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북서풍과 영일만 해풍이 만나 구룡포를 휘감는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은 낮과 밤을 지키고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며 작품 하나를 만들어낸다. 바람의 아들, 과메기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언제부터인가 과메기 인기가 높아졌다. 동해 특정 지역의 겨울철 별미가 인터넷이 확산되고 유통 구조가  발달함에 따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진 것이다. 비릿함과 쫄깃함, 미역 생강 마늘의 풋풋함이 잘 어우러진  과메기. 초보자가 시도하기엔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홍어와 더불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호불호를 갈려 마니아로 구성된 팬 카페도 거느리는 괴짜 먹거리다.

 

과매기가 꽈배기와 관계가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자랑하는 과메기의 본부는 역시 포항의 구룡포다. 구룡포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재미난 생각을 해본다. 과메기… 이름이 독특하다. 메기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또 뭐와 연관이 있을까? 차창으로 보이는 분식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꽈배기? 비슷한데…. 설마? 아닐 것이다. 그럼 뭘까? 세상이 좋아졌으니 휴대폰으로 이리저리 검색해본다.

빙고! 청어 과메기든 꽁치 과메기든 이름이 참 생뚱맞은데, 이름의 유래에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물고기의 눈을 나뭇가지에 꿰어 말렸다는 의미의 관목어(貫目魚)의 발음이 변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꼬아 묶어 말렸다는 뜻의 꽈배기에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꽈배기도 연관이 있었다!

그럼 <소천소지(笑天笑地)>라는 재담집에 실린 일화와 유래를 들어보자. ‘동해안에 살던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해안가를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민가는 없고 배는 고프고….  때마침 바닷가 나뭇가지에 청어가 눈이 꿰인 채 널려 있는 것을 보고 몰래 먹었다. 맛이 참 좋았다. 그 후 선비는 과거를 보고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겨울철이면 나뭇가지로 청어와 꽁치의 눈을 꿰어 처마에 걸어놓고 말려 먹었다는 것이다. 관목어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바람의 아들 ‘과메기’
7번 국도를 남쪽으로 달리면 호랑이 모양을 한 우리나라 지도의 꼬리 부분, 포항 구룡포에 닿는다. 바다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이름 붙은 구룡포는 공기부터 다르다. 차긴 찬데 살을 에는 듯한 냉기는 없다. 산을 넘어온 건조한 북서풍이 동해안 난류 위에 만들어진 따뜻하고 습한 해풍과 만나서 그렇다. 구룡포 해안 덕장엔 줄줄이 꿰인 과메기가 바람에 날린다. 갈매기가 기웃거리는 항구와 길가의 식당, 그 뒤 언덕의 가정집 등 곳곳에서 과메기가 보인다. 구룡포 과메기 산지에 오긴 왔나 보다.

여기가 구룡포 과메기 골목이다! 손바닥만 한 마당, 옥상 등 조그만 공간이라도 자리만 나면 과메기 말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밤사이 차디찬 바닷바람에 얼었다가 한낮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녹았다를 반복하며 해풍에 발갛게 익어간다.

그래도 과메기를 제대로 보려면 덕장에 가야 한다. 덕장에 주렁주렁 걸린 과메기들이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끝없이 매달려 흔들리는 과메기의 재료는 원래 청어다. 겨울철 부엌 살창에 청어를 걸어두면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맛있는 과메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영일만 일대에서 청어가 잘 잡히지 않아 꽁치로 대체되었다.

또 하나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왜 구룡포가 과메기로 유명할까? 구룡포 과메기가 품질이 좋은 이유는 구룡포의 바람 온도 습도가 과메기 생산에 최적인 환경이기 때문이라 한다. 백두대간을 타고 불어오는 북서풍이 영일만 해풍을 구룡포로 몰아주어 과메기가 잘 마르는데다, 소금기를 머금은 북서풍과 해풍이 밤낮 번갈아 불어 과메기 건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패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또 -4~5℃에서 10℃에 습도 50%가량인 구룡포 기후가 과메기 건조의 최적 조건으로 평가된다.

“과메기 맛의 원천은 바람입니다. 바람의 온도 차가 심하면 과메기가 황태처럼 푸석푸석해지지요. 센 바람이 불면 겉껍질만 말라 속살이 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메기를 ‘바람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과메기 덕장 아저씨의 말이다. 바람의 아들,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음식의 변신은 행복이다!
과메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마리를 통째로 말린 ‘통과메기’와 반 갈라 내장 없이 말린 ‘배지기’다. 통과메기는 말리는 데 보름 정도 걸리고, 먹기 전에 다시 손질해야 해서 배지기가 등장했다.

