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환율 1년 4개월 만에 최저 … 추가 하락 불가피
‘새 정부, 내수 위해 환율 하락 용인’ 기대심리 작용

글로벌 환율전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이 졸지에 끼인 신세가 됐다. 미국의 양적완화, 일본 아베 정권의 노골적인 엔저 정책 등으로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원화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2일 새해 벽두부터 원달러 환율은 1060원대로 급락(원화 가치 상승)하며 1년 4개월만에 최저 수준에 도달했다. 환율이 급락할 경우 수출기업들에게 타격이 갈 수 있다는 점, 유동성은 필연적으로 금융시장에 변동성을 높인다는 점 때문에 정책당국은 최근 환율 추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환율하락, 생각보다 빠르다 … 왜? = 2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10원 급락한 1063.5원으로 마감했다. 8일 오전 10시 현재는 1064원대에서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락은 예상됐던 것이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적잖이 놀라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60원대로 내려온 것은 2011년 9월 이래 처음이다. 거의 1년 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2일 외환시장을 본 후 올해 환율 전망치 하향조정도 검토중이다.

이처럼 원달러 환율 급락이 빨라지고 있는 이유는 선진국 돈풀기 영향이 크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어 올 1월부터 월 450억달러의 국채를 추가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4차 양적완화로 불리는 이 조치로 미 중앙은행은 매월 850억달러를 시장에 풀게 됐다. 지난해 9월부터 매월 400억 달러의 주택담보부채권(MBS)를 매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노골적인 돈풀기 정책을 펴고 있다. 새로 들어선 아베 정권은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부문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서기도 했다.

 

◆”환율은 국경선” 정책당국 민감반응 = 이에 대해 정책당국은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2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환율 하락폭과 속도가 너무 크고 이는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면서 “과도한 유동성 때문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환율은 국경선이나 마찬가지도 전쟁이다. 우리라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금통위원들 역시 원화절상 추세를 우려하고 있다. 2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12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최근의 원화절상추이가 앞으로 과도한 수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특히 내년 중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미국 등의 회복세가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을 경우 글로벌 부동자금의 국내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금통위원은 “우리 시장의 높은 대외 개방도와 비대칭적 구조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이런 글로벌자금의 과도한 국내유입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큰 경제적 부담과 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책 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권이양기에 적극 대처 못할 것 … 시장에 환율하락 기대심리 퍼져 = 문제는 시장에도 이미 환율 하락 기대심리가 넓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정권이양기인만큼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또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가 내수 활성화 등을 위해 환율 하락을 용인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에는 MB정부의 고환율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 경제가 수출 중심이라는 점 때문에 현 정부가 적극적인 고환율 정책을 폈지만 이는 결국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컸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화두는 내수 경기 활성화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환율 하락 용인으로 가리라는 논리가 시장에 이미 퍼져 있다. 이같은 새 정부 입장을 고려하면 현 정책당국도 원화 약세를 유도하려고 할 때 부담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신한은행 조재성 이코노미스트는 “민간이나 정부가 둘다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다가 박근혜 당선인이 보이는 행보가 친기업적이라기보다 친서민적이니까 환율방어를 해줄 거라는 기대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면서 “가지고 있는 달러를 서둘러 매도하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이코노미스트는 “잠잠하던 역외세력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이양기다 보니 환율방어를 하리라는 신뢰감이 많이 사라졌고 이에 따라 역외세력들이 원화강세에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환율 담당 연구팀의 서정훈 박사는 “우리나라가 사상 최대 경상흑자를 내는 등 달러 유입도 많아 환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면서 “재정절벽 해결 등으로 위험자산인 원화 쪽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내일신문 김형선 기자 eg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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