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는 5대 국정목표를 발표하면서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추진전략 마지막 줄에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구체적 실천방향으로 △국민 대통합을 위한 지역균형 발전 △지방재정 확충 및 건전강화 △지방분권 강화 및 시민사회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이 제시됐지만 지방의 반응은 싸늘해졌다. “시늉만 내는 것과 진정성 있는 접근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과 지방자치단체의 반응이다. 지자체와 많은 전문가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면서 “박근혜정부의 밑그림에는 아예 ‘지방’이 없다”고 한탄한다.

구체적 실천방향에 지역균형 발전도 있고 지방분권과 지방재정도 포함됐는데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그들은 정부가 효율적으로 국정을 책임지고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방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새정부의 국정과제에서는 그런 단초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참고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 ‘지방’ ‘균형발전’ ‘분권’이란 단어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방재정 중앙정부 의존 현상 갈수록 심화돼
지자체들은 이전부터 안전행정부라는 명칭에 ‘자치’가 빠진 것도 그렇고 국가재정 우위론자들이 모여 있는 기획재정부의 장관을 부 총리급으로 격상시킨 것을 그런 징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한 것이다. 지방 소비세를 현행 5%에서 20%까지 인상하겠다는 방안도 정부의 복지정책을 떠받치기 위해 지자체의 부담을 끌어내겠다는 것이지 지방재정의 자율성 확대 차원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새정부는 지방재정이 어렵다고 해서 지방소비세 인상 등을 통해 자주재원을 늘려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지방의 재정구조를 의존재원 중심에서 자주재원 중심으로 바꾸는 등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체들은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지방재정의 중앙정부 의존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주재원의 근간인 지방세와 세외수입은 경기침체 장기화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지방세는 1995년 41.8%에서 2007년 34%로 줄었고, 세외수입도 1991년 30.5%에서 2011년 21%로 급감했다. 이웃 일본은 2009년 기준으로 지방세의 비중이 46.6%나 된다.

반면 의존재원인 국고보조금은 1991년 9% 수준에서 2005년 이후 18~19%로 늘어났다. 재정자립도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1991년도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69%였지만, 2012년에는 52.3%로 17%p 가량 떨어졌다.

지방세 수입(2011년 기준)으로 자체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전체의 50%인 123개나 된다. 또한 사회복지비 부담의 증가로 심각한 재정압박을 받고 있다.

 

권한과 재원 지방정부에 넘겨줘야
이처럼 지방재정이 취약한 것은 국세편중으로 인한 지방세수의 부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현재 20%에 불과한 지방세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박근혜정부에서 그럴 가능성은 더 적어졌다. 새정부가 가장 중시하고 강조하는 안보 일자리 복지 모두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여해야 가능한 일이여서 그만큼 지방의 몫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수위 때부터 이런 우려는 나왔다. 새정부의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에는 이미 국가경제와 국가개발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은 재원배분의 민주적 과정보다 효율성을 숭상하는 사람들이다. 균형발전은 자원배분이 핵심인데 이들은 자원을 집중시켜야 효율이 높아진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지금이라도 새정부가 이 같은 지방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중앙정부에 종속돼 있다’는 지방정부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길 바란다. 중앙정부는 외교 국방 통상과 같은 큰 문제에 집중하고 주민생활과 직결된 문제는 지방정부가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재원을 넘겨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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