통과메기는 꽁치를 짚에 통으로 엮어 말리는 것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꽁치 내장 맛이 생선 살에 녹아들어 독특한 맛을 낸다. 하지만 날 생선을 오랜 기간 말려야 하는 부담 때문에 어민들도 기피한다. 실제로 요즘 파는 과메기는 대부분 배지기다. 

과메기 말리는 것을 보면 물에 담갔다 꺼내서 널어놓기만 하면 되는 듯 쉬워 보이지만, 잔 손길이 많이 간다. 언 꽁치를 녹여 배를 가르고 내장과 뼈를 제거하는 것이 과메기를 만드는 첫 단계다. 이때 널 것을 대비해 꼬리 쪽은 붙여둔다. 이렇게 손질한 꽁치는 바닷물로 두세 차례 씻은 뒤 민물로 씻어낸다. 불순물 제거는 물론, 비린내를 잡아 담백한 맛을 내기 위한 과정이다. 세척을 마친 꽁치는 대나무에 척척 걸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덕장에 비로소 내건다.

과메기를 먹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과메기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배춧잎에 바다 냄새 물씬 나는 돌미역 올리고, 초고추장 양념에 과메기 실파 풋고추 마늘을 더해 단단하게 싸서 입에 넣는다. 비릿하며 꾸덕하게 씹히는 과메기 살에 맵고 아삭하게 씹히는 실파 풋고추 마늘 맛이 어우러져 상큼하다. 초고추장의 톡 쏘는 새콤함도 한몫 거든다. 씹을수록 독특한 과메기의 고소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꽁치의 풍부한 단백질과 지방 때문인지 소주와도 잘 어울린다. 과메기는 구룡포항 공터에 늘어선 점포에서 시식하고 구입하고 택배를 주문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구룡포까지 왔으니 어디 식당에라도 가서 과메기 한번 제대로 먹어보자. 아이들도 있으니 좋은 장소가 없을까? 구룡포항 인근 식당을 찾으니 과메기라는 메뉴가 없고 그저 반찬으로 나온다고 한다. 황당하다. 멀뚱히 서 있으니 누군가 식당을 한 곳 추천한다. 과메기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포항 죽도동 중앙교회 옆에 있는 과메기 특구 ‘김순화식당’(054-283-9666)으로 가라고.

20년 이상 과메기 요리만 해온 곳으로 일반적인 쌈 요리에서 벗어나 과메기초밥 과메기튀김 과메기정식 과메기무침 과메기구이 등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다.

 

100년 전 일본인 거리가 구룡포항 뒤편에
과메기의 고장 구룡포는 지금 제법 유명한 고장이 되었지만, 1920년대 초에는 한적한 시골 항구였다. 그런데 근대화와 개항의 물결을 타고 현대식 방파제가 들어서면서 풍부한 어족 자원을 잡기 위한 일본 선주들이 모여들었다.

구룡포 앞바다에는 일본인 어선 900여 척과 조선인 어선 100여 척이 떠 있었고, 소속된 어부들만도 1만2천여 명이다. 그중 구룡포에 주소지를 둔 일본인만 1천 명에 이르렀다. 이에 걸맞게 요릿집 상점 목욕탕 은행 이발소 약국 세탁소 사진관 잡화점 미용실 치과 등 없는 것 없이 호황을 누렸다.

구룡포우체국을 돌아 들어가는 작은 골목 안쪽은 지금도 영화 속 장면처럼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던 일본 가옥(적산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옛 건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흑백사진이 건물마다 걸려그 시절의 풍광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골목을 거닐다 보면 일본인들은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화를 꿈꾼 것 같아 실없는 웃음도 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뒤 구룡포공원에 오르면 구룡포항이 한눈에 보인다. 계단 아래 일본인 가옥 거리가 있고, 과메기가 주렁주렁 널린 골목을 지나면 식당과 작은 상가가 도란도란 자리 잡고 있다. 길 하나 건너면 항구가 이어지고, 정박한 배들 너머로 포항의 바닷물이 철렁인다. 햇살을 받으며 일렁이는 과메기의 낮을 보았으니 밤새 얼었다 일출을 맞으며 다시 몸을 푸는 과메기를 봐야 제대로 과메기를 만났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오늘은 이곳에서 묵어봐? 자연과 자연이 만드는 멋진 작품을 만나는, 바람의 아들을 만나는 경이로운 여행의 결론은 ‘하루 더 머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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