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올챙이국수 골목

 
하늘이 맑고 푸르다. 그 끝을 쫓아 정선 오일장으로 향한다. 장터 골목에 옹기종기 자리한 좌판에서 올챙이국수 한 사발을 후루룩 들이켠다. 여기는 올챙이국수 골목이다. 그릇 속에서 춤추는 올챙이들을 꿰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한 자락을 엮어본다. 국수 한 그릇에 ‘정선’이 오롯이 담겨 있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정선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하다. 1천 m가 넘는 태백산맥의 산자락들이 둥그렇게 어깨동무하고 정선 땅을 감싸니, 들어가는 길목은 마치 성문을 통과하며 검문을 받듯 조심스럽고 은밀하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비행기재를 택한다. 그나마 지세가 수월한 성마령(星摩嶺) 쪽 비행기재는 긴 세월 동안 정선 사람들이 오가던 고개다. 하도 높아 이 고개를 넘노라면 비행기를 타고 가는 듯하고,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아슬아슬 어질어질하여 비행기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니 발밑으로 깔리는 풍광에 정말로 어지럼증이 난다.

고개를 넘으니 반가운 이정표가 있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입니다’,  이제 정선 땅으로 들어선 것이다. 앞산과 뒷산을 이어 빨랫줄을 걸었다는 강원도 정선, 그 품에 안겨 펄떡이는 정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가슴속까지 울림을 남기는 정선아리랑의 구슬픈 가락과 아우라지 물줄기에 묻힌 청춘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허기를 채워주던 척박한 먹거리들을 만나며 골 깊은 정선 땅에 마음을 열어보자.  

 

애타는 연인의 이야기가 흐르는 ‘아우라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우라지 강가다. 정선 사람들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아우라지에는 뜨끈한 삶과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살처럼 끝없이 구수한 이야기가 풀려나오는 아우라지 뱃사공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옛날 여량리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강 건너 유천리에는 믿음직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물살이 빠르고 힘차 남성적인 송천과 물살이 느리고 젖빛이라 여성적인 골지천이 어우러지는 아우라지는 나룻배를 타고 건너 다녔다. 두 강이 만나 ‘아침 햇빛’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조양강(朝陽江)이 되었으니 그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싸리골로 동박 꽃 구경을 가기로 약속한 어느 날, 갑작스런 홍수로 배가 뜨지 못하니 애타는 마음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나루터엔 소리 잘하고 장구도 잘 치는 지장구 아저씨가 있었으니 젊은 청춘 남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노랫가락에 담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애달픈 둘의 이야기는 구전돼 정선아리랑의 ‘애정편’이 되었고, 나아가 정선아라리 1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동박에 눈길이 간다. ‘동백’이 아니라 ‘동박’이다. 양지쪽에 쌓인 눈이 봄볕에 녹기 시작하면 산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피어나는 꽃이 동박꽃이다.

모양은 산수유 꽃과 흡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게 생겼다. 정식 이름은 ‘생강나무’고, 열매를 동박이라고 부른다. 이 동박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하는데, 향이 아주 좋았다.

 

고단하고 슬픈 음식 ‘올챙이국수’
빨갛고 선정적인 동백꽃보다 은은하고 여린 동박 꽃 이야기를 품에 안고 정선 오일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 좌판에서 후루룩 국수 한 사발을 주문한다. 그 국수 한 사발이 나오기까지 질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국수 사발 속에 여량 아가씨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해가 뜨자마자 넘어간다는 정선은 강원도 산골 중에서도 두메산골로, 들판이라 부를 만한 평지가 없이 손바닥만 한 땅뙈기가 있을 뿐이다. 눈만 뜨면 산비탈에 매달려 옥수수 심고 감자 키워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으니, 여량리 처녀 또한 식구는 많고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다. 날마다 올챙이국수를 해 먹었으니 올챙이국수 만드는 것은 바쁜 부모와 많은 동생들을 둔 여량리 처녀의 몫이었다.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에 불린 옥수수를 맷돌에 넣고 곱게 간 다음 체에 걸러 가마솥에 붓고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주면서 뭉근히 끓였다. 그러면 묵을 쑤듯 걸쭉해지는데, 박을 쪼개 만든 바가지에 구멍을 숭숭 뚫고 이것을 부은 뒤 숟가락으로 비비면 구멍을 지나 걸쭉한 덩어리가 뚝뚝 떨어진다.

