 안주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안전한 미래가 보장된다면 성취감 보람 등은 뒷전으로 밀리기 쉬운 게 현실. 그러나 붕붕아트 이은하 대표는 달랐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만화 스토리 작가로 데뷔한 것. 2006년 온라인 매체에 연재하면서 인기를 끈 ‘꽃분엄마의 서울살이’속 꽃분 엄마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담았다.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ver.com 사진 김영선

 

붕붕아트 이은하(47) 대표와 두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면서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 정말 자체 발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도 한몫했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내뿜는 긍정 바이러스, 타고난 씩씩함과 낙천성 때문이리라.

1980년대 후반 운동권 남편을 만나 전국 곳곳을 떠돌며 생활하던 그녀는 이대로 가다간 굶겠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방문판매를 시작한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망설이던 그녀가 세일즈 여왕이 되고, 다시 만화 스토리 작가로 변신한 삶은 흥미진진 그 자체다.

 

마흔 넘어 만화 스토리 작가로 데뷔하다
이은하 대표의 동생은 만화가다. 이 대표가 스토리 작가로 데뷔한 것도 동생 덕분. ‘말빨’이 되는 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던 동생이 “언니 이야기 참 재밌어. 우리끼리 수다만 떨기엔 아깝다. 언니가 스토리를 쓰면 내가 만화로 그려볼게”라고 제안한 것이 이 대표가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된 계기다.

“주제를 고민했죠. 방송국에서 음악 프로그램 구성작가를 한 적이 있어요. 만화 스토리는 처음이니 잘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자 했죠. 그래서 나온 게 제 이야기예요. 무작정 상경해 너무나 가난했던 삶, 당장 먹을 쌀을 챙겨야 하는 생계와 전쟁, 방문판매를 하면서 받은 숱한 문전박대 등 제가 겪은 일들을 풀어내기로 했지요. 가식적이지 않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호흡이 긴 스토리보다 기승전결을 갖춰 에피소드 형식으로 써 내려갔다. 동생에게 몇 번 퇴짜를 맞기도 했지만, 삶의 반전이 느껴지고 재미 요소가 가득한 만화로 이야기가 재탄생되는 걸 보면서 이 대표는 신이 났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꽃분엄마의 서울살이’. 다행히 만화 스토리 작가로 첫 도전한 작품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2006년 하반기 ‘오늘의 우리 만화’에 선정돼 상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구나.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본격적인 만화 사업을 시작했다.

“생계 수단으로 시원찮은 만화가의 실상을 잘 알지만 문제 되지 않았어요. 생계를 위해 돈도 벌면서 보람된 일을 고민하니 아이들의 감성을 일깨우는 만화만 한 게 없더라고요. 아이들과 가장 친숙한 게 만화이기도 하고요. 경제력이 없는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 아이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당시에는 무척 힘든 일이었을 텐데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하면서 힘을 얻은 것 같아요. 힘든 현실이 예술로 승화된다고 할까요? 만화가들이 돈벌이가 안 되는 만화를 왜 그리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러던 중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2011 지식서비스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 사업’에 응모했다. 톡톡 튀는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이 대표의 기획서는 54대 1의 경쟁을 뚫고, 어린이 만화 부문에 최종 선정됐다.

 

1올해 다시 구입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붕붕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붕붕카’ 타고 소외 계층 아이들과 만화 수업을
이동 과학 교실 버스는 들어봤어도 이동 만화 교실 버스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커다란 탑차에 커다란 고양이가 그려져 보고만 있어도 호기심이 생기는 붕붕카. <꼬마자동차 붕붕> 만화에서 따온 이름인가 했는데, 어디든지 떠나는 자동차 소리 ‘붕~’을 딴 거란다.

“흔히 만화 하면 어두운 골방에 앉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잖아요. 양지가 아닌 음지라 할까요?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자 했어요. 세상에 만화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없잖아요. 만화만큼 아이들과 소통하기 좋은 매개체도 없고요. 아이들에게 만화로 다가가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만화가들이 동참해줬고요.”

만화 사업에는 이 대표 동생의 꿈이 반영됐다. 붕붕카에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작업하고 싶은 곳에 멈춰 작업하고, 그곳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던 동생의 꿈을 이뤄주고픈 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동생이 꿈을 이야기하면 제가 ‘돈은?’ 하고 되물었어요. 그러면 동생은 ‘전세금 빼지 뭐. 차에서 자고’ 했지요. 그땐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는데, 만화 스토리 작업을 하면서 동생에게 물들었는지 괜찮겠다 싶은 거예요. 꿈을 찾아 떠나는 무모한 자매가 됐죠.”

실제로 작년에 동생의 작업실을 내놓아 조달한 자금으로 1t 트럭을 개조해 붕붕카를 마련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두 번인가 운행해보고 작년 여름 집중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 때 붕붕카가 떠내려갔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해요.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죠. 그렇다고 이동 만화 교실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뜻을 같이하는 만화가들과 예정대로 아이들을 찾아다니고 만화 교실을 열었어요. 붕붕카 대신 주민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만화 수업을 했죠. 만화 수업이 생소한 아이들은 처음엔 멀뚱멀뚱 쳐다보지만, 만화라는 특유의 장르가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해요.”

 

아이를 치유하고 표현하는 최고의 도구, 만화

2온라인 매체에 연재된 ‘꽃분엄마의 서울살이’ 일부.
이 대표가 시골에 살 때 가장 안타까웠던 이가 바로 아이들이다. 시골은 돈도 없지만, 문화도 거의 절멸된 곳이다. 서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 예술을 접하고 경험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 즉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만화로 소통하고 싶었다.

“어린이와 만화 작가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마음 열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해요. 작가들이 미리 준비한 네 컷 만화 말풍선에 아이들이 표현하는 거죠. 그리고 만화가들은 무차별적인 칭찬으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폭풍 갈채를 받은 아이들은 수업에 몰입하면서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서서히 뿜어냅니다.”

아이들 속에 감춰진 문화적 감수성을 찾아내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는 이 대표는 6월 말 붕붕카를 다시 구입했다. 인터뷰할 당시는 래핑 작업이 안 된 상태라 완성된 붕붕카를 만날 수 없었지만, 지금쯤이면 붕붕카를 끌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리라.

“와~” 감탄과 함께 붕붕카 주변으로 몰려들 아이들을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는 이 대표. 일단 붕붕카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내니 일반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단다.

아이들의 만화를 보면 솔직함이 묻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리는 인물의 태도 눈빛 표정 등을 통해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년 12월에는 만화 창작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글과 그림에 만화가의 수고가 더해져 <꿈을꿈을 만화도서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매사 걱정하고 모든 결론을 자신이 불운하기 때문이라 이야기하는 ‘파란 공, 빨간 공’,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마술 물병’, 마트에서 원하는 걸 모두 살 수 있는 ‘나만의 마트’ 등 아이들의 다양한 상상력이 들어 있는 만화를 읽다 보면 때론 유쾌한 웃음을, 때론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이 대표는 앞으로 만화 기획과 출판, 전시 기획, 홍보 만화, 어린이 만화 축제 등 다양한 만화 관련 콘텐츠를 기획·개발할 생각이다.

“머리가 복잡할 때 만화책을 읽으면 어느새 걱정이 사라져요. 만화 속에는 차별도, 억울함도, 감당할 수 없는 세상도 없지요. 물론 만화를 통해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마음속 작은 떨림이 큰 감동을 줄 거예요. 나이가 어릴수록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마음을 표현해요. 그런 과정을 누군가 알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 아이에게는 큰 힘이 될 거예요. 그 일을 붕붕아트가 하려고요.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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