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 가운데 제일 걱정스러운 것이 허술한 국방태세다. 유사 이래 유난히 잦았던 이민족 침략과 동족상잔 전쟁으로 온갖 고초를 겪은 한민족에게 방위선이 뚫리는 것은 곧 전란의 참화를 의미한다. 특히 6•25 전쟁 이후 휴전선 소식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2일 북한군 귀순병이 동해안 지구 최전방 철책선 초소에 넘어와 문을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우리측 비무장 지대 폭이 2km나 되고, 그곳에 3중 철조망이 쳐진 것도 불안해서 촘촘히 경계병을 배치하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감시카메라(CCTV)까지 설치된 곳이 휴전선이다. 인위적인 시설과 초병과 첨단장비가 삼위일체로 지키는 국경선이 그렇게 뚫릴 수는 없다.
 
 
경계실패 은폐하려는 장교 거짓말에 군 수뇌부 놀아나
더 놀라운 일은 경계실패를 은폐하려는 일선 장교들의 거짓말에 군 수뇌부가 놀아났고, 그 사실을 일주일씩 숨긴 사실이다. 사태 발생 일주일 만에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합동참모본부 최고 책임자는 소문을 들은 국회의원의 추궁을 받고야 사실을 시인했다. “감시카메라에 포착되어 신병을 확보했다”지만 그것은 5000만 국민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휴전선 경계체제의 말단 책임자인 보초병들은 잠시 한눈을 판 잘못을 감추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거듭되는 경계임무와 훈련에 지쳐 잠시 수마(睡魔)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병사들을 독려하여 경계망을 조이고, 비상상황에 대처함으로써 유사 사태의 재발을 방지해야 할 장교들이 누구도 그 소임을 다 하지 못했다. 
 
국방부 자체조사에 따르면 이번 일의 책임은 초병보다 장교, 초급장교보다 고급장교의 잘못이 더 컸다. 적병이 내무반 문을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상황을 처음 상부에 보고한 사람은 부소초장(부사관)이었다. 그는 책임을 모면하려고 귀순병 모습을 감시카메라로 포착하여 신병을 확보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날이 밝은 3일, 현지조사와 귀순병의 진술로 사실과 다른 상황이 확인되자, 사단 측은 즉시 상부에 보고를 정정했다. 귀순병이 내무반 문을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정정보고가 일주일간 군 수뇌부에 보고되지 않았다.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야당의원의 추궁에 정승조 합참의장이 허위보고를 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까지 군은 이 사실을 극비에 붙였다. 일선부대가 발칵 뒤집어졌던 일이 언제까지나 비밀이 될 수는 없다. 부대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지고, 그것이 국회의원 귀에 들어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군은 끝까지 숨겨보려다가 야당의원 질의를 앞두고 일부 언론사에 정보를 흘려 물 타기를 시도했다.
 
 
초병보다 장교, 초급장교보다 고급장교 잘못이 더 크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나, 고급장교들의 직무유기는 확실해 보인다. 국가안위에 관한 상황을 이렇게 안이하게 처리하는 장교가 대한민국 방위체제의 심장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휴전선 철책이 뚫린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우리 휴전선은 너무 자주 뚫렸다. 멀리 1•21 사태까지 갈 것도 없다. 동해안 산악지대가 북한 특수부대 놀이터처럼 되었던 시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난 9월에는 북한 민간인이 강화군 교동도 철책을 넘어와 민가에 일주일씩 숨어 지내도록 까맣게 몰랐다. 2009년 10월에는 우리 민간인이 철책을 끊고 월북했는데도 몰랐고, 2005년 6월에도 북한군 병사 1명이 철책을 넘어왔다가 주민 신고로 붙잡혔다. 
 
이런 철책선과 한눈파는 초병들, 거짓말과 은폐로 한 순간의 책임만 모면하려는 장교들을 믿고 오늘 밤 발 뻗고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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