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항 전어 vs 남당항 대하

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이 계절에 살찌는 것이 어디 말뿐이랴. 산과 들에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바다에서는 맛난 먹거리가 넘쳐나니 실로 이 계절은 공공의 적이요, 다이어트의 굳은 결심이 사흘을 넘기기 힘든 고통의 계절이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비단 자락을 이리저리 펼쳐놓은 것 같은 한반도는 축복받은 땅이다. 봄이면 울긋불긋 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진다. 
 
가을이면 알록달록 색동저고리를 입고 한바탕 춤을 춰댄다. 그러다 겨울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흰옷으로 갈아입고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서 나오는 먹거리 역시 환상적이다. 
더구나 가을철에는 입에 착착 붙는 먹거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특히 서해안이라면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전어와 대하! 그냥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고, 무쳐 먹어도 맛있고, 튀겨 먹어도 맛있고,…. 허리와 뱃살에 대한  철칙을 사정없이 허물어뜨리는 두 녀석을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굵은 소금 휙휙 뿌려 철망에 ‘지글지글’  
홍원항 전어
가을의 전령 전어와 새우 중 시기적으로 보면 전어가 먼저다. 은백색 요염한 뱃살을 뽐내는 전어는 겨울철 따뜻한 남쪽 바다에 있다가 봄이면 서해 연안으로 올라와 7월쯤 산란을 한다. 이때는 살이 푸석푸석하고 볼품없다. 
 
산란 뒤 서서히 살이 오르는데 8월이 지나 식물성플랑크톤을 실컷 먹은 전어는 기름지고 살에 탄력이 붙는다. 특히 9월 중순부터 10월이 전어의 전성기다. 추석을 전후한 보름이 가장 맛있다는 속설과 더불어 가을 찬 바람에 남쪽으로 내려가기 직전이 가장 고소하다는 얘기가 있다. 
 
전어는 서해안이 주 서식지다. 서해안 이곳저곳에서 전어가 잡히니 전남 보성·광양, 충남 무창포, 서천 홍원항 등 각 지자체들이 축제를 열며 자신들의 전어 맛이 으뜸이라 홍보한다. 서해를 이리저리 노니는 전어 입장에서 보면 코웃음이 나올 법한 일이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나 갯벌의 구조, 바다의 온도 등에 따라 민감한 맛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인정해주자. 
 
오늘은 전어구이의 원조 격인 서천 홍원항으로 가보자. 포구로 들어가는 양옆 식당들은 전어라고 크게 써 붙이고 항구 가까이에 가판점을 세워 종전 횟집과 임시 천막집이 도열하니 가을이 되면 ‘급! 전어골목’이 생긴다.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전어는 기름기가 많고 달콤하다’고 나온다.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에도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貴賤, 귀족과 천민)이 모두 좋아했으며, 사는 사람들이 돈[錢]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서천 근처만 가도 전어 굽는 냄새에 침이 잔뜩 고여 주머니 사정은 생각도 않고 덤벼든다. 
 
전어는 역시 구워 먹어야 맛나다. 잔가시가 많아 발라 먹기 귀찮기는 하지만, 잘 익은 전어를 손으로 들고 몸통과 머리가 이어지는 부분을 상하좌우로 ‘조물락조물락’하면 몸통의 뼈가 머리에 붙은 채 ‘홀랑’ 빠지는 비법도 있으니 익혀보자. 전어구이를 먹는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몸통을 맛나게 먹고 나서 ‘깨가 서 말’이라는 대가리를 꼭꼭 씹어 먹으면 참으로 고소하다.  
 
전어는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향상하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건강식품이다. 한방에서는 ‘소변 기능을 돕고 위를 보호하며 장을 깨끗하게 한다’고 했다. 길이 15~30cm 인 전어는 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인데, 아가미가 끝나는 부분에 검고 동그란 점이 있다. 이것이 ‘엽전, 돈’처럼 생겼기에 돈 전[錢]자를 써서 전어(錢魚)라 부른다고 한다. 이 물고기를 잡아서 팔면 돈이 된다 하여 전어라고도 부르니, 전어란 놈의 이름은 그 풀이가 많기도 하다.   
 
