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2012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 ‘이 선택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초나라 충신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나오는 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듦’을 의미한다.

연말연초 우리는 교수,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으로부터 평소에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사자성어를 자주 듣게 되지만 한 달도 채 안돼 잊어버린다. 작년에 발표된 사자성어를 기억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최근 몇 년 사이 대장금, 강남스타일 등 세계를 선점하고 있는 무형의 한국 고유 상품들이 많아졌다. 강남스타일은 한글 가사 그대로 세계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다. 내용이 있고 아름답다면 우리 것을 한글로 표현해도 못해낼 것이 없다는 의미다.

특히 한글은 다양한 내용을 표현할 수 있고 과학적이며 사용하기 편해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유산이다. 때문에 사회지식층, 지도층이 중국의 오래된 사자성어를 국민에게 보란 듯이 제시하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사자성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주변국의 역사를 배우고 교훈을 얻는 데는 사자성어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국민들이 새해 각오를 다지기 위한 어휘로는 알기 쉽도록 우리문화에 녹아있는 것이 더 어울린다.

이제 그래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첫째, 국민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젊은 층은 사자성어에 익숙하지 않아 의미 전달이 어렵고 중장년층도 설명을 들으면 이해는 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을 위해 ‘불통’의 수단을 이용하는 셈이다.

둘째,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지 않아도 국사가 필수 또는 선택과목으로 자주 변경돼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 사자성어의 역사적 배경 등 막연히 중국 사상을 차용한다면 사대주의적 의식이 확산될 수 있다.

셋째, 사자성어가 한글보다 국민이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워 이를 실천할 때 효율이 떨어진다. 단순한 발표자의 지식 자랑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문화뿐 아니라 산업, 사회 각 분야가 성숙하고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야 할 차례다. 이를 위해서는 화합과 융합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화합하고 융합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정체성 없이는 지극히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 발전할 때 나라가 부강했다. 조선시대가 어려웠던 것도 정체성이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혼이 없이 중국으로부터 유교, 성리학 등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한 결과 주변국을 능가한 독자적인 발전을 못했던 것이다.

최근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적으로 지도자가 바뀌어 과거와는 다른 협력속에 경쟁하고 발전을 해야 할 때다. 우리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유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관련 발언 등 역사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문제도 많다. 우리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할 때이다.

신년을 맞이하면서 지식인, 사회지도층이 중국 사자성어 사용을 지양하고, 우리말 우리글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국민 모두가 실천하게 함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 한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이 됐음을 음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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