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주부들은 이런저런 걱정에 빠진다. 음식 준비는? 차례는? 선물은? 
해마다 반복되는 고민이다. 그러나 결론은 항상 비슷하다. 음식도 선물도 모두 거기서 거기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또다시 다가오는 추석 명절, 습관처럼 ‘굴비’를 떠올린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한국인의 선물 목록이자 명절 선물 후보 중 하나인 ‘굴비’는 명절 때마다 생각나는 아이템이다. 굴비는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렸다. 
 
특히 영광굴비가 유명하다.  보통은 소금물에 조기를 담갔다 말리지만, 영광굴비는 ‘섶간’이라 하여 1년 넘게 보관해서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잰다. 
 
이번 기회에 굴비 제조 과정을 구경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굴비도 구입해보는 건 어떨까. 굴비 정식도 한 상 받아볼 수 있는 영광, 정확히 말해 법성포로 가보자. 
 
 
굴비 머리에 붙은 ‘다이아몬드’
제법 먼 길, 굴비 만나러 가는 길엔 자린고비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어떤 구두쇠 영감이 대청마루에 굴비를 한 마리 매달고 쳐다보며 식사를 했다는 얘기, 두 번 쳐다보면 짜다고 꿀밤을 맞았다는 얘기, 굴비 장사 오니 주물럭주물럭하다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돌려보내고 그 손을 씻은 물로 국을 끓였다는 얘기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 배포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살면 부자가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법성포 거리를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굴비 엮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이른바 굴비 제조창이다. 지나가다 기웃기웃하니 아예 들어와서 보란다. 산더미 같은 조기가 굴비가 되려고 대기 중이다. 굴비 엮던 아주머니가 잰 손놀림과 더불어 이런저런 말을 걸고 또 늘어놓으신다. 
 
기분이 좋으신지, 자랑을 하고 싶으신지 저기 있는 사람은 며느리, 여기는 남편, 얘는 손주…. 이곳 굴비 작업장은 온통 가족 체제다. 아주머니는 자랑과 함께 좋은 굴비 고르는 법도 얘기해주신다. 머리가 둥글고 두툼하며, 비늘이 몸통에 잘 붙어 있고, 배나 아가미에 상처가 없어야 좋은 굴비란다. 또 좋은 영광굴비는 특유의 노란빛을 띤다고 한다. 법성포 굴비는 노란 노끈으로 엮고, 이마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자세히 보니 정말 이마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있다. 다이아몬드라…. 그럼 이 놈은 군대로 치면 소위인가, 노르스름하니 금빛이 도는 걸 보니 준위인가? 우스꽝스런 생각을 하며 노란 노끈으로 엮는 굴비를 보다가, 왜 굴비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건 분명히 조기인데 말이다. 
 
아주머님이 씽긋 웃으신다. ‘조기’를 씻어 손질한 뒤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아 절이면 ‘굴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공 과정을 거친 뒤 이름이 바뀌는 것이다. 명태를 가공해 황태가 되듯 말이다. 
 
 
법성포굴비? 영광굴비?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조기와 굴비는 구성 성분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조기는 단백질과 비타민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굴비는 주성분이 단백질에 지방 칼슘 인 철분 나이아신 같은 무기성분이 골고루 들어 있다. 생조기와 달리 감칠맛이 나고 식욕을 촉진한다. 눈과 바람을 맞고 겨울을 난 황태가 명태와 성분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법성포굴비가 맞아요, 영광굴비가 맞아요? 어느 게 더 좋은가요?”
 
굴비 엮는 손이 잠시 멈칫한다. 아주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영광굴비’는 엄밀하게 따지면 ‘법성포굴비’란다. 굴비의 역사를 떠나서 법성포가 영광군에 속하니 넓게 보면 영광굴비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영광굴비가 대부분 법성포구로 집결돼 가공·보관되므로 법성포굴비가 맞다. 영광군의 지리로 볼 때 영광읍은 그냥 시내고, 법성포는 바다를 안고 있기 때문에 법성포굴비라 해야 제격이라는 설명이다. 
 
 
조기만도 못한 놈, 조기 배에도 못 탈 놈
‘영광굴비’ ‘법성포굴비’를 중얼거리며 거리로 나오니 갯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그 바람 틈으로 조기인지 굴비인지 비릿한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진다. 갯벌에 올라온 갯배와 둥글게 돌아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법성포구가 저쯤이다. 
 
