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출장 간 남편이 아들과 함께 보겠다며 DVD를 사왔다. 영화 제목은 <휴고>. 커다란 시계탑과 달리는 기차 이미지를 보는 순간, <해리 포터> 시리즈의 판타지 영상이 떠올랐다. ‘에이, 난 현실감 떨어지는 작품은 별로인데.’ 이런 선입관 때문에 한동안 DVD 감상을 미룬 게 사실이다. 감독과 배우, 스토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홀대했음을 고백한다. ‘2012년 아카데미 5개 부분 수상’이라는 이력을 알아보지 못한 무지함.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그를 사랑하는 영화 팬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화재 사고로 부모를 잃은 주인공 휴고. 기차역 시계탑에 숨어 사는 그에게는 풀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다. 아버지가 유물로 남긴 로봇 인형을 작동해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 이야기는 휴고가 인형 부품을 훔쳤다는 이유로 장난감 가게 주인 조르주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수첩을 빼앗기는 데서 출발하는데, 할아버지의 손녀 이자벨이 파트너로 등장해 위기 때마다 그를 돕는다. “모험을 좋아해?” “위험하지 않으면 모험이 아니에요.” 주인공들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비밀의 실마리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취향 따라 별점이 달라지는 것이 영화평. <휴고>는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작품이다.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지루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부모 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잡아 강제로 고아원에 보내는 역무원을 빼면 악역이나 갈등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면 ‘애들이 보기엔 난해한 내용’이라는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자녀와 함께 이 DVD를 볼 땐 한 가지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주목할 인물은 조르주 할아버지다. 그는 마술사와 영화감독으로 활약한 조르주 멜리에스라는 실존 인물. <휴고>는 1900년대 초 <달나라 여행> <햄릿> 등을 만들면서 영화계의 터를 다진 그에게 바치는 헌정 작품이나 다름없다. “If you lose your purpose, it’s like you’re broken(목적을 잃어버리고 살면, 그건 고장 난 것과 같다).” 휴고가 이자벨에게 건넨 한 마디는 초기 영화사에 한 획을 긋고도 쓸쓸한 말년을 보낸 조르주 멜리에스를 향한 따뜻한 위로의 말이다.  
 
100년을 거슬러 올라 영화사를 돌아보면서 거장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은 작품. 아들은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궁금해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다. 이런! 예상 밖 대답이 돌아온다. “엄마, 로봇 인형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나도 저런 로봇 조립해보고 싶다.” 아이에게 감상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휴고>는 온 가족이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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