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터뷰-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가계동향’에 따르면 상위 20%의 가계소득은 하위 20%보다 2003년 5.3배에서 지난해에는 5.7배로 늘어 소득 양극화가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소비지출 증가율이 지난해 3,4분기동안 1%대에 그치고 있다. 내수 침체에 따른 경기위축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출이 경제를 이끈다면 내수 활성화로 소득을 고르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동반성장이란 새로운 경제 발전 모멘텀으로 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운찬 이사장을 만나 ‘동반성장론’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 산업정책에서 중소기업 중심 산업정책으로 전환해야”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후 서울대학교 경제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해 동반성장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닦고 문화 확산 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월5일 자신의 동반성장 철학을 담은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출간했다.

동반성장이란 무엇인가?
국무총리 시절 중소기업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동반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총리를 마치고 대통령께 건의해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었다. 동반성장이란 ‘더불어 함께 잘 살자는 것’이며 경제성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파이를 키우되 분배를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 동반성장을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걸로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동반성장은 양극화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대안으로서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반성장은 대-중소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녀간 불평등, 도농간 격차, 수도권 비수도권의 격차, 남북간 격차 등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격차를 해소하고 함께 잘 살기 위한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한꺼번에 이룰 수는 없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먼저 이루면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대기업들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으로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양극화도 해소하게 되며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발견할 수 있다. 동반성장을 잘 이루면 사전적 복지가 가능하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하고 새정부가 시행하려는 복지정책은 사후적 복지다. 동반성장을 통해 분배가 잘 이루어지면 양극화가 해소되고 소득도 늘어나 그만큼 복지수요가 줄기 마련이다. 따라서 국가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경제민주화란 무엇이며 동반성장과는 어떻게 다른가?
동반성장은 경제민주화를 뛰어넘는 넓은 개념이다. 동반성장이 목표라면 경제민주화는 수단이다. 다만 동반성장을 잘 이루려면 경제민주화가 필수다. 선거에는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나 1표씩 평등한 선거권을 갖는 것처럼 경제민주화도 노사간, 생산자-소비자간 대-중소기업간 대등한 관계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회사가 내건 근로조건이 마음에 안들 경우 다른 직장으로 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근로자가 회사를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으려면 근로자에게 최저생계가 보장되는 사회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대-중소 기업간 거래에도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거래할 때 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대기업과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대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손해 보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거래할 수 있는 구조와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어떻게 이룰 수 있나?
동반성장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 동반성장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과제다. 단기적으로는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술임치제,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발주 등이 있다. 이중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다. 대기업은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통해 수출을 늘리고 이익을 많이 남긴다.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여러 요소가 있으나 중소기업 납품가를 깍는게 제일 쉽다. 왜냐하면 대-중소기업간 거래는 갑을 관계이기 때문이다. 납품가를 떨어뜨리면 그만큼 대기업은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이 목표로 한 이익보다 더 많이 남기면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돌려받은 이익으로 연구개발과 고용안정을 이루어 다시 대기업에게 좋은 조건으로 납품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에게도 수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좋은 제도다. 초과이익공유제는 1920년대 미국 헐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시작됐다. 당시 적은 자본으로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와 스텝 등에게 흥행에 성공하면 더 많이 주겠다는 약속으로 출발했다. 그후 크라이슬러, 롤스로이스 등으로 확산됐다. 이같이 초과이익공유제는 적용 대상과 범위가 조금씩 다를뿐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일각에서 초과이익공유제가 경제교과서에도 없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 적합업종도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제도중 하나다.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한바 있다. 얼마전에는 빵집 등 서비스, 유통분야의 적합업종도 확정 발표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탐욕을 막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몫을 지켜줘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제도다. 그 외에도 기술임치제, 중소기업 취직을 전제로한 학자금 제공, 중소기업 근로자의 병역혜택, 인력빼가기 등에 대한 처벌 강화, 정부의 중소기업 중심 발주, 정부 R&D 자금 지원 제도 개선 등도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제도들이다. 특히, 현행 정부 R&D 자금 지원 제도는 문제가 많다. 이스라엘은 정부 R&D 자금 대부분이 중소기업에게 지원된다. 우리나라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지원제도를 운영하다보니 돈이 없는 중소기업은 정부 R&D 자금이 그림에 떡일 수 밖에 없다.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중소기업이 첨단 기술을 갖춰 세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동반성장은 경제민주화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 정치에서 1인 1표로 선거권이 평등하듯 경제민주화도 대-중소기업간 대등한 관계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재벌의 기존순환출자 해소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박근혜 새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가야할 길은?
우리나라는 최근 인구 5천만명에 국민 소득 2만불을 의미하는 ‘50-20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느냐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15년간 투자가 정체되어 있다. 그런데, 대기업은 수출호황에 힘입어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투자할 첨단기술과 업종이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대기업과 정부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 산업정책’에서 ‘중소기업 중심 산업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흘러가야 한다. 사람이 가려면 학자금 지원, 병역혜택 등 여러 가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R&D도 활성화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R&D의 ‘개발(Development)’를 잘 해왔다.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연구(Research)'를 잘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첨단 핵심기술을 확보하면 경제 구조가 튼튼해져 세계 경제 불황에도 이겨낼 수 있다.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는 중소기업이 잘한다. 영국과 독일, 이스라엘 등이 세계 경제 불황에도 잘 견디는 이유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연구’를 잘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재벌의 지배구조 해소도 이루어져야 한다. 박근혜 새정부가 재벌의 신규순환 출자를 금지했지만 기존 순환출자분에 대해서도 해소해야 한다. 재벌들의 기존순환출자분에 대한 해소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기존순환출자분을 그대로 놔두자는 것은 권투에서 헤비급 선수와 플라이급 선수를 똑같은 규칙으로 경기하라는 것과 같다. 재벌들은 기존출자분에 대해 18조원이 든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재벌들 현금 보유는 이미 100조에 육박하고 있다. 또 기존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정부 지원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다.

G밸리 중소벤처 기업에게 한말씀 해달라.
동반성장을 잘 하면 벤처 창업-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선순환 생태계가 정착된다. 1만2천 중소벤처기업들이 모여있는 구로가산 디지털단지(G밸리)는 이같은 선순환생태계를 이룰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G밸리에 동반성장연구소 열고 CEO 포럼에서 동반성장 강연을 한바 있다. 연구활동 등으로 동반성장 연구소 사무실을 관악으로 옮겼으나 지속적으로 G밸리 중소벤처기업인들과 만나 동반성장 문화 확산과 분위기 조성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또 동반성장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완성해 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중소 벤처기업인들을 자주 만나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칠 예정이다. 구인난과 치열한 경쟁 등으로 중소 벤처기업인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나갈 주체는 중소벤처기업인들이다. 조금씩 힘을 모아 노력하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작으나마 내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다.

대담ㆍ정리 = 김준현 기자 jhkim@gamtantimes.com

저작권자 © 넥스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