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최대 화두가 됐다. 작년만 해도 이런 말을 하면 빨갱이란 소리를 들었다. 지난 4월 총선 때 여당은 경제민주화 구호를 선점하며 재미를 톡톡히 보기도 했다. 대선을 앞둔 지금은 경제민주화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시대정신이 됐다.
 
우리사회는 1962년부터 1987년까지 25년간 군부독재 시기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민주화의 감격스런 첫발을 내딛었다. 1987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25년간 정치민주화는 진행됐지만, 경제 권력을 대표하는 재벌은 경제를 넘어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친 재벌정책으로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이명박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만든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이명박정부 
 
지난해 10대그룹의 총매출은 946조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237조원의 76.5%(2002년 53.4%, 2008년 63.8%)에 이른다. 올 상반기 10대그룹의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의 70%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특히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전체 상장사의 50%를 돌파했다. 
 
경제력 집중의 심화로 인한 극단적인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주요지표다. 이제 우리사회는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분배구조의 개혁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
 
삼성과 현대차그룹과 같은 재벌이 우리나라의 경제적 운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과거 삼성은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해 국민경제에 큰 피해를 입혔다. 채권단에 공적자금으로 2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다. ‘삼성이 하면 무엇이든지 다 된다’던 삼성신화는 무너졌다. 
 
현대차는 노사문제와 기술연구투자에 더 집중해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자동차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현대건설 인수 등에 힘을 분산시켰다. 세계 유수의 어느 자동차회사가 대형 건설사를 갖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인이 정치적 선택과 결단을 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거론하는 경제민주화 방안은 구체성이 떨어져 실현가능할 것처럼 보이질 않는다. 권력을 쫓는 부나방들의 구호처럼 들린다. 경제민주화가 대선국면의 ‘쇼’가 아니라면 정치권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 국민들의 삶과 연관된 하도급,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하우스푸어, 반값등록금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 해결책을 내놔야 경제민주화에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개혁 법안은 반드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 지난 6월말 발의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안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해 사외이사추천권 등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치권이 꼼수를 부려 이 법안을 ‘자기식구 자리 만들어주기’로 악용한다면 국민의 저항은 물론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관치경제’란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고위관료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 성공할 수 없어
 
재벌의 지배구조 변화는 한국사회 기득권의 구조변화 작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청와대는 5년, 국회는 4년, 하지만 자기들은 30년짜리 권력’이라는 고위관료들을 개혁하지 않고서 경제민주화는 성공할 수 없다. 개혁을 외치던 노무현 정부는 물론 집권 초기 전봇대를 뽑을 때 관료집단을 부패·무능하다며 첫번째 개혁 대상으로 여겼던 이명박 정부조차 관료집단에게 장악 당했다. 경제민주화의 길은 멀고 험하다. 정치인들의 정의로운 결단을 또다시 촉구한다. 
 
내일신문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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