힘이 많이 들어간 첫 부분은 굵고 통통하지만 끝부분은 가늘고 힘없는 모양으로 떨어지니 마치 올챙이 형상이다. 양념간장을 얹어 한 그릇 후루룩 먹으면 씹을 것도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며 올챙이마냥 금세 배가 불뚝해진다.

올챙이국수는 옥수수 두어 통이면 온 식구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구황 식품이었다. 하지만 맷돌질을 하고 가마솥에 끓이고 바가지에 비비는 일련의 작업들은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힘든 노동이니, 올챙이국수 한 그릇에 담긴 삶의 무게는 올챙이국수의 맛만큼 밍밍하고 매끄럽진 않았다. 척박하고 고단한 맛이며, 먹을 땐 배부르지만 돌아서면 배고픈 음식이었다.

여량리 처녀의 연인, 유천리 총각은 어찌 지냈을까? 유천리 총각은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무를 하고, 약초와 나물을 뜯었다. 곰취 참나물 산마늘 어수리 두릅을 따고 엄나무 순을 뜯었다. 이중 곤드레나물은 고산에서 자라는 야생 나물이다. 봄이 무르익는 5월쯤에 딴 곤드레나물은 쌈 싸 먹고, 무쳐 먹고, 말려서 저장했다가 겨울이면 밥을 해 먹었다.

물에 불린 곤드레나물을 얹어 지은 밥에 양념간장을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반찬 없어도 한 그릇 뚝딱이며, 하루 종일이 든든하다. 지금이야 영양이 풍부하며 당뇨와 고혈압, 혈액순환을 개선해 성인병에 좋은 참살이 식품이라고 인기지만, 그때는 주린 배를 채우고 밥 양을 늘리기 위해 넣은 눈물겨운 나물일 뿐이었다. 이리저리 얽힌 모습 때문에 곤드레란 이름을 얻었지만, 지금은 그 맛에 취한다 하여 곤드레만드레의 앞부분을 언급하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산세만큼이나 척박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그나저나 이들의 사랑은 어찌 되었을까? 점심으로 올챙이국수 한 사발을 뚝딱 해치웠는데, 시장 구경하고 나니 다시 배고파 곤드레밥을 사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땅이 정선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들 뿐,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꽃같이 예쁜 여량리 처녀를 색시로 맞고 싶던 유천리 총각은 떼꾼(뗏목을 운반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둘이 만나 시간을 보내던 아우라지는 강을 건너는 나루지만, 뗏목의 출발 지점이기도 했다. 정선 땅에 질 좋은 나무가 많으니 대원군 또한 경복궁 중건 시 필요한 목재를 육로보다 빠른 남한강 물길을 이용해 조달했다. 뗏목을 타고 1천 리 남한강 물길을 내려가면 한양 광나루나 마포나루에 도착했다.

한양에 도착하면 뗏목을 팔아 한밑천 챙길 수 있었으니, 이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떼꾼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물살이 험하기로 유명한 동강의 동서여울이나 황새여울 등에서 뗏목이 뒤집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으니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떼꾼이 머물던 주막에서는 아라리가 울려 퍼졌고, 적막감을 달래고 무사 운행을 빌며 떼꾼들은 또다시 아라리를 불러댔다. 유천리 총각도 그렇게 떠났지만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우라지 강가에는 유천리 총각을 기다리는 여량리 처녀가 아직까지 서 있고, 여송정(餘松亭)에는 그들의 애타는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햇살 가득한 여송정 난간에 걸터앉으니 바람결에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돌아오는 길 반점재에 올라 굽어보니 유천리 총각이 뗏목을 타고 굽이돌았을 문곡과 송오리 사이의 월천 물길이 꾸불텅 보이고, 병방치에 오르니 그 물줄기는 더욱 심하게 구부러져 아라리 가락처럼 휘어졌다.

그렇게 정선아리랑은 유천리 총각이 힘겹게 따오던 곤드레나물처럼 칭칭 사연이 엉켜 있으며, 여량리 처녀가 만들던 올챙이국수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비행기재 고갯길처럼 어질어질 애잔한 가락이다.

그곳 정선에서 또 다른 나는 아직도 올챙이국수를 먹고 있다. 그러다 가만히 눈을 감고 혀를 굴려 입안에서 돌아다니는 알갱이들을 음미한다. 그 알갱이 한 알 한 알이 제각기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정선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올챙이국수와 나의 교감은 한없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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