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깍꼴깍 군침 도는 구이 3종 세트

 
날이 쌀쌀해 겨울 여행은 움츠러들기 십상이다. 여행하기에 다소 을씨년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행의 재미는 1년 내내 있는 법, 겨울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동해안의 크고 작은 포구가 산해진미를 선보인다. 글·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한반도 금수강산은 사시사철 맛난 먹거리를 선사한다. 봄에는 오롯이 돋아나는 산나물이 맛나니 내륙 산간 지방을 찾아가고, 여름이면 감자와 옥수수를 비롯해 논밭에서 영그는 먹거리를 즐긴다. 가을이면 서해안을 따라 전어 대하 낙지가 손짓한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동해안이 부른다. 동해의 파도가 시원스레 철썩이고, 때맞춰 갈매기들이 군무를 펼치며 여행자를 환영한다. 더불어 주문진 강릉 정동진 묵호 동해 삼척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 바닷길에는 정라항 묵호항 등 어판장마다 제철 먹거리가 넘쳐난다. 이것들을 굽고 끓이고 조리면 겨울 바다의 맛이 혀끝에 착착 감긴다. 언 몸을 녹여줄 따끈한 먹거리가 기다린다.

 

오징어회 썰어주는 이색 직업
그곳 동해안으로 달려가며 어느 겨울의 추억이 생각났다. 여느 날처럼 조간신문을 펼쳤다. ‘주문진항 오징어 대풍, 한 양동이에 2천 원.’

오징어회를 좋아하는 남편인지라 다음 날 당장 주문진항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2천 원은 어제까지인데…. 오늘은 아침에 3천 원, 점심에 4천 원, 지금은 한 양동이에 5천 원인데….”

순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시세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가격이라 한 양동이를 샀다. 싼값에 호기를 부리며 양동이째 샀는데 손질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미안해하며 덤이라고 한참을 얹어주셨으니 상당한 양이었다. 뿌듯함 반 걱정 반으로 서성이는데, 그 모양을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분이 저만치서 다가오신다.

오징어회 썰어주는 분이라 하신다. 그런 분도 계시던가? 주문진항에서 이색 직업에 종사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니 그 사이에 시장 구경을 하고 오라신다. 남편도 그거 좋겠다며 얼굴이 환해진다. 잠시 망설이다 오징어를 아주머니께 맡기고 주문진 어시장 구경을 나섰다. 어른 머리통만 한 대게와 털게가 차가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누가 대게를 먹으러 영덕으로 가라고 했던가. 이름만 안 났을 뿐이지 영덕에서 먹는 것과 같은 크기, 같은 맛이 이곳에서는 반값이다.

 

대풍, 대풍…다시 찾은 주문진항
오징어는 또 얼마나 많은지.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오징어를 채 썬다. 그래도 그 옆에 미처 썰지 못한 오징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급기야 오징어 채 써는 기계가 동원된다. 세상에, 저런 기계도 있네. 이제 사람과 기계의 오징어 썰기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결과는? 역시 기계가 사람의 손을 못 따른다!

그 후 언젠가는 양미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잡혔고, 올해는 오징어 대신 ‘도루묵’이 대풍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잡혀 물량 과다가 판매가 하락으로 이어져 판로를 걱정할 정도였으며, 다시 ‘복어’가 대풍이었으니 동해안은 겨울철 먹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그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다시 주문진항을 돌아본다. 그때처럼 어시장 수족관에는 오징어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쭉쭉 물을 뿜으며 앞으로 내닿는 오징어를 보고 마냥 신기해한다. 손으로 콕콕 눌러보다 오징어가 ‘찍’내뿜는 물줄기를 한 대 맞으니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굵은소금 뿌려 굽는 3종 세트
주문진 어시장을 가로질러 구경하노라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먹자골목의 좌판으로 이어진다. 사람 사는 즐거움은 이런 곳에 있다. 지글지글 즉석에서 구워주는 ‘구이 3종 세트’가 발걸음을 잡아끈다. 커다란 철판을 올려놓고 맛난 동해안 먹거리를 구워대니 절대로 지나칠 수 없다.

