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 만난 친구가 보여준 석상 사진 한 장이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남미 돌하르방 사진이었습니다. 티티카카 근처에 있다는 것과 프리잉카 시대의 유적이라는 단서만 가지고 찾아 헤매기 시작했죠. 몇 번 실패한 끝에 티와나쿠라는 곳에서 그 석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잉카에 정밀한 석조 기술을 전수했다는 그곳, 해발 4천 m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 티와나쿠로 떠나볼까요? 글·사진 써니(여행 작가)

 

 

남미 돌하르방을 찾아서 티와나쿠로~
볼리비아에 입성하자마자 택시노조의 파업으로 코파카바나(Copacabana)에서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일주일 만에야 라파스(La Paz)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리비아와는 어째 첫 만남부터 꼬인다.

두 달 전 우연히 유적을 테마로 남미 여행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보여준 남미 석상 사진 한 장에 대한 기억으로 나의 고생(?)은 또 시작되었다. 친구에게 들은 유적지의 이름을 적어놓은 메모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생각나는 거라곤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묘하게 느낌이 비슷한 석상, 티티카카호 근처, 프리잉카 시대의 유적이 전부다.

‘그곳’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유스타니(Sillustani), 타킬레 섬(Isla Taquile) 등 티티카카호 근처에서 유명한 유적지를 모두 살펴봤지만, 남미 돌하르방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어깨에 힘이 빠져 다음 행선지를 설계하러 라파스 시내의 여행사에 들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돌하르방 사진이 무표정하게 나를 맞는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곳은 티와나쿠(Tiwanaku)다! 


 
페루, 칠레, 볼리비아까지 미친 티와나쿠의 위세
해발 4천 m에 자리한 티와나쿠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란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쁜 곳에 도시가? 미스터리다.

하지만 이번 미스터리는 쉽게 풀렸다. 세계에서 배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가 그 해답이다. 옛날 티티카카의 수면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호수에서 14.5km 떨어진 티와나쿠는 근처 항구도시였다.
지금은 수량이 줄어 해수면이 낮아지는 바람에 고지대의 도시로 덩그러니 남았지만, 과거엔 풍요로운 항구도시였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티와나쿠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마주한 건 돌에 새겨진 바라코차(Varacocha)다. 바라코차는 우주를 창조한 티와나쿠의 주신이다. 3등신에 양손에는 왕홀을 쥐었으며, 눈 모양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위엄 있는 신이라기보다 귀엽게 느껴진다.

그런데 바라코차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흠, 태양의 섬(Isla del sol)에 내려온 잉카 단군인 태양의 아들 이름도 바라코차였지? 티와나쿠가 섬기던 신이 잉카로 이어졌다. 800년간 번영 속에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 영향을 미치던 티와나쿠의 위세가 짐작되어진다.

 

잉카 석조기술의 초석이 된 티와나쿠의 석조 기술
본격적으로 티와나쿠를 둘러보며 그 규모에 놀라고, 심하게 손상된 피라미드의 모습에 안타까웠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교회의 토대와 장식을 위해 빼다 쓴 돌이 워낙 많아 피라미드는 스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중앙 광장에 있는 태양의 문 중앙 상부에는 바라코차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문은 커다란 돌 하나로 만들었다. 지금은 문만 덩그러니 남아 그 용도를 알 길이 없다.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달력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언젠가 이 문의 용도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티와나쿠의 수로 또한 인상적이었다. 돌 벽의 구멍을 통해 물이 나와서 바닥의 수로로 떨어지는 구조다. 일정한 간격으로 난 수로에서 일제히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으리라. 티와나쿠의 놀라운 석조 기술은 이것뿐만 아니다. 100t이나 되는 돌에서 자그마한 돌까지 빈틈없이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은 대단했다. 잉카 석조 기술의 초석이 되었다는 학설을 증명하고도 남는 모습이다.

꿈에 그리던 남미 돌하르방은 도시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티와나쿠의 칼라사사야(Kalasasaya) 신전에서 발견됐다. 지금은 침식을 피해 티와나쿠박물관에 옮겨졌다.

높이 7.3m에 무게 20t에 달하는 석상! 양손에 무엇인가 들었다는 점을 빼면 유난히 큰 머리에 손을 모은 모습이 영락없이 제주도의 돌하르방이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제사장을 나타내는 석상이라는 학설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티와나쿠의 재미있는 신전 하나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정사각형 벽을 파서 반지하로 만든 광장 형태의 신전이다. 안쪽 벽에는 200개 정도 되는 얼굴이 튀어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각기 다른 모습이다. 사람은 물론 동물이나 외계인같이 생긴 것도 있다.

이 신전은 티와나쿠 부족이 정복한 여러 부족의 신들을 가둬놓은 곳이라고 한다. 신들의 감옥인 셈이다. 신들의 감옥이라…. 계단을 오르면서 고개를 드니 멀리 돌하르방을 닮은 석상이 보인다. 제사장이 가둬놓은 신들을 관리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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