부두 참에 앉아 뱃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한참 동안 감상한다. 그 옛날 이곳 법성포 앞바다인 칠산 바다에 조기가 한참 올라올 때는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돈 실로(실러)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뱃노래가 있을 만큼 참조기 어업이 성행했다는 말이다. 
 
해서 생긴 속담이 있다. ‘조기만도 못한 놈’이란 것이다. 양력 4월 20일 곡우(穀雨) 때면 조기 떼가 어김없이 변산반도 입구의 칠산 앞바다에 나타났다. 칠산 어민들은 법성포 건너편 구수산의 철쭉이 떨어지거나 인근에 있는 섬 위도의 늙은 살구나무에 꽃이 피면 참조기가 알 낳을 때라는 것을 알았다. 정확하게 산란기를 맞추는 생선인지라 어부들에게 존경과 예쁨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때를 잘 지키지 않는, 즉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고 흉을 본다. 하물며 생선인 조기도 때를 어기지 않는데 말이다. 
 
‘조기 배에는 못 갈 사람’이라는 속담도 있다. 조기를 잡을 때 시끄러우면 조기가 도망가는데 수다를 많이 떠는 사람을 비웃을 때 하는 말이다. 속담 한 줄에 담긴 무한한 이야기와 자연의 섭리에 무릎을 친다. 
 
 
구부러져 굴비? 굴하지 않아 굴비?
 
이쯤 해서 굴비의 유래를 제대로 들어보자. 그 시원은 고려 태조 왕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왕건은 현재의 법성항에 조세를 담당하는 부용창을 설립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굴비가 조세 물품에 포함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굴비’라는 이름은 고려 17대 인종 때 ‘이씨가 왕이 된다’는 참위설(讖緯說)을 믿고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광 법성포에 유배되어 귀양살이를 하던 일화에서 비롯된다.
 
이자겸은 영광 법성포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소금에 절여 바위에 말린 조기의 맛이 좋아 임금님께 진상하면서 ‘이 진상품은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 신하로서 변함없이 충성을 바치고 제 옳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이름도 초나라의 지조 높은 시인 굴원을 연상시키는 ‘굴비(屈非)’로 지었다. 그 후 이자겸이 귀양살이를 한 영광과 법성포의 지명을 붙여 ‘영광굴비’ ‘법성포굴비’로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법성포굴비는 왕실의 음식 족보에 오르면서 귀한 물품이 됐다. 하지만 굴비가 수라상에 올랐다는 기록은 고려 예종 때 처음 나오니 그 역사가 족히 1천 년은 된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조기를 엮어 매달면 구부러지는데, 그게 구비(仇非)라서 나중에 굴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구불구불하다는 뜻이 있는 우리말의 산굽이, 강굽이처럼 구부러진 것을 ‘굽이’라 했다. 이것을 구비로 표현했고, 나중에 굴비가 되었다. 
 
 
상다리가 부러지는 굴비정식
 
이런저런 궁금증을 해결하니 배가 고프다. 길거리로 나오니 굴비 한정식 집이 쭉 늘어섰다. 현지에서 마음에 드는 굴비를 골라 택배 발송도 마쳤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상을 맞아본다. 푸짐한 상에는 사람 수에 따라 굴비가 한 마리씩 나온다. 여기에 자린고비 찜과 조기매운탕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서해안에서 나오는 생선 열대여섯 마리와 해물도 포진되었다. 삼합과 약밥, 영광의 대표 명물인 모시송편 대하찜 육회 등이 어우러지니 입이 절로 벌어진다. 
 
나물 젓갈 김치 산적 게장 등 기본 반찬을 놓았는데 4인 테이블의 맨 끝에서 음식을 놓기 시작한다. 이어 찐굴비 구운굴비 고추장굴비 서대찜 홍어찜 양태찜 갈치구이 육회 갈비 홍어회무침 홍어회 석화 활어회 간장게장이 나온다.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 
 
이곳 법성포는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처음 들어온 곳이다. 그때 세워진 불갑사는 남방 불교의 양식을 보여주는 국내의 유일한 사찰로 알려졌다. 거나하게 먹고 법성포 바닷가로 나와서 갯바람을 실컷 쐬니 기분이 참 좋다. 바다를 끼고 있는 ‘백수해안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16.5km의 해안도로는 동해안 못지않게 절벽이 멋지다. 굽이를 돌 때마다 앞에 나올 풍경이 궁금해지고, 낙조를 만났을 때 절경을 이룬다. 노을이 아름답기에 백수해안도로변에 노을전시관이 세워졌다. 세계의 노을 자료가 전시되었으며, 전망대에서 직접 노을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법성포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또 한 해의, 한 번의 명절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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