구이 3종 세트의 첫 번째 주자는 도루묵, 임진왜란 때 피란길에 오른 선조 임금은 허름한 어촌에서 생선 요리를 받았다. 이름을 물으니 그저 서민들이 먹는 ‘묵어’라 했다. 당시에는 귀한 생선을 ‘은어(銀魚)’, 흔하디흔해 서민이나 먹는 생선은 ‘묵어’ 혹은 ‘목어’라 불렀다. 평상시라면 임금님께 올리기 어려운 서민 생선이다. 하지만 허기진 선조는 그 맛에 반해 “앞으로 이 생선을 은어라 부르라”며 도루묵을 특급 승진시켰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는 다시 도루묵을 찾았다. 궁궐로 돌아가 산해진미를 다시 먹으니 처지가 바뀐 탓인가. 도루묵 맛은 실망스러웠다. 선조는 “이 생선을 다시(도로) 묵이라 부르도록 하라”며 내쳤다. 입맛의 변덕스러움이란 이런 것인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식(李植)은 이 이야기를 듣고 시를 한 수 지었다.

“ …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賢愚不在己) /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貴賤各乘時 ) /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名稱是外飾) /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은 아니라네(委棄非汝疵 ).…”

제목은 ‘환목어(還木魚)’다. 그러고 보니 도루묵은 임금님과 인연이 있고 근사한 시도 한 수 받았으니 사연이 남다른 놈이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루묵이 통통하게 익어간다. 도루묵을 구울 때는 배에 칼집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이 익으면서 부피가 팽창해 배가 터지기도 한다. 노란색 와인색 등 여러 가지 색을 띠는 도루묵의 알이 탱글탱글 익으면 톡톡 터지며 입안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듯 환상적이다. 무와 감자를 깔고 찌개를 끓여도 좋고, 찜이나 볶음을 해도 좋으며, 꾸덕꾸덕 말렸다가 술안주로 구워 먹어도 맛나다. 

두 번째는 역시 오징어. 내장도 빼지 않고 통째로 올려놓은 오징어 통구이는 불을 만나면 도톰하게 오그라든다. 이리저리 굴리면 몸통에 달아오른 철판 자국이 찍혀 더욱 맛나 보인다. 잘 익은 오징어를 자르면 예쁜 오징어순대가 된다. 하지만 조심하시라. 맛있어 보인다고 덥석 베어 물면 입천장이 홀랑 벗겨진다!

세 번째는 양미리다. 20마리에 2천500원쯤 하는 양미리는 가격에 비해 맛이 훌륭하다. 굵은소금을 획 뿌려 연탄불에 구워 먹는 양미리는 조물조물 주무르면 뼈가 쏙 빠져 먹는 재미 또한 그만이다. 여기에 아주머니의 기분에 따라 팔뚝만 한 통새우구이가 덤으로 얹어진다.

 

다시 인기를 끄는 ‘치’자 삼형제
어디 그뿐인가. 주문진항을 주름잡는 ‘치’자 삼형제도 있다. 도치 장치 곰치 등 ‘치’자로 끝나는 생선들이 유독 겨울에 눈에 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 물고기라는 것. 잡혔다고 해도 못생긴 모습에 재수가 없다고 바다로 던져버리거나(곰치), 발로 걷어채어 팽개치거나(도치 곰치), 잡혀도 그만 안 잡혀도 그만(장치)이거나, 너무 많이 잡혀서 지겨워하던(도루묵 양미리) 물고기다.

 하지만 요즘엔 입장이 달라졌다. 생김새 때문에 바다에 버려지던 아귀가 이제는 ‘아귀찜’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듯, 별미를 찾는 사람들의 입맛과 맞아떨어진다. 여행지의 신선함이 어우러지며, 약 쳐서 키운 먹거리에 신물이 난 현대인들에게 청정 동해의 자연산 먹거리는 반가운 보물이다.  

이중 곰치는 험악하게 생겼다. 못생긴 물고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고성 속초 양양 등에서는 물곰, 동해 삼척 등에서는 곰치로 부른다. 이놈이 걸리면 재수 없다며 바다로 텀벙 던져버린 데서 물텀벙이란 이름도 나왔다. 큰 것은 길이 1m쯤 되는 대형 어종으로, 수컷은 거무튀튀하고 암컷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이 많다. 암수 가리지 않고 몸체가 흐물흐물하다. 식욕이 달아날 정도로 비호감이지만, 국이나 탕으로 끓이면 ‘최고의 속풀이 해장국’이 된다. 일부 지역에선 회로 먹거나 말렸다가 쪄 먹기도 한다.

주문진부터 시작하는 동해안 먹거리, 겨울이 깊어가면서 김치두루치기로 맛난 도치, 찜과 조림 맛이 빼어난 장치가 제철을 맞고, 사철 잡히는 곰치(꼼치)도 제맛을 뽐내니 꽁꼼 숨어 있던 맛난 먹거리 때문에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동해로 향한다.

저작권자 © 감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