전어를 구울 때는 몸통에 칼집을 낸 뒤 굵은소금 휙휙 뿌려 철망에 얹고 지긋이 기다려야 한다. 살이 연해 자꾸 뒤집으면  너덜너덜 형체만 남는다. 기다리는 시간을 위해 전어회를 주문해보자. 깨끗이 손질해 대나무 발에 담아 내오는 전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매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뼈째 썬 전어회는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맛과 함께 입안에 고소함을 선사하니 침을 꼴깍꼴깍 삼킨다. 
 
그나저나 전어가 입에 들어가니 손이 바쁘지만 머릿속으로는 궁금증이 인다. ‘가을철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와 맛을 못 잊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끄집어내니 전어구이 집 아저씨가 “전어가 남성 정력과 여성 피부에 그만이라 며느리가 돌아온다”며 짓궂게 눈을 꿈적인다. ‘아하’하고 무릎을 치려다 또 궁금증이 인다. 그런데 며느리들은 왜 그렇게 집을 나갔을까?
 
팔딱팔딱 탁!탁! 맛이 익는 소리
남당항 대하
이번엔 남당항으로 대하를 만나러 가보자. 남당항대하축제장에서는 대하 잡기 행사가 한창이다. 새우 머리의 뾰족한 곳에 찔리지 않게 장갑은 필수다. 왕새우로 불리는 대하는 속이 보일 듯 연한 잿빛 몸을 하고 구부정한 허리에 가슴다리 10개를 재게 놀리며 쏜살같이 달아난다. 제 몸길이보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도망가는 대하에게 대하잡기 숨바꼭질은 생사를 건 승부다. 하지만 ‘미래 소년 코난’처럼 순식간에 와락 잡아 올려야 한다는 것을 본능처럼 알아차린 몰이꾼에 결국 잡히고 만다.  
 
이렇게 잡은 대하는 모두 열댓 마리. 의기양양 대하를 들고 바로 옆 식당으로 들어가면 큼직한 프라이팬에 포일과 두툼하게 깔린 천일염이 보인다. 그 위에 대하를 올리고 뚜껑을 닫고 불을 지핀다. ‘팔딱팔딱, 탁! 탁!’ 희디흰 소금 위에서 춤추던 대하는 짭짤한 소금을 제 몸으로 들이며 서서히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투명한 듯 연회색 새우가 발갛게 익는 광경은 참으로 극적이고 몽환적이다. 
 
새우는 크기에 따라 대하(大蝦), 중하(中蝦), 소하(小蝦)로 나누니 다 자란 뒤 몸길이가 20cm를 넘으면 대하라 한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하(蝦)자를 쓴다. 불에 익히면 몸이 붉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놀[霞]의 뜻이 있는 가(暇)에 벌레 충(蟲)자를 붙여 표기하는 것이다. 
 
슬슬 고소한 냄새가 난다. 갑옷처럼 두른 새우 껍데기를 벗겨 연분홍 속살을 입속으로 넣는 순간이란. 손가락 두 개만큼 굵은 새우 살은 쫄깃하고, 구워서 껍데기를 벗긴 뒤 붉디붉은 초고추장이나 까무잡잡한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 별스럽다. 잘 구워진 대하는 맛이 고소하고 기름진데, 붉은빛을 띠는 껍데기 역시 비타민 A가 풍부해 통째로 먹기도 한다. 특히 머리 부분을 바싹 구워 꼭꼭 씹으면 고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어디 소금구이뿐이랴. 회를 떠서 먹고, 색색의 고명을 얹어 찌면 귀한 궁중 음식 대하찜이 되고, 가을철 국물 요리에 대하 한두 마리 넣으면 격이 높아진다. 또 굵은 대하의 몸통 벗기고 튀김옷을 입혀 튀기면 한두 마리만 먹어도 든든하다. 서해에서 나는 ‘새우의 왕’ 대하는 저지방 고단백 저칼로리의 완전식품이다. 
 
힘 좋은 새우는 한 번에 알을 1천여 개 낳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친다. 옛날 사람들은 새우처럼 자손을 많이 두라는 뜻으로 새우 알을 며느리에게 먹이기도 했다. 새우에 생강 파 된장 등을 넣고 끓여 먹으면 성질이 따뜻해 고여 있던 혈액을 풀어준다고 한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며, 베타인과 아르기닌 등의 성분이 있기 때문에 맛이 달다. 올가을 저녁놀이 지는 남당항에서 대하를 먹으며 지난 일을 되뇌고 몸과 마음을 붉게 물들여도 좋을 듯하다. 붉디붉은 저녁놀에 새우가 절로 붉게 익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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