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특사 논란이 또 시끄럽다. 물러가는 대통령마다 선심 쓰듯 측근 범죄자와 재벌의 죄를 사면해 주는 사법질서 붕괴 현상이 또 일어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전례 없이 대통령 형과 처남이 대상이고, 형 확정이라는 요건에 맞지 않아 더 시끄럽다.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대통령 스스로 번복,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다.

대상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지만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재홍 전 KT&G 이사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으로 알려져 있다.

 

“식구 풀어주며 특별사면?” 집권당까지 반대여론 가세
다만 이 전 의원의 경우는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특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이달 25일로 예정된 1심판결 직후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되면 설날(2월 10일)을 전후한 특사에 포함될 수 있다는 날짜계산까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난을 무릅쓰고 특사를 강행할지 여부의 선택이 남았을 뿐이다.

이번 특사 추진에는 집권당까지 반대여론에 가세하고 있어 대통령의 결심이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10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혜훈 심재철 두 최고위원이 특사추진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은 적을 풀어줄 때 쓰는 말이지 식구를 풀어주면서 쓰는 말은 아니다” “권력형 비리를 특별사면으로 구제하는 것은 특권층에 대한 특혜일 뿐”이라고 부당성을 성토했다.

특사추진 소식이 전해진 뒤 시중 여론을 펄펄 끓게 한 요인의 하나는 범죄의 현재진행성이고, 둘째는 범죄의 악질성이다. 형과 처남의 범죄를 사해주려는 사심(私心)도 그 하나다. ‘아직 재판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특사냐’라는 반감은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상왕’이란 조롱기 어린 닉네임으로 유명했던 이 대통령 형이 영어의 몸이 된 것은 불과 6개월 전이다. ‘방통대군’으로 불린 최시중 씨는 그보다 6개월 쯤 빠르다. 그러니 1년도 못 되어 풀어주려는 대통령의 뜻은 사심이라는 말밖에는 표현될 수 없다.

재판과 관련된 대상자들의 태도를 보면 사면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씨는 1·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6억원 선고를 받고 상고를 포기했다. 처남 김씨는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즉시 상고했다가 9월에 취하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근거로 지난해 성탄절 특사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들의 범죄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친 점이 더욱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씨는 부실 저축은행의 뒤를 봐주고 큰돈을 받았다. 그 은행에 돈을 떼인 서민들의 피눈물을 생각하면 당사자와 그 가족 친지들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사면권 남용 없도록 제도적 장치 서둘러야
지금 교도소에는 생계형 범죄자들이 많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법을 어긴 사람들과 비교하면 사법 허무주의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것이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특사는 미국 대통령의 특권이었다. 연방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인디언 정치범들을 포용하기 위한 ‘화합입법’의 산물이다. 그 권한의 폐단이 문제가 되자 미국은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로 실형 복역자는 석방 후 5년, 그 외에는 형 확정 5년이 경과해야 사면을 청원할 수 있도록 제한조항을 두었다.

프랑스는 부패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사범에게는 사면을 금지하고, 독일은 제도를 엄격히 운용해 지난 60여년 동안 대사면이 4차례에 불과했다.

우리도 대통령 사면권 남용이 문제가 될 때마다 제한입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흐지부지되곤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심 있는 사면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서둘러야겠다.

 

내일신문  문/창/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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