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노크귀순’ 사건 속보에는 눈 감고 귀를 틀어막고 싶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 뒤 일주일간 보도된 속보들은 너무 놀랍고 한심했다. 전쟁이 나지 않은 것만을 천만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장애물 경기 선수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3중 철책을 넘어온 북한 병사가 우리 측 초소 문을 노크해 귀순한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 놀랄 가슴이 없다. 그런데 그건 약과였다.

합참의장이 진작 노크귀순 사실을 알고도 위증을 한 의혹에서부터, 제대로 상황을 보고 받지 못 한 대통령이 진노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질책했다는 보도, 노크 정도가 아니라 총을 쏘아 귀순사실을 알려도 몰랐다는 ‘호출귀순’이 몇 차례 있었다는 사실 등등,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들이 릴레이처럼 터져 나왔다.
 
노크가 아니라 총을 쏘아 귀순 알려도 몰랐다니…
이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문제의 현장을 놔두고 NLL 문제로 정치이슈가 된 연평도를 방문해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무엇보다 아찔한 것은 대통령이 사태발생 일주일이 넘도록 진상을 몰랐을 개연성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사태 발생 열흘 만인 11일 김관진 국방장관을 불러 ‘군이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으니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들을 엄중 문책하도록’ 지시했다. 이 보도로만 보면 노크귀순 말썽이 날 때까지 대통령이 진상을 몰랐다는 이야기다.
 
작전 최고책임자인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이 상황발생 일주일이 넘도록 진상을 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정덕환 국방부 감사관은 15일 브리핑에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노크귀순 사실을 3일 오전 국방정보본부장으로부터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명백한 허위증언 혐의가 입증된 셈이다.
 
정 감사관은 상사의 허위증언을 부인하려는 속셈인지, “공식계통으로 올라온 보고는 일관되게 CCTV로 발견했다는 것이어서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공식계통이란 경계실패의 책임이 있는 작전분야를 의미하고, 정보본부장 보고는 당사자 진술을 토대로 한 일선 기무부대 보고를 의미한다. 경계실패를 호도하고 싶어 하는 작전분야 보고를 취하고, 귀순자 진술에 근거한 정보분야 보고를 배척한 것은 군 최고 지휘자 자격을 의심케 한다.
 
공식채널 보고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상활발생 다음 날 ‘사실은 노크귀순이었다’는 일선부대의 정정 보고를 수용하지 않은 일 때문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문책’ 절실
 
2008년 완전무장을 하고 철책을 넘어온 한 북한군 장교 출신은 한 방송에 나와 “GOP 200m 앞에서 백기를 흔들어 귀순의사를 표해도 반응이 없어, 총을 7발이나 쏘았는데도 모르더라”고 말했다. 한 사병 귀순자도 비슷한 경험을 보도진에게 털어놓으면서, “첨단무기가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번처럼 일 처리가 된 것이 유사사태 재발의 핵심 원인이다.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편하고, 서로서로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탓이다. 초병이 발견한 것인 양 귀순자에게 “초소 아래 내려가서 백기를 한 번 흔들어 달라”는 요구를 했다든지, 그렇게 연극을 꾸며 표창을 받았다가 들통이 나서 상이 취소되었다든지, 그런 코미디 같은 일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전방 철책선 근무자들의 일탈과, 그것을 쉬쉬하고 넘어간 지휘관들의 오랜 적폐가 낳은 산물이다.
 
진노와 질책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국민과 대통령을 속인 책임을 수하 장교들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문책만이 재발방지의 약이다.
 
내일신문  문/창/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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