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북항 굴구이 골목

 
포구에는 고단한 작업을 마친 갯배들이 달고 곤한 잠에 빠져 있다. 그 옆으로 갈매기가 조심스레 날고, 도시 생활에 지친 이방인은 그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힘이 되는 자연 속 풍경이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바다를 보러 가는 길, 한 남자가 생각났다. 1725년 4월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성직자 군인 음악가 등이 되고 싶었다. 똑똑하고 미래가 촉망되는 청년으로 자라난 그는 베네치아의 귀족이자 작가며, 모험가 외교관 재무관 스파이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파란만장하게 산 그는 1798년 6월 4일 73세로 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삶을 책으로 남겼으니 자서전 <내 생애의 역사(Histoire de ma vie)>로 545쪽에 달한다. 그는 문학은 물론 역사 철학 자연과학 의학 점성술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했다.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인 볼테르와 문학 국가 자유 관용 같은 주제로 끝없는 논쟁을 벌일 만큼 깊이도 있었다. 재치와 폭넓은 교양으로 다양한 계층 사람들과 두루 사귀었으니, <내 생애의 역사>는 18세기 유럽의 사회와 풍속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누구일까?
 
갯벌 바위에 피는 어여쁜 돌 꽃
여기 그에 대한 힌트가 하나 있다. 생활 습관과 식습관이 독특했으니, 매일 아침 생굴을 50개씩 먹는 굴 마니아였다. 이제 짐작이 가시는지…. 아하! 희대의 엽색가로 알려진 지오반니 카사노바의 이야기다. 그의 인생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그의 생각과 세상을 보는 시각,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겪었을 일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얼마나 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했는지, 굴이 정력에 얼마나 좋은지 등에 초점을 맞추니 좀 억울할 것도 같다. 유럽의 한 귀퉁이에 살던 그 남자를 생각하다 보니 저 멀리 거뭇거뭇 개펄이 펼쳐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발밑에서 빠지직빠지직 굴 껍데기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카사노바가 즐겨 먹던 굴 껍데기가 포구 여기저기에 수북하다. 
 
여기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의 천북항 굴구이 골목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 굴은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고, 아낙들은 부지런히 굴을 딴다. 밀물과 썰물을 온몸으로 받으며 검은 돌 위에 흰 꽃을 피워내니 우리말로는 ‘굴’, 한자로 ‘석화(石花)’라 쓴다. ‘돌에 핀 꽃’이라는 뜻이다. 게딱지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껍데기에 뽀얀 속살을 감춘 모양새가 돌에 핀 꽃이 맞다. 어여쁘다. 그 꽃을 따기 위해 아낙들은 머릿수건을 쓰고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찬 바람을 달래가며 펄밭을 헤맨다. 
 
100호 넘게 늘어선 굴구이 집
조차가 큰 서해안, 나지막한 바위산이 해변을 둘러싼 천수만은 개펄이 발달해 굴의 서식 조건에 알맞다. 
 
그곳 개펄에 돌을 뿌려놓으면 굴 밭이 되고, 바닷물이 들고 나며 자연스레 굴 종자가 몸집을 키워 석화로 자라난다. 물이 빠지고 개펄이 드러나면 아낙들은 호미를 들고 나가 한껏 자란 석화를 캐낸다. 
자연이 선사한 일터에서 바다의 꽃을 따는 그들의 손에는 석화가 묵직하다. 촉감이 탱글탱글하며 맛이 뛰어나다. 
 
이 향긋하고도 비릿한 굴 향에 전국 각지에서 미식가들의 발길이 몰려드니 고만고만한 굴구이 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100호가 넘는 굴구이 집마다 갓 잡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석화가 산처럼 쌓였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석화구이 테이블과 의자가 사열 받는 병사처럼 도열했다. 비릿하고도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훅 끼친다. 이때 발 빠른 총각 하나가 한 바가지 가득 석화를 들고 온다. 
 
번개탄 위에 석쇠를 얹고 석화를 우르르 쏟는다. 큰 놈과 작은 놈이 이리저리 엉겨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탁탁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린다. 조심스레 입을 벌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뻥뻥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튀기는 놈도 있다. 그 덕에 포탄 터지듯 요란한 소리와 파편이 튄다. 
아이들은 제 부모 품으로 달려들고, 꽃단장한 아가씨는 화들짝 남자 친구 품에 안기니 작업(?)하기 좋은 곳이다. 급한 마음에 벌어지는 틈으로 칼날을 넣고 살짝 비트니 입이 벌어진다. 하얗고 뽀얀 속살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 숨 쉴 새도 없이 입으로 직행. 음~ 그래, 이 맛이야!
 
익는 정도에 따라 다른 오묘한 맛
석화는 원래 날것으로도 먹는 놈이라 그냥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다. 익는 정도에 따라 맛이 오묘하게 다르니 목으로 후루룩 넘어가는 것부터 쫄깃쫄깃 씹히는 맛까지 입속 즐거움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8월까지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부터 살이 차기 시작하는 굴은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된다. 아낙들이 찬 바람을 맞으며 석화를 캐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울 석화를 따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겸 허기를 채울 겸 바닷가에서 석화를 굽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소문나 이렇게 굴구이 골목이 생겼다. 어디 굴구이뿐이랴, 굴전 굴밥 굴칼국수 굴국밥 등 굴로 만드는 요리는 끝이 없다. 또 그 맛의 퍼레이드는 지루한 겨울을 기다림의 겨울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진정 굴 맛을 알던 사람은 카사노바뿐일까? 당연히 아니다. 로마 황제들도 굴이라면 사족을 못 써서 노예들을 맛난 굴이 난다는 영국해협으로 보냈다. 영국과 로마가 가까운 거리던가? 1년 내내 신선한 굴을 조달하다 보니 이런저런 노하우가 생기고 금기 사항도 생겨났으니 ‘R자가 들어간 달에는 굴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 특히 로마에서는 4월이면 여름에 가까운 날씨라 상한 굴을 먹지 않기 위한 지혜였다. 
 
석화를 향한 동서양의 무한 사랑
그렇다면 서양 사람들만 굴을 즐겨 먹었을까? 역시 아니다. 고려 시대의 속요 ‘청산별곡’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海草)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여기서 ‘구조개’란 굴과 조개를 뜻한다. 또 허준의 <동의보감>에 “굴을 모려육(牡蠣肉)이라고 하는데, 맛이 있고 몸에 아주 좋으며, 피부를 보드랍게 하고 안색도 좋게 한다. 바다에서 나는 족속 중에 최고로 귀한 것이다”라 했다. 
 
“모려는 동해(東海)에서 나는데 음력 11월에 잡은 것이 좋다. 주둥이가 동쪽으로 기울어진 좌고(左顧)를…소금물로 하루 종일 달인 후 불에 달구어 가루로 내어 쓴다”고 했다. 석화 껍데기를 ‘모려’라 하여 약으로 사용했으니 동서양을 불문하고 굴 사랑은 끝이 없었다.  
 
굴을 입에 잔뜩 물고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도해본다. 도대체 굴의 무엇이 그렇게 좋을까? ‘굴은 바다의 우유!’ 철분과 아연, 요오드는 굴이 우유보다 200배, 비타민 B12는 50배 이상 많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고 변비를 예방한다. 또 머리카락을 윤기 있게 하며, 촉촉하고 건강한 피부 미인을 만들어준다. 기억과 학습 능력에 도움이 되는 DHA는 참치의 2배니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노화 방지 기능도 있다. 도대체 안 좋은 건 뭘까? 
 
행복을 만드는 시간, 굴 먹는 시간
그러니 카사노바는 아침마다 생굴을 먹었고,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매끼 굴을 챙겼다. 독일제국의 초대 총리 비스마르크, 대작가 발자크도 굴을 좋아했다. 발자크는 한번에 1천444개까지 먹은 기록이 있다 한다. 
 
물론 굴에는 아연 아르기닌 글리코겐이 풍부하다. 아연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와 정자 생성을 돕는다. 아르기닌은 정자의 구성 성분이며, 글리코겐은 피로를 없애주어 정력이 넘쳐나게 한다. 하지만 ‘굴=카사노바=정력’으로 해석하는 것은 굴도, 카사노바도 억울함을 호소할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석화를 까먹는 자리는 훈훈하기 이를 데 없다. 손이 바쁜 가운데서도 말하느라 입이 바쁘고, 또 먹여주고 먹느라 분주하다. 석화구이를 정신없이 먹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석화 껍데기는 산더미가 되었다. 
 
이쯤 되면 굴칼국수가 등장할 때다. 
탱글탱글 방금 깐 생굴을 넣고 후루룩 끓인 굴칼국수가 뜨끈하니 속을 데워준다. 이 자리의 마무리다.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피부가 하얗다’는 말이 있다. 천북항에서 굴을 먹으며 더욱 예뻐지고 건강해지고 사랑도 다져보자. 올겨울도 석화구이가 있어 행복하다. 볼 붉은 색시처럼 천북항에 저녁